
마케터가 매일 아침 여러 대시보드에 접속해 매출과 전환율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캠페인을 기획하던 방식은 점점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대신 평소 사용하는 협업 도구에서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 질문하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고객 집단을 설정하거나 캠페인 실행을 요청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용자가 소프트웨어 화면을 찾아가는 대신 AI가 사용자의 업무 공간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그러나 AI가 광고 문구를 작성하고 캠페인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케팅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구매 전환율이라도 데이터의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매출 하락의 원인도 방문자 수 감소와 구매 전환율 저하, 상품 품절 등으로 다양하게 갈릴 수 있다. 그래서 자동화된 실행에 앞서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담당자가 축적한 경험과 판단 기준을 AI가 이해하도록 설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의 역할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복적인 데이터 조회와 보고서 작성, 콘텐츠 제작을 AI가 수행한다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은 기업이 AI를 도입했다는 사실보다 기존 업무의 흐름과 책임을 어떻게 재편하는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동시에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가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조직문화와 업무 체계의 변화도 요구된다.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7(Digital Marketing Insight 2027, 이하 DMI 2027)'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오전 키노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박민성 데이터라이즈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대시보드를 여는 시대는 끝났다: 고객사 슬랙에 출근하는 AI'를 주제로 실제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경험을 공유했다.
올해 8회째를 맞은 DMI 2027의 주제는 'AI,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다시 쓰다'였다. 박 CSO는 이러한 행사 주제를 부각하는 듯, 실제 조직 운영과 데이터 분석·고객 서비스에 적용한 사례를 제시하며 참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케터 없이 AI 39개가 일한다… 데이터라이즈가 다시 설계한 업무 방식

박민성 CSO는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업무에 AI 도구를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 전체의 업무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리라이팅(Rewriting)'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데이터라이즈는 2025년 말 전사적인 AX 전환을 선언하고 내부 업무 시스템과 직무별 역할을 재정의했다. 박 CSO는 이메일 서명 생성기와 출퇴근 관리, 목표 및 핵심결과(OKR) 대시보드 등 작은 도구를 직접 개발하며 변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날 박 CSO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대체가 아니라 사람은 판단의 주체로서 승격돼야 한다는 개념으로 AX 전환을 맞이해야 되고요.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암묵지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 암묵지들을 진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끄집어내 AI한테 학습시켜 줘야 합니다. 그게 상당히 고되고 인정받기 어렵고 어려운 작업이죠. 약간 진흙밭에서 계속 기어 다니는 느낌이 많이 나거든요.”
이러한 AX를 위해 데이터라이즈는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집중했다. 비개발자도 업무 지침을 작성해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사내 플랫폼을 구축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에이전트 실행 환경인 에이전트코어(AgentCore Runtime)를 기반으로 40개가 넘는 내부 도구와 사내 문서, 데이터를 연결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데이터라이즈는 자연 유입을 유도하는 오가닉 마케팅 업무에서는 별도의 전담 마케터 없이 39개의 AI 에이전트와 38개의 정기 자동 작업이 돌아가게 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장 정보 수집부터 콘텐츠 제작, 배포, 성과 분석까지 AI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박 CSO는 마케터 없이 마케팅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희는 일단 비용을 집행하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오가닉 마케팅만 하기 때문에 경쟁사 블로그와 시장 트렌드 관련 뉴스레터를 에이전트가 꾸준히 수집한 다음 변화들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관련된 블로그나 백서, 이미지들을 자동으로 생성하고요. 그게 배포되기 전에 저한테 허락만 받으면 정해 놓은 채널에 자동으로 올라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지표 검증 결과도 공유됩니다.”
박 CSO의 설명처럼 AI 자동화가 ‘사람의 완전한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운영에서는 링크드인 게시와 위키백과 수정, 네이버 발행 등 일부 외부 작업에 사람의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내부 보고 체계도 바뀌어 구성원들이 별도의 일일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대신 슬랙, 노션, 지라 등 협업 도구에 남긴 기록을 AI가 분석해 업무 현황을 정리한다.
박 CSO는 이러한 변화가 기술 도입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AI 도구를 실험할 수 있도록 기업이 사용 예산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어느 수준까지 지원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역시 AX 전환의 중요한 과제라는 설명이다.
AI 경쟁력은 자동 실행 아닌 정확한 진단… 시맨틱 레이어·온톨로지가 핵심

박 CSO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소프트웨어 기능 구현이 쉬워지면서 기존 마케팅 솔루션의 경쟁력도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광고 문구 생성이나 고객 집단 설정, 캠페인 자동화 등이 차별화 요소였다면, 이제는 유사한 기능을 여러 기업이 빠르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기능이 실제 매출과 전환율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하는 말이 다 개발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일주일 안에, 한 달 안에 개발을 해오죠.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된 거예요. 그래서 캠페인 만들어 줘, 에이전트한테 오디언스 만들어 줘, 이런 액션을 자동으로 하는 것은 사실 차별화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만드는 이유를 찾아내는 건 차별화가 되죠. 거기서 저는 경쟁력이 생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 CSO는 AI 분석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시맨틱 레이어(Semantic Layer)와 온톨로지(Ontology)를 제시했다. 시맨틱 레이어는 기업에서 사용하는 데이터와 지표의 의미, 계산 기준을 일관되게 정의하는 계층이다. 온톨로지는 고객과 상품, 주문 등 데이터의 개념과 속성, 상호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의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박 CSO는 광고 플랫폼과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 쇼핑몰 매출 리포트가 동일한 지표에 대해 서로 다른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사례로 소개했다.
“광고 대시보드, CRM 같은 솔루션, 쇼핑몰 매출 리포트를 보면 지표 결과가 다 다르죠. 왜 그럴까요?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표에 대한 정의를 해주지 않으면 AI는 자기 마음대로 지표를 정리해요. 구매 전환율을 정의하라고 해도 세션마다 다른 정의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구매 전환율과 세션, 재방문율의 정의를 알려주는 시맨틱 레이어를 잘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매출 분석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다. 방문자 수가 줄지 않았더라도 구매 전환율이 하락하거나 주력 상품이 품절되면 매출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라이즈가 공개한 올해 1~9월 고객사 880곳의 자체 분석에서는 매출이 10% 이상 하락한 사례의 주요 요인이 방문 감소인 경우가 약 50%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방문 감소보다 구매 전환율이나 객단가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이 큰 경우 약 30%, 방문자가 증가했음에도 매출이 감소한 경우 약 20%로 구분됐다.
특히 두 번 이상 매출이 하락한 고객사 669곳 가운데 78%는 매출 감소 시점마다 주요 원인이 달랐다. 이는 매출 부진에 획일적인 광고 확대 전략을 적용하기보다 실제 원인을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데이터라이즈는 이를 위해 고객과 주문, 상품, 유입 경로 등을 연결하고 숙련된 분석가의 판단 기준을 AI가 활용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거대한 에이전트가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대신 고객 이력 분석, 실시간 지표 조회, 과거 데이터 분석 등에 대해 각각의 전문 에이전트들이 협업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결국 AI가 단순히 데이터를 조회하는 것을 넘어 어떤 요인이 성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제안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술 경쟁력이라는 것이 박 CSO의 설명이다.
고객사 슬랙에 출근한 AI… 대시보드에서 자율형 에이전트로

박 CSO가 제시한 또 다른 변화는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사용자가 만나는 방식이다. 데이터라이즈는 고객이 서비스 대시보드에 접속해 데이터를 확인하고 마케팅 기능을 실행하도록 제품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odel Context Protocol, MCP)을 통한 외부 AI 도구 연동이 가능해지면서 고객의 서비스 이용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저는 저희 고객사분들이 대시보드에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획했고, 그렇게 개발해 왔습니다. 내부적으로 저희는 마케터분들의 주별 접속자 수와 주별 리텐션을 계속해서 관리하고 봅니다. 그런데 7년 만에 무의미해졌습니다. MCP를 제공하고 나서부터 고객들이 대시보드에 들어오지 않고 클로드에서 다 물어보고 액션을 했거든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데이터라이즈는 실제 어카운트 매니저(AM)의 업무 경험과 지식을 반영한 '트윈 에이전트'를 고객사 슬랙에 연결하는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4곳의 고객사에 에이전트를 배포했으며, 63일 동안 1,620건의 대화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한 고객사는 신규 회원의 첫 구매 관련 리포트를 요청한 뒤 1분 41초 만에 결과를 받은 사례도 나오고 있다.
또한 고객사 마케터는 회의 중 매출이나 전환율에 대한 추가 질문을 받더라도 별도로 데이터를 추출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바로 슬랙에서 분석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캠페인 실행에 필요한 고객 집단을 추천받고, 사람의 승인을 거쳐 후속 작업을 진행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데이터라이즈는 AI 에이전트의 업무 권한에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고객사별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를 분리하고, 캠페인 설정 변경에는 사람의 명시적인 승인을 받도록 했다. 가격과 계약, 장애 관련 사안은 담당 어카운트 매니저에게 연결하며, 초기 운영 단계에서는 담당자가 대화 기록을 직접 검토한다.
현재까지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며 슬랙을 통해 매일 아침 업무 현황과 캠페인 개선 방안을 먼저 제안하는 데일리 브리핑 기능까지 테스트를 완료했다. 향후에는 일정 범위의 실행 권한을 AI에 위임하고, 궁극적으로 핵심성과지표(KPI)를 제시하면 AI가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데이터라이즈의 구상이다. 박 CSO는 기업이 이러한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성원들이 축적한 업무 지식과 판단 기준을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들이 반복해서 하고 있는 판단들이 있다면 그걸 다 글로 남기십시오. 그리고 그 글로 남긴 걸 전사 구성원에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채널이든 올리십시오. 그걸 에이전트가 볼 수 있게 하십시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데이터의 원천을 한쪽에 모으실 필요는 없어요.”
박 CSO는 구성원들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하나부터 에이전트에 맡겨보는 방식으로 AX 전환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박 CSO의 강연은 AI가 마케팅 업무를 얼마나 많이 자동화할 수 있는가보다,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와 업무 경험을 어떻게 AI의 실행 능력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앞선 박현영 소장의 강연이 AI 시대 소비자의 불안과 변화한 선택 기준을 통해 기업에 새로운 신뢰의 조건을 제시했다면, 박 CSO의 발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의 업무 혁신과 기술적 과제를 보여줬다. AI 기능 자체가 빠르게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축적된 지식과 판단 기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