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은 역대 최대로 늘었지만, 많은 대학 연구실이 기대는 기초연구 '핵심연구'의 신규 과제는 3분의 1 넘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39조5000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올해보다 4조 원(11.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포함한 AI·관련 산업 투자에는 올해의 두 배 가까운 21조3000억 원을 배정했다. 이 가운데 R&D로 분류되는 AI 분야 예산은 2조4000억 원에서 4조1000억 원으로 69.1% 늘었다.
연구 현장의 숫자는 반대로 움직였다. 같은 날 정부안 기준 핵심연구 유형 A·B·C 신규 과제가 올해 2438개에서 내년 1595개로 843개(34.6%) 줄어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연구는 기초연구사업 가운데 과제 수가 가장 많다. 선정된 연구자는 해마다 1억~3억 원을 지원받는다. 많은 대학교수와 연구자가 의존하는 주요 연구비 재원이다.
연 1억 원을 받는 유형 A는 1209개에서 825개로 31.8% 줄어든다. 연 2억 원 규모의 유형 B는 670개로 37.4%, 연 3억 원 규모의 유형 C는 37.1% 감소한다. 지원액이 큰 유형 B·C의 감소 폭이 더 컸다.
학계는 대체할 과제가 없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오경수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 5000만~7000만 원 수준의 기본연구로는 연구실을 겨우 버틸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도 핵심연구를 대신할 과제가 사실상 없다며 상황을 심각하게 봤다.
우려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신규 과제를 따내지 못한 연구실에서는 박사후연구원 같은 비정규직 연구 인력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초연구 전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내년 '기초연구·대학' 분야에 3조6000억 원을 배정했다. 올해보다 5.9% 늘었지만, 주요 R&D 투자 분야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낮다.
과기정통부는 기존 과제를 이어가는 데 예산 대부분이 들어갔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과기정통부는 내년 R&D 예산을 배분하면서, 진행 중인 연구가 끊기지 않도록 계속과제 예산은 깎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계속과제 규모도 커졌다. 올해 상반기 개인기초연구 신규 선정은 4628개로 전년보다 914개 늘었다. 유형 A의 지원 한도는 '최대 3년·연 7000만 원'에서 '최대 5년·연 1억 원'으로 확대됐다. 늘어난 계속과제를 먼저 보장하다 보니, 정해진 예산 안에서 신규 몫이 줄어든 셈이다.
결국 문제는 총액이 아니라 배분이다. 기초연구 예산은 늘었지만 핵심연구에 새로 들어갈 기회는 줄었다. 정부의 확대 정책과 현장의 체감이 엇갈리는 이유다.
연구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공개한 과기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과제 3만3156개 중 2만3155개의 연구비가 당초 계획보다 3조4847억 원 줄었다. 기초연구 과제 수도 2만2200개에서 2만1500개로 감소했다.
정부 R&D 예산은 2023년 31조1000억 원에서 2024년 26조5000억 원으로 줄었다. 이후 2025년 29조6000억 원, 2026년 35조5000억 원으로 회복됐다. 다만 2024년부터 일부 대학 지원 사업이 R&D 집계에서 빠지는 등 기준이 바뀌어, 연도별 금액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 과정에서 풀뿌리·기본연구 복원 등 기초연구를 넓혔다고 강조한다.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생태계가 회복되기도 전에 신규 진입 문이 다시 좁아졌다는 반응이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노벨상 시즌에만 기초연구가 강조될 뿐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현장 사기 저하를 우려했다.
이번 수치는 모두 정부안 기준이다. 국회는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심의한다. 이 과정에서 분야별 금액과 과제 수는 조정될 수 있다.
AI의 미래를 말하는 예산안이 그 미래를 연구할 사람의 자리를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회 심의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