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과학상과 이방인들 그리고 한국의 '두뇌유출'

"과학은 글로벌하다!"


2016년 분자 기계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의 노스웨스턴대 교수 프레이저 스토더트(Fraser Stoddart)의 말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2011년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고, 미국인으로서 노벨 과학상을 수상했다. 35년 동안 거의 300명 이상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박사후연구원들을 지도하기도 한 그는, 자신의 연구팀에는 십수 개의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과학자들이 있다면서 "국제적인 재능을 모으는 것이 전체적인 연구의 한계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숫자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정책재단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1901년 이후 2021년까지 120년간 배출된 미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311명에 달한다. 이 중 35%인 109명이 이민자거나 혹은 난민 출신이다. 이는 과학 분야이기 때문에 보이는 특별한 지점이다. 여전히 미국의 고위직 관료나 상류층에는 유리천장으로 인해 이민자나 난민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과학기술계와 첨단기술 업계 고위직에서는 이들을 발견하기 쉽다.

사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 분야에서 그리 뛰어난 나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학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20세기에 과학 기술 분야 육성을 위해 다방면으로 투자했다. 지금의 과학 강국 미국이라는 명예와 노벨 과학상 대거 수상의 쾌거는 바로 이때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매력적인 고등 과학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스토더트 교수와 같은 해에 위상 상전이와 위상물질의 이론적 발견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 교수 덩컨 홀데인(Duncan Haldane)은 원래 영국 런던 출신이지만, 미국에 이민을 한 과학자이다. 그가 경험한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과학자에게 있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최고였다. 그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전 세계의 연구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라 공언한다.

과학 교육뿐만이 아니다. 이민자의 나라라 불릴 만큼 열려있는 국경은 이민자와 난민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은 과학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인재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였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의 고급 과학 기술 인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와 더불어 과학 분야의 성장도 급격히 이루어졌다.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함께 참여했던 핵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계획'에는 난민 출신 과학자들이 대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한 난민 과학자들이 미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원폭개발 성공에 기여한 것이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유대인 탄압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원폭의 설계자라 불릴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치와 파시스트의 인간 차별, 인종 혐오로 인해 자국의 재능있는 과학 인력을 외국으로 내준 것이다.

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껴 독일을 떠난 수많은 유명 과학자들이 있다. 독일인이었던 양자역학 초기 개척자인 막스 보른, 크렙스 회로를 찾아낸 생화학자 한스크랩스, 슈뢰딩거의 방정식으로 유명한 양자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신의 고향을 옮겨 가 재능을 펼쳤다. 과학 지식의 보편성은 경쟁의 공정성으로 이어지고, 미국 정부의 우수 과학기술인력 이민 추진 정책이 뒷받침 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비단 '이민자의 나라' 미국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이후 배출된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40%가 이민자로, 이들 이민자·난민 출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재능과 혁신, 그리고 에너지를 자신을 받아준 나라와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미국정책재단은 “세상을 바꾸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들에게 이민 정책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더 많은 이민자와 해외 학생· 연구자들에 대한 문호 개방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인재 유출을 겪은 독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과학 인력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던 메르켈은 고급 인력 이민자 정책을 실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욕을 먹더라도 난민 대거 수용 정책을 펼친다. 이들이 독일의 교육과 만나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고 독일 과학 기술계의 핵심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동안 미국은 반이민 정서, 난민 혐오에 부채질하던 트럼프 정권을 겪게 되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의 연구 결과를 중국이 훔쳐 간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들로 인해 연방정부, 주 정부들이 연구 보안 정책을 강화하게 되었다. 과학 연구 개방성이 줄어들고 있고, 과학자들끼리의 단절이 일어나 순식간에 미국 연구실에는 냉각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2021년 미국 물리학회(APS)의 미국 연구 안보 정책의 영향 연구 결과, 이민 과학자 45%가 미국 장기 체류에 부정적이라 계획을 바꿔 다른 나라에서 연구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 정권이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과학인력 유출이라는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이다.

한국은 이전부터 '두뇌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급여수준, 연구여건, 자녀교육 등 평범한 니즈를 갖고 있지만, 이것조차 보장할 수 없기에 외국으로 나간다. 이들을 붙잡을 만한 기본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난민 혐오와 이민자 차별을 극복하고, 이민자와 소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재능 있는 두뇌들이 한국을 최고의 선택지로 여길 수 있도록 개방형 과학을 장려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은 전지구적인 과업'이기에 세계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결정해야 할 때이다. 모두를 위한 정책이 결국 과학 기술의 향상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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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오베이션 대표

insu@weinterac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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