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중소·스타트업 기술 침해…해법은?

[AI요약] 최근 대기업의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기술 침해 사례가 심화되고 있다.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중소·스타트업 대상 기술 유출 및 탈취로 인한 피해액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827억원에 달한다. 피해 건수로는 280여건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타트업은 투자 협상 과정에서 오간 대화내용, 자료 등의 기록을 확보하고, IR 과정에 NDA(Non-disclosure agreement, 기밀유지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을'의 입장에 있는 스타트업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중소·스타트업 대상 기술 유출 및 탈취로 인한 피해액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827억원에 달한다. 피해 건수로는 280여건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최근 대기업의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기술 침해 사례가 심화되고 있다. 인프라와 자금력을 내세운 대기업이 작정하고 아이디어를 도용해 제품화까지 할 경우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스타트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키우소, 닥터다이어리, 팍스모네 등 5개 스타트업은 18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5대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 기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는 최근 대기업과 기술탈취, 사업 모방 등으로 피해를 입고 법적 소송을 진행 중인 스타트업들이 함께 손을 잡고 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중소·스타트업 대상 기술 유출 및 탈취로 인한 피해액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827억원에 달한다. 피해 건수로는 280여건이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중소·스타트업의 약 75%가 입증할 증거 자료 부족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벤처부(이하 중기부)는 지난 2018년 12월 ‘중소기업기술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중소기업기술보호법)’을 시행, ‘기술침해 행정조사’를 도입하는 등 피해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피해 구제 보다는 ‘합의’나 ‘권고’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마저도 수년의 시간이 소용되는 탓에 특히 힘이 약하고 자금여력이 없는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사용금지 시정 명령 나왔지만…

앞서 지난 11일 중기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침해 기술 사용을 금지하는 첫 시정 명령을 내렸다. 피해 기업은 ‘의료영상 장비’ 관련 핵심 기술을 침해당한 인피니트헬스케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용금지 시정 명령을 받은 모 대기업은 인피니트헬스케어와 계약 관계를 통해 취득한 ‘의료영상 장비’ 관련 핵심기술을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파기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해 유사한 의료장비까지 개발했다. 중기부는 조사를 통해 해당 대기업의 행위가 ‘중소기업기술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인피니트헬스케어의 소스코드 사용금지와 함께 이를 사용해 제작한 제품의 판매 및 유지보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 행정조치는 ‘중소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도입된 기술침해 행정조사 및 기술침해자문단 자문 끝에 내려진 첫 번째 시정권고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강제력이 없는 ‘권고’라는 점이다. 중기부는 해당 대기업이 시정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술침해 사실을 공표하고 유관기관 이첩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피니트헬스케어 입장에서는 법적 소송도 진행 중인 만큼 중기부의 시정권고가 자사에 유리한 법원의 판단을 이끌어 내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불복하고 항소를 거듭할 경우 고통스럽고 억울한 시간을 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기술 침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나?

중기부가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건은 또 있다.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영양제 디스펜서’ 아이디어를 대기업 계열의 롯데헬스케어가 도용했다는 내용이다. 알고케어는 이어 지난 12일 특허청에 롯데지주와 롯데헬스케어를 상대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하기도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롯데헬스케어와 롯데지주는 초기 알고케어 측에 투자 제안 등의 방식으로 접촉한 바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이후 사업적 견해 차를 이유로 투자 협상이 결렬되면서부터다. 이후 롯데헬스케어는 자체적인 영양제 디스펜서를 선보였지만, 외관 상의 차이만 있을 뿐 구조는 대부분 알고케어의 제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와 롯데지주가 투자 및 사업목적으로 적근한 뒤, 자사의 아이디어를 베껴 제품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롯데헬스케어는 ‘영양제 디스펜서’를 활용하는 사업모델이 이미 해외에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이미 사례가 있는 사업 모델이며 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롯데헬스케어의 주장이다.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기술 침해 분쟁 내용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사례에서 투자 제안 시 공유한 기술, 사업 내용이 문제가 됐다. (이미지=픽사베이)

하지만 앞서 2021년 9월 알고케어와 투자 협상을 진행한 것이 롯데지주였다는 점, 롯데지주와 알고케어 간 투자 협상이 결렬된 이후 지난해 3월 롯데지주가 700억원을 출자해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정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카카오헬스케어가 올해 3분기 출시를 예고한 혈당관리 솔루션 ‘감마’가 헬스케어 스타트업 닥터다이어리의 건강 관리 플랫폼을 모방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닥터다이어리 측의 주장에 따르면 시작은 역시 투자 제안이었다.

닥터다이어리에 따르면 2020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제안에 따라 기업설명회를 진행한 바 있고, 이듬해인 2021년에는 당시까지 카카오의 헬스케어 사업을 주관했던 카카오브레인 측과 공동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닥터다이어리가 카카오 측에 제출한 IR자료에는 주요 사업 계획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카카오헬스케어가 설립됐고, 최근 발표한 신사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닥터다이어리 측의 주장은 여기에 앞서 카카오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제안에 응하며 제출한 IR자료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앞서 알고케어와 롯데지주 간에 진행된 투자 제안과 결렬, 롯데헬스케어 설립 후 불거진 모방 논란과 유사하다.

카카오헬스케어 측은 이와 같은 닥터다이어리 측의 주장에 대해 “카카오 자회사는 각자 독립 경영을 하고 있어 각 사에서 취득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 외에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에 기술 침해 여부를 두고 이어지는 분쟁 사례는 적지 않다. LG생활건강의 출시 예정인 타투 프린터 제품은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의 제품 콘셉트를 모방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와 비씨카드 역시 사업 모방을 이유로 분쟁을 벌였고, LG유플러스는 스타트업 ‘생활연구소’의 가사 도우미 중개플랫폼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자 지난해 6월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생활연구소 역시 앞서 LG유플러스 측으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고 사업자료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축산 농가에서 소가 태어나 도축될 때까지 생애 전 과정을 관리해 주는 목장 관리 플랫폼 ‘키우소’가 제기한 침해 사례는 좀 더 특이하다. 키우소 측은 자사 플랫폼을 2020년 12월 농협중앙회 주최 공모전에 출품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이후 1년만에 공모전 주최 측인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 농협경제지주가 키우소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NH하나로목장’ 앱을 출시한 것이다.

늘어만 가는 기술 침해, 서비스 모방 피해… 대응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법적 다툼의 결론은 법원의 판단에 달려있기에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투자 제안으로 스타트업의 사업자료 확보 후 별도의 회사 설립을 통해 유사한 제품을 선보이는 대기업의 행위는 충분히 의심을 살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아이디어 도용에 대한 행정조사 권한은 특허청에만 부여돼 있고, 수사기관에 형사고소도 불가능하다. 결국 분쟁이 발생할 경우 스타트업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민사소송 외에는 딱히 없다.

문제는 소송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법적 소송에 나서는 일부 스타트업 외에 대기업의 입김으로 다른 투자자나 파트너와 관계 단절을 우려해 소송 조차 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기술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대기업의 투자 제안을 받은 후 진행하는 IR 과정에 NDA(Non-disclosure agreement, 기밀유지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을'의 입장인 스타트업이 이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픽사베이)

물론 스타트업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투자 협상 과정에서 오간 대화내용, 자료 등에 대해서는 녹음 등의 방식으로 구체적인 기록을 확보해 놓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것은 대기업의 투자 제안을 받은 후 진행하는 IR 과정에 NDA(Non-disclosure agreement, 기밀유지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 제안 협상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스타트업이 이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대기업 담당자들의 ‘결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변명 앞에 NDA 체결을 고수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반대로 풀이하자면,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침해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해 NDA 체결을 의무화하는 법안 마련 등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한편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M&A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한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매수·합병하는 M&A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한국의 M&A 실적은 G5(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평균에 비해 건수로는 절반이 못 미친 1063건(41%) 수준이며 금액면에서는 25%에 불과한 2737억달러(약 360조 9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기술 침해 논란이 빈번하게 불거지고 있는 헬스케어 분야의 M&A 실적은 전무한 상황이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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