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을 향하는 해외 자금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베트남 국가통계국(NSO)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베트남에 등록된 외국인투자는 406억3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4% 증가했다. 실제 집행된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FDI)도 172억5000만달러로 12.0% 늘었다. 물론 이 수치는 스타트업 투자액만을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자본이 베트남 시장을 바라보는 흐름의 추이를 예측할 수 있다. 디지털 시장의 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 구글·테마섹·베인이 공동 발간한 ‘e-Conomy SEA 2025’는 지난해 베트남 디지털 경제의 총상품가치를 390억달러로 추산했다. 전년보다 17% 늘어난 규모다.
제도 환경도 달라졌다. 지난 3월 1일 시행된 베트남 신투자법은 일정한 시장접근 조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등록증(Investment Registration Certificate·IRC) 발급·변경 절차에 앞서 경제조직, 즉 법인 등 사업체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기서 시장접근 조건은 외국인이 해당 업종에 투자할 수 있는지, 외국인 지분율에 제한이 있는지, 현지 파트너가 필요한지 등을 정한 기준이다.
하지만 시장의 문이 넓어진 것과 사업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다른 문제다. 앞서 배달의민족은 2023년 베트남 서비스를 중단한 데 이어 올해 현지 법인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반면 핀테크 스타트업 핀투비는 베트남에서 영업하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고, 멋쟁이사자처럼 역시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현지에서 교육과 인재 연결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같은 시장에서 결과가 갈린 이유는 뭘까?
문은 넓어졌다…하지만 ‘IRC부터’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26년 베트남 투자환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 진입 순서다. 새 투자법은 외국인 투자자가 해당 업종의 시장접근 조건을 충족하면 투자등록증(IRC)을 받기 전에 법인 등 사업체를 먼저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투자법 143/2025/QH15 제19조 2항).
다만 모든 외국인 투자기업이 IRC 없이 사업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프로젝트 가운데 IRC 발급 대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IRC를 언제 신청할 것인가’보다 먼저 ‘외국인 투자자가 이 사업을 어떤 조건으로 할 수 있는가’이다.
사업 업종에 따라 외국인 지분 제한이나 투자 형태, 투자자 자격 등의 조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업이 수입인지 내수 유통인지, 도매인지 소매인지, 온라인 판매인지 제조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서도 등록해야 하는 사업 내용과 관련 인허가 구조가 달라진다. 법인 설립 전에 업종, 외국인 시장접근 조건, 지분율, 투자자 구성, 투자금액과 자본금, 법정대표자, 사업장 주소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규제완화도 과장해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 정부는 결의 66.17/2026/NQ-CP를 통해 지난 7월 1일부터 조건부 투자·사업업종을 198개에서 142개로 줄였다. 조건부 투자·사업업종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운영하기 위해 일정한 자격, 시설, 인허가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하는 업종을 뜻한다. 베트남 정부는 불필요하거나 조건이 불명확한 업종을 정비하고 일부 분야를 기술·전문기준에 따른 사후관리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다만 이 결의의 효력은 내년 2월 28일까지로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투자법상 조건부 업종 목록에서 제외됐다고 제품 인증이나 환경·건축·소방, 교육·의료·유통 등 개별 산업법에서 요구하는 인허가까지 일괄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올해의 변화는 ‘베트남 법인 설립이 쉬워졌다’고 단순화하기보다 사업 특성에 맞춰 시장에 들어가는 방식을 설계할 여지가 커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업종부터 주소까지…법인보다 먼저 결정해야 할 것들

스타트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가장 먼저 구체화해야 하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베트남에서 판매사업을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본사에서 제품을 직접 수입할 것인지, 현지에서 도매 또는 소매로 판매할 것인지, 기업 간 거래(B2B)인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인지, 온라인 판매와 오프라인 유통을 병행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사업업종과 시장접근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향후 제조까지 추가한다면 검토 범위는 다시 넓어진다.
그 순서는 대략 네 가지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 외국인이 그 사업을 할 수 있는가, 누가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 대표와 사업장을 실제 운영에 맞게 정했는가 등이다.
투자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절차가 달라진다. 한국 기업이 지분 100%를 가진 현지 법인을 만들 수도 있고, 베트남 기업과 합작법인(Joint Venture·JV)을 세울 수도 있다. 이미 운영 중인 베트남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각각 외국인 시장접근 조건과 지분구조, 필요한 승인과 검토 사항이 달라질 수 있다. 기존 법인이나 프로젝트를 인수하는 경우에는 보유 인허가와 재무·세무, 계약상 의무까지 살펴봐야 한다.
자본금도 단순히 가능한 최소금액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사업장 임차료와 인건비, 장비·재고, 초기 운영비와 투자 일정 등을 고려해 실제 사업계획과 맞는 수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투자자의 재정능력과 자금조달 계획을 함께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정대표자 역시 기업등록증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체류 가능성, 계약과 서명, 은행 업무, 부재 시 위임체계까지 실제 운영과 연결된다. 사업장 주소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조업이라면 해당 장소에서 계획한 사업을 실제로 등록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 토지·건물 용도와 환경·건축·소방 등의 요건까지 확인해야 한다.
사무실부터 계약한 뒤 업종과의 적합성을 확인하거나, 외국인 지분 100%가 당연히 가능하다고 가정하거나, 자본금을 실제 사업계획과 동떨어지게 설정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칫 추가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본사 직원을 법정대표자로 이름만 올린 뒤 현지 체류나 은행 업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투자등록증(IRC)과 기업등록증(Enterprise Registration Certificate·ERC)을 받는 것은 베트남 진출의 출발점으로 보기보다, 사업계획과 시장접근 조건, 지분과 투자구조를 먼저 결정한 뒤 이를 행정적으로 구현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배민은 떠났고 핀투비는 남았다…현지화의 서로 다른 얼굴

법과 제도를 넘어 실제 기업들의 경험을 보면 ‘현지화’의 의미는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현지 음식배달 플랫폼 ‘Vietnammm’을 인수하며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4년여 만인 지난 2023년 12월 8일 현지 서비스를 종료했다. 당시 배민 베트남은 글로벌 경기 상황과 함께 현지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철수 배경으로 밝혔다.
2022년 기준 시장점유율은 배민이 12%인 반면 그랩은 45%, 쇼피푸드는 41%였다. 배민은 캐릭터와 전용 폰트 등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브랜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지만 그랩과 쇼피푸드가 버티고 있던 플랫폼 경쟁구도를 뒤집지는 못했다.
서비스 종료 뒤에도 남아 있던 현지 사업은 올해 정리 단계로 넘어갔다. 지난 4월 공시에 따르면 우아브라더스는 우아브라더스 베트남을 비롯해 WBV리테일, WBV테크놀로지 등 현지 법인의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민의 사례는 현지 소비자에게 맞춘 마케팅이 중요하더라도 그 것만으로 시장 경쟁구조와 수익성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핀투비(Fin2B)는 다른 경로를 걸었다. 2015년 한국에서 설립된 핀테크 스타트업 핀투비는 공급망금융(Supply Chain Finance·SCF) 플랫폼을 베트남 시장에 적용했다. 베트남 법인은 2018년 설립됐고 2019년부터 현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진출 과정에서 현지 파트너 발굴과 인력 확보 등의 과제를 겪었고, 이후 베트남에서 영업하는 우리은행·신한은행·KB국민은행 등 한국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공급했다.
핀투비의 진출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품뿐 아니라 업무방식까지 현지 상황에 맞췄다는 점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핀투비는 베트남의 규제와 법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한국에서처럼 구두로 업무를 지시했다가 실행되지 않는 경험도 겪었다. 이후 회의록과 이메일 등 문서 중심으로 업무방식을 바꾸고 계약 내용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며 문제를 개선해 나갔다.
사업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공개된 최신 상황을 보면 우리은행 베트남의 기업대출 상품 ‘B2B Loan’ 안내에는 매출채권과 대출 관련 정보가 핀투비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처리된다고 명시돼 있다. 핀투비 홈페이지에도 하노이 소재 ‘Fin2B VN LLC’가 해외 거점으로 올라와 있다. 베트남 법인의 매출이나 성장률까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지 조직과 금융기관 대상 서비스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 할 수 있다.

멋쟁이사자처럼도 초기 계획을 수정하며 베트남에 적응한 사례다. 회사가 공개한 진출 경험에 따르면 현지 정보기술(IT) 교육 수요를 사전에 조사한 뒤 법인 설립을 결정했지만 실제 진출 과정에서는 행정 절차가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사업 일정을 여러 차례 수정해야 했다. 한국에서 운영했던 대학별 동아리 모델 역시 베트남에서는 동아리 설립 절차가 까다로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현지에서 확인했다. 사전 수요조사를 했음에도 실제 실행 단계에서 제도와 운영환경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현재 멋쟁이사자처럼의 베트남 사업은 단순 코딩교육을 넘어 현지 IT 인재와 한국 기업을 연결하는 영역까지 확장됐다. ‘K-Tech College 2026’은 LIKELION Vietnam과 잡코리아가 운영하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도 베트남에서 지원자 모집과 취업 연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 출발한 OKXE는 조금 다른 비교 사례다. 한국에서 만든 사업모델을 베트남으로 옮긴 기업이 아니라 한국인 창업자가 베트남의 중고 오토바이 시장에서 직접 문제를 발견해 2018년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OKXE가 주목한 것은 오프라인 중심의 중고 오토바이 시장에서 시세와 품질,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문제였다.
사업도 그 문제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OKXE는 지난해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고 누적 조달액은 약 1450만달러에 이르렀다. 확보한 자금은 오프라인 거점 확대와 전기 오토바이 전환, 데이터 기반 차량 평가와 금융서비스 등에 투입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국내 배터리 서비스 기업 피엠그로우와 베트남 전기모빌리티 배터리 진단·인증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중고 오토바이 거래에서 출발해 시장의 전동화에 맞춰 사업 범위를 다시 넓히고 있는 셈이다.
배민, 핀투비, 멋쟁이사자처럼, OKXE의 사업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는 어렵다. 업종도, 진출 시점도, 기업 규모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경험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베트남 진출이 법인을 하나 만드는 행정절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이 성장하고 제도적 진입 방식이 유연해져도 실제 사업에서는 고객의 행동방식과 경쟁구조, 업종별 시장접근 조건, 현지 파트너와 인력, 계약과 운영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해외 진출의 첫 질문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베트남 법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앞서 ‘이 시장에서 어떤 문제를, 누구와, 어떤 구조로 풀 것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베트남 시장의 변화와 먼저 들어간 기업들의 시행착오가 함께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