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연계자산(RWA)이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한 축으로 부상하면서, 관련 투자 생태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와 탈중앙화금융(DeFi) 영역에서 주로 활용되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제, 송금, 정산, 외환, 컴플라이언스, 지갑, 온·오프램프 등 금융 인프라 전반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시장은 제도권 금융 인프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2025년 스테이블코인 관련 벤처캐피털(VC) 투자가 15억달러를 넘어섰고, 2019년과 비교해 약 30배 증가한 것으로 제시됐다. Stripe, Mastercard, Ripple 등 주요 결제·금융 기업들이 관련 인프라 기업 인수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문제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비해 전문 투자 기반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연간 13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스테이블코인과 RWA 생태계를 전문적으로 겨냥한 벤처펀드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시장 수요와 제도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초기부터 중기 단계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 자본, 실사용 유통 채널, 글로벌 딜소싱 역량이 결합된 투자 구조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공백을 겨냥한 신규 펀드도 등장했다. 카이아 산하 투자사 카이아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KIP)는 영국 벤처캐피털 심산벤처스와 공동 운용 방식으로 ‘카이아-심산 금융혁신 벤처펀드’를 출범한다. 이 펀드는 5월 첫 번째 클로징 이후 멀티 클로징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카이아 토큰을 활용한 에코시스템 펀드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홍콩·영국 등 글로벌 출자자로부터 달러 및 주요 법정화폐 기반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독립형 수익 추구 벤처펀드라는 점을 내세운다.
특히 아시아 시장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핵심 무대로 주목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 세계 무역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연간 3900억달러 규모의 해외 송금 수요가 발생하는 지역이다. 높은 크로스보더 결제 수수료, 국가별로 분절된 금융 접근성, 빠른 디지털 전환 속도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금융 서비스가 확산될 수 있는 구조적 배경으로 꼽힌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실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투자 관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글로벌 결제·핀테크 기업들의 아시아 시장 진출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관련 인프라 기업의 전략적 인수합병이나 엑시트 기회도 함께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디지털 자산 거래 수단을 넘어 결제와 대안 금융의 기반 기술로 확장될 경우, 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수요가 확인될 수 있는 시장 중 하나로 거론된다.
카이아-심산 금융혁신 벤처펀드는 아시아 70%, 글로벌 30% 비중으로 초기부터 중기 단계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투자 대상은 스테이블코인 대중화와 관련된 전체 밸류체인이다. 구체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온·오프램프, 결제, 송금, 정산, 외환, 컴플라이언스, 지갑, RWA, 이자형 프로토콜, 소비자 애플리케이션 등이 포함된다. 현재 100개 이상의 기업 파이프라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펀드가 주목하는 지점은 단순 자본 공급에 그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 스타트업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실제 사용자와 결제처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카이아 블록체인 기반의 슈퍼앱 생태계와 2억5000만명 이상의 잠재 사용자 풀을 활용해 포트폴리오 기업의 유통 채널, 유동성, 결제 접점, 현지 파트너십 확보를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심산벤처스는 초기 테크·핀테크 투자 경험과 글로벌 딜소싱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이윤호 KIP 대표 겸 카이아 DLT 재단 CBDO는 “지난 4월 출시한 RWA펀드가 아시아 실물자산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 레이어라면, 이번 벤처펀드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유통되고 결제되는 인프라 레이어를 구축하는 기업들에 투자한다”며 “시장이 열리기 전, 아시아에서 선도적 포지션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대규모 거래를 처리하고 있지만, 아직 상당 부분은 기업 간 정산 영역에 집중돼 있다. 향후 소비자 접점이 본격적으로 열릴 경우 결제, 송금, 대안 금융, 디지털 지갑, RWA 기반 수익 상품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이는 관련 인프라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인수합병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Sahil Chopra 심산벤처스 공동창업자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아직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거나, 이미 사용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시아는 급속한 디지털화와 인구 성장이 맞물리며 스테이블코인 기반 글로벌 결제·대안 금융의 최대 수혜 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아 생태계 관점에서는 RWA와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투자를 결합하는 전략이 구체화되는 흐름이다. KIP는 지난 4월 아시아 디지털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 RWA펀드의 첫 상품으로 Yield8을 출시했다. Yield8은 해운, 에너지, 소상공인 대출 등 아시아 실물자산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 레이어로 설명된다. 이번 벤처펀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유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레일 레이어 기업에 투자한다.
서상민 카이아 DLT 재단 의장은 “KIP의 두 축인 RWA펀드의 자산 레이어와 이번 벤처펀드의 인프라 레이어가 맞물릴 때, 카이아 생태계는 진정한 엔드투엔드 온체인 금융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펀드 출범은 특정 기업의 투자 확대를 넘어,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제도화와 실사용 확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시장 내부의 결제 수단을 넘어 글로벌 금융 인프라로 재정의되는 가운데, 아시아 시장에서는 이를 둘러싼 전문 투자 생태계 선점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