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치료에 앱이 약 대신한다…국내 첫 정서장애 디지털치료제 승인"

범불안장애 디지털 치료기기 엥자이렉스 주요 화면.

스마트폰 앱으로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시대가 열렸다. 디지털치료제(DTx) 기업 하이가 개발한 범불안장애 치료 앱 '엥자이렉스'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으며 국내 최초로 정서장애 분야 디지털 의료기기로 인정받았다.

하이는 9일 엥자이렉스가 지난 7일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내에서 허가받은 디지털치료기기는 총 6개로 늘었다. 앞서 불면증 치료 '솔즈', 알코올 중독 관리 '웰트아이' 등이 승인받았지만, 불안·우울 같은 정서장애를 다룬 제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엥자이렉스는 수용전념치료(ACT) 이론을 모바일 환경에 구현한 소프트웨어다. 환자가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심리치료 기법을 디지털화했다. 앱 내에서 AI가 생성한 긍정적 자기대화를 반복 학습하며, 왜곡된 인지 패턴을 교정하는 방식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한 확증임상에서 엥자이렉스의 효과가 입증됐다. 10주간 기존 약물과 함께 앱을 사용한 환자군은 약만 복용한 환자군보다 범불안척도(GAD-7) 점수가 약 3배 더 개선됐다. 펜실베니아 걱정질문지(PSWQ) 등 2차 지표에서도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났다.

이번 임상을 이끈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불안제 복용량을 줄일 수 있는 보조 치료 수단이 생긴 셈"이라며 "약물 부작용 우려가 있는 환자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엥자이렉스 주요 기능인 셀프톡과 호흡하기.

엥자이렉스 승인으로 국내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동안 불면증이나 금연 등 행동 교정 중심이었던 DTx가 불안·우울 같은 정신건강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경쟁사들의 후속 제품 출시도 예상된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우울증 치료 디지털치료제 '토닥토닥'을 개발 중이며, 올해 안에 임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뉴냅스는 공황장애 치료 앱 개발에 착수했고, 웰트는 사회불안장애 대상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헬스 업계 관계자는 "정신건강 분야는 약물 치료 부작용과 접근성 문제로 디지털치료제 수요가 높은 영역"이라며 "엥자이렉스가 문을 연 만큼 앞으로 2-3년 내 관련 제품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범불안장애 디지털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으며 시장이 먼저 열렸다. 빅헬스(Big Health)의 '데이라이트(Daylight)'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서도 독일 보험사들이 불안장애 디지털치료제에 급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하이 김진우 대표는 "미국 FDA 승인 이후 국내에서도 세계적 흐름에 부응하는 제품을 내놓게 됐다"며 "허가는 시작일 뿐, 실제 환자 접근성을 높이려면 보험 급여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디지털치료제의 최대 과제는 급여 적용이다. 현재 국내에서 급여를 받은 디지털치료제는 단 한 건도 없다. 엥자이렉스도 전액 본인 부담으로 사용해야 해 월 10만원 안팎의 비용이 예상된다. 서울대병원 이진관 교수는 "디지털치료제가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환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선별적으로라도 급여를 확대해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범불안장애는 막연한 걱정과 불안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환이다. 가슴 두근거림, 근육 긴장 같은 신체 증상과 불면, 초조감 등 정신 증상이 함께 나타나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불안장애 환자는 86만5000여 명으로 2017년보다 32% 늘었다. 같은 기간 우울증 환자도 35%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신건강 악화가 두드러졌다. 범불안장애는 일반 인구의 1.6~5%, 병원 방문 환자 중 2.8~8.5%가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많고, 중장년층에서 발병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실제 진단받지 못한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유병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엥자이렉스는 수용전념치료(ACT) 기반으로 환자의 인지 왜곡을 교정하는 방식이다.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Self-talk' 기능이 핵심이다. 마음챙김 명상과 인지적 탈융합 훈련을 결합해 불안을 관리한다. 반면 미국 빅헬스의 '데이라이트'는 인지행동치료(CBT) 기반이다. 불안 상황에 대한 노출 훈련과 행동 수정에 초점을 맞춘다. 6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엥자이렉스(10주)보다 짧지만, 미국에서는 일부 보험사가 급여를 적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 중인 라이프시맨틱스 '토닥토닥'은 우울증 특화 제품이지만 범불안장애에도 적용 가능한 모듈을 준비 중이다. 챗봇 형태로 24시간 대화형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엥자이렉스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료기기다. 일반 웰니스 앱과 달리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방받으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진단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치료제를 약물 대체제가 아닌 '병용 치료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증 환자는 여전히 약물 치료가 우선이며, 디지털치료제는 증상 완화와 재발 방지를 돕는 보조 역할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이는 향후 신의료기술평가 유예를 거쳐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준비할 계획이다. 보험 급여 적용 여부에 따라 시장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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