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간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한 화재 사고가 급증하며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2020년 292건에서 2024년 543건으로 증가해 최근 5년간 약 86% 급증했다. 특히 2025년 상반기에만 296건이 발생하며 연간 6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재산 피해 규모는 5년간 1343억원에 달하며, 사망 7명, 부상 125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가장 심각한 사고는 지난달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다. UPS(무정전 전원장치)용 리튬이온 배터리 192개가 폭발하며 전산장비 740대가 손상됐고,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화재는 다음날 오후 6시에야 진압됐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의 가장 큰 문제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다. 한번 발화하면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연쇄 폭발이 일어나 진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형 이동수단(PM) 화재도 심각하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678건 중 전동킥보드가 485건(71.5%), 전기자전거가 111건(16.4%)을 차지했다. 10건 중 9건이 개인형 이동수단에서 발생한 것이다.
ESS(에너지저장시스템)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ESS 화재는 44건이며, 이 중 70%인 30건은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 전기차 화재도 최근 5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안전한 기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대안으로 거론돼 왔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 스탠다드에너지가 '절대 발화하지 않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 ESS 개발에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에너지플러스(SEP) 2025' 개막총회에서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는 기조강연을 통해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기술적 우수성과 실제 적용 사례를 공개하며 에너지 저장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문제의 근본적 해법, 김 대표의 발표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배터리 기술 다양성 시대..."리튬이온만 고집할 이유 없다"

김부기 대표는 강연 서두에서 배터리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산업이 성숙할수록 그 산업에 요구되는 다양한 특성을 맞추기 위해서 기술의 형태도 다양해 지지만 유독 배터리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제시한 예는 프로세서 유닛(Processor Unit)이다.
“예전에는 CPU(컴퓨터 중앙 처리장치)가 적용됐죠. 하지만 최근에는 엔비디아가 잘 만들고 있는 GPU(Graphics Processing Unit)가 대중화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주요 스타트업들이 잘 만들고 있는 NPU(Neural Processing Unit)도 이제는 점점 보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데이터 저장 장치도 마찬가지예요.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SSD(Solid State Drive)가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공존하고 있죠."
다시 김 대표는 "왜 우리는 이 에너지 저장이라는 중요한 분야에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리튬이온 배터리만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대용량 전력 저장에 필요한 배터리의 조건으로 6가지 기술적 요구사항과 3가지 제도적 요건을 제시했다. 기술적 요구사항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절대 발화하지 않을 것 ▲높은 효율로 손실 없이 전기를 저장할 수 있을 것 ▲셀 특성이 균일해서 대용량화가 가능할 것 ▲긴 수명 ▲빠른 반응성 ▲고출력이다. 제도적 요건으로는 ▲표준화와 인증 완료 ▲실제 대용량 시스템 적용 사례 ▲대량 생산 가능성을 꼽았다.
"대부분의 배터리 기술들은 이 모든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거의 충족했다고 해도 한두 가지가 아쉽거나 또는 한두 가지만 만족할 수가 있는 것이죠.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6가지의 기술적 요구사항과 그 뒤에 말씀드린 제도적인 세 가지 이 모든 것들을 만족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학도로서 좋은 기술을 만들고 싶었고요. 저희가 생각하는 좋은 기술이라 함은 인류의 80%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스탠다드에너지가 좋은 기술로 만드는 배터리의 조건은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인류의 80% 이상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문제 해결 기술 ▲구하기 쉬운 재료로만 구성되고 희토류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을 것 ▲재활용이 쉬울 것 등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탠다드에너지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한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술로 올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글로벌 250대 그린테크 기업에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김 대표는 "선정 기준을 확인해 보니까 첫 번째는 환경의 긍정적인 영향 그리고 혁신성이었다”며 “아마도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이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한국이 주도하는 기술임을 강조했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기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표준화가 된 배터리 기술은 5개가 있는데 그 5개의 기술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표준이 만들어지고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바나듐 이온 배터리입니다. 최근에는 저희가 제품 인증까지 모두 마치고 이제 시장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절대 터지지 않는 배터리"...900도 화염·드릴 관통에도 끄떡없어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대표와 스탠다드에너지가 개발한 바나듐 이온 배터리 조건은 작업자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또는 사용 기한이 지나거나 어떤 최악의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절대 터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발화하지 않는, 정확하게는 발화될 수 없는 배터리 기술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안정성을 증명하기 위한 두 가지 극한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첫 번째는 드릴 관통 테스트다. 완전 충전된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LED 램프에 연결해 전력을 공급하는 상태에서 드릴로 배터리를 관통시키는 실험이다. 영상에서 배터리는 물리적으로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발화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LED 램프에 계속 전력을 공급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김 대표는 "배터리가 뚫렸는데도, 즉 배터리가 물리적 손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동작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 배터리가 동작할 수 있다”며 “마치 좀비 같은 그런 배터리를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더욱 극단적인 화염 테스트였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 50개를 쌓은 배터리 팩을 완전 충전 상태에서 900도가 넘는 화염에 직접 노출시키는 실험이다.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배터리를 불로 태웠지만 폭발이나 발화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그 자체를 발화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배터리가 버티는지를 보여드리는 것"이라 말했다.
한편 김 대표는 현재 배터리 안전 평가 기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많은 배터리 회사들이 자신들의 배터리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가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향후에는 자동차 충돌 테스트와 같이 모든 배터리가 동일한 기준에서 안전 테스트를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스탠다드에너지가 구축한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대량 생산 체계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보시는 이 설비가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완전 자동화 형태로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는 저희 자체 양산 라인 ‘V라인’입니다. 이 설비 구축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이제 곧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이 라인에서 한 해 1700만개가 생산될 예정입니다. 'V라인'의 V는 바나듐(Vanadium)의 첫 글자를 딴 것이죠.”

그렇다고 김 대표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와 리튬이온 배터리 간의 상호보완성도 고려했다고. 김 대표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쌍두마차처럼 에너지 전환 시대를 이끌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두 기술은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잡아먹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라 논제로섬(Non-Zero Sum) 게임입니다. 두 기술은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서로 존재해야만 이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발화가 시작되더라도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방화벽 역할을 해주고 동시에 전력 변동성이 큰 전기가 들어올 땐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이것을 흡수해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과 수명을 향상시키는 상호보완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구상 중이죠."
AI 서버·지하철·건축자재로 확산..."에너지 타일이 ESS 공간 혁명 이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다양한 분야에 실제 적용하며 상용화를 입증하고 있다. 첫 번째로 제시한 사례는 국내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과 협력한 AI 서버용 전력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발화 위험이 없기 때문에 서버 바로 옆에 이격 없이 설치해서 구동할 수 있다"며 시스템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초고속 전력 전환 능력입니다. 갑자기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서버는 전혀 동작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 덕분이죠. 1000분의 3초(3mm/s) 이내로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전력이 끊기더라도 서버 동작을 멈추지 않습니다. 또한 AI 반도체는 성능이 좋으면 좋을수록 전력 변동성이 커집니다. 더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그렇죠. 이 빠른 반응성의 피크 전력을 저감하면서 전기세를 아낄 수 있는 기능도 이 시스템에 함께 탑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NPU 기술과 우리나라의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술이 결합되면 전기를 많이 쓰는 AI 분야에서 전기세를 최대 79%까지 절감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공공시설 적용 사례도 늘고 있다. 대전 지하철 구암역에는 이미 바나듐 이온 배터리 ESS가 설치돼 가동 중이다. 전기세 절감은 물론 시민들이 오가는 지하철 역이라는 점에서 안정성을 중시한 선택이다. 김 대표는 “안정성은 당연하고, 지하철역에서 쓰는 다양한 장비를 서포트하기 위해서라도 고성능의 배터리가 필요했다”며 설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외에도 스탠다드에너지의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반 ESS는 대기업 태양광 시스템과 연계되거나 고성능 전력 시스템이 도입된 도심 곳곳에 운영 중이거나 설치가 예정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탠다드에너지가 그 과정에서 ESS의 형태와 적용 방식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혁신적인 제품은 '에너지 타일'이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건축용 마감재 형태로 가공한 이 제품은 벽면에 타일처럼 부착해 사용할 수 있다. 건설사 공급용으로 개발한 이 에너지 타일은 건물에 설치된 태양광 시스템과 연계돼 타일 형태로 설치됐다. 이는 스탠다드에너지가 최근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기존의 내장재인 마감재의 형태로 가공해서 이것을 벽에 붙이면서 ESS의 설치 공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페인트를 드럼통에 다 모아 놓으면 양이 많아 보이지만 그것을 벽에 펴 바르면 아무런 부피감이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이죠. ESS를 위한 별도의 설치 공간을 할애하지 말고 기존에 있던 건축용 마감재와 결합해 실가동하고 있습니다. 모두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안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타일 형태로까지 제작이 가능하다면 사실상 적용하지 못할 분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선박’이다. 김 대표는 "바다 위에서 불이 나면 도망갈 곳이 없다”며 “그래서 더 안전한 배터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장점은 스탠다드에너지의 향후 사업 확장 계획으로도 이어진다. 김 대표에 따르면 스탠다드 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술을 통해 그리드포밍(전력망 안정화), 제로에너지빌딩용 ESS, 수소경제 섹터커플링, 가상발전소(VPP)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이미 적용한 태양광 시스템과 연계는 ‘태양광 일체형 ESS’ 계획으로 개발 중이다. ‘태양광 일체형 ESS’는 태양광 패널 뒤에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통합해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동시에 ESS가 설치되는 개념이다. 이는 설치 공간과 공사 비용, 공사 기간을 줄이는 혁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더 나아가 김 대표는 “수소 연료전지, 수전해 시스템 등과 결합할 수 있는 섹터커플링 용도로 스탠다드에너지의 배터리가 채택돼 설치될 에정”이라고 덧붙이며 향후 ESS 산업의 방향성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저희가 바라는 ESS의 산업 방향은 기존 저출력 장주기 시스템에만 초점이 맞춰진 ESS 산업 육성 제도의 변화입니다. 앞으로 전력망 안정화를 이루려면 이제는 고출력의, 빠른 반응성을 가진 초속응성 ESS 분야를 반드시 육성해야 합니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와 같이 이제 막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배터리 기술들은 더 많은 실증 지원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