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경쟁이 디지털 공간을 넘어 현실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로봇과 자율주행차, 제조설비 등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새로운 기술·산업 경쟁의 무대로 부상는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반도체·AI 데이터센터와 함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한 축으로 추진하며 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만금은 국내 피지컬 AI 산업의 새로운 시험대로 떠올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월 전북 새만금 112만4000㎡ 부지에 올해부터 9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에 5조8000억원,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에 4000억원 등을 투입해 로봇·AI·수소 에너지를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는 2028년 착공해 2029년 완공하는 것이 현재 계획이다.
문제는 대규모 생산시설과 투자가 곧바로 ‘글로벌 로봇 파운드리’로 이어지느냐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김의겸 의원실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글로벌 로봇 파운드리 도약과 K-피지컬AI 강국 실현을 위한 포럼’의 패널토의에서는 바로 이 질문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토론에는 박기영 법무법인 YK 고문을 좌장으로 장병탁 서울대 휴머노이드 AI 로봇 연구소장,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임태범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지능융합연구소장, 조영훈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 안서연 법무법인 린 변호사와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날 토론에서 패널들의 문제의식은 한곳으로 모였다. 단순히 로봇을 대량 생산할 공장만 만들어서는 글로벌 파운드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누가 로봇을 사고, 누가 부품을 공급하며, 어떤 AI 모델과 데이터로 로봇을 학습시킬 것인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실증과 안전 인증, 책임 기준, 정부 부처 간 정책 연결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로봇 공장만으로 부족하다”…AI 모델·데이터·부품까지 하나로
토론의 첫 화두는 ‘로봇 파운드리’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였다. 이와 관련 장병탁 연구소장은 기존 제조업의 위탁생산 개념을 피지컬 AI 시대에는 더 넓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파운드리는 사실 위탁생산의 개념입니다. ‘이런 것을 만들어주세요’ 하면 다 만들어주는 것이죠. 또 스타트업들이 모든 장비를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걸 넘어서 단순히 로봇 기계만 만드는 게 아니라 정말 AI가 들어가 기능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것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금부터 개발해야 되고, 결국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니까 데이터 팩토리 같은 것도 같이 구축돼야 할 것 같습니다.”

장 소장의 구상에서 로봇 파운드리는 생산공장 하나를 의미하지 않는다. 로봇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공급망에 AI 두뇌에 해당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이를 학습시킬 데이터, 실증 환경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들어오면 제품 개발에서 생산·학습·실증까지 연결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좌장을 맡은 박기영 고문도 글로벌 로봇 파운드리의 핵심을 ‘생태계’로 규정했다.

“로봇을 생산하는 현대차와 같은 그런 업체 하나만 있어서는 절대로 파운드리는 안 되고요. 관련 부품업체와 정부의 제도적인 기반, 실증이나 안전 테스트 그리고 표준화 등을 도모하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합니다. 데이터를 생성하는 데이터 스페이스와 같은 데이터 인프라 또는 데이터 팩토리 같은 것들도 완벽하게 구축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글로벌 파운드리로 부상하고 세계 시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문제는 이러한 생태계를 실제로 움직일 동력이다. 조영훈 원장은 그 답으로 ‘수요’를 꼽았다. 앵커기업의 대규모 투자 발표만으로 부품기업들이 설비를 증설하거나 생산 거점을 이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앵커기업이 그냥 투자 계획을 가지고 ‘투자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속 발주 계획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후속 발주 계획이 준비돼야 부품산업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력사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다음 액션플랜을 주면, 수도권에 있는 부품기업들이 오지 말라고 해도 다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주 규모와 시기 등 중장기 수요가 보여야 부품기업도 생산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거꾸로 말하면 로봇 제조시설을 먼저 만들고 주변 기업이 자연스럽게 모이기를 기대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앵커기업이 명확한 수요 신호를 보내고 이를 토대로 부품기업과 연구기관, 인력과 인프라가 결합돼야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날 토론에서 제시된 로봇 파운드리는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로봇 제조와 AI 모델, 데이터, 실증, 부품 공급망에 실제 수요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법은 사람 있는 공장을 전제로 한다”…피지컬 AI가 마주한 제도의 시간차

생태계 구축 문제가 논의되자 화두는 기술에서 제도로 옮겨갔다. 피지컬 AI는 소프트웨어 안에서만 작동하는 AI와 달리 사람과 장비, 재산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인다. 연구개발 단계의 성능 경쟁만으로 상용화할 수 없는 이유다. 임태범 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별 피지컬 AI 사업들이 각각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도록 사업 간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각 파편화된 사업들이 성과를 내고 KPI를 달성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피지컬 AI 생태계를 안착시키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진 방향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합니다. 공동의 KPI와 공동의 목표를 단기간 내 달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피지컬 AI 전략을 지원하면서 법·제도와 사업, 행정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최신 정보를 입법부와 행정부에 지원할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합니다.”
특히 임 소장은 피지컬 AI가 현실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단계부터 안전성·신뢰성·상호운용성과 함께 ‘책임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만든 판단이 현실 세계의 사람이나 장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성능을 높이는 과정과 안전·책임 체계를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진 안서연 변호사의 발언은 기술 발전과 기존 법·제도 사이의 간극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법제는 공장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법에서도 현장 책임자라든지 현장 소장, 위험물 관리 책임자 같은 사람들을 지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법제와 ‘다크 팩토리’는 기본적으로 정확히 맞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산업안전 규칙도 로봇이 위험하기 때문에 울타리나 펜스를 설치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어서 자율이동로봇(AMR·Autonomous Mobile Robot) 같은 것을 처음부터 생각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무인공장)는 사람의 상시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동화 설비와 로봇 중심으로 운영되는 생산시설을 뜻한다. 실제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산업용 로봇 작업과 관련해 울타리 등 안전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한국산업표준 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울타리 설치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외도 두고 있다. 따라서 쟁점은 기존 규제가 로봇을 전혀 수용하지 못한다기보다, 기존 산업용 로봇을 중심으로 형성된 안전체계를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고 이동하는 피지컬 AI 환경에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어려운 문제는 ‘학습하는 로봇’이다. 기존 기계는 인증받은 기능과 동작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관리할 수 있지만, AI가 탑재된 로봇은 소프트웨어와 모델 업데이트를 거치며 기능과 행동이 바뀔 수 있다. 안 변호사는 이 지점에서 인증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피지컬 AI라는 것이 AI가 판단해서 처음에는 이쪽으로 갔다가 다음에는 저쪽으로 갈 수도 있고, 하루하루 발전할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최초 인증받을 때와 그 다음에 판매할 때 동작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최초 인증이 계속 유효한가에 관한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양 기준의 인증이 아니라 목표나 리스크와 관련한 인증 체계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로그를 보존한다든가 위험성 평가를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것들도 같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토론에서는 OTA(Over-the-Air·무선 업데이트)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나 AI 모델이 변경됐을 때 어느 수준까지 기존 인증을 인정할 것인지, 예상하지 못했던 AI의 자율 판단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범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도 과제로 거론됐다.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 사업자가 다른 경우의 책임 배분, 여러 부처에 나뉜 실증제도, 학습 데이터 활용과 국외 이전 등도 피지컬 AI 산업이 본격화될수록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해지는 영역으로 제시됐다.
기술은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 변하는데 인증은 특정 시점의 제품을 심사하는 구조라면 양쪽의 시간표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날 제기된 규제 문제는 결국 피지컬 AI를 기존 로봇에 AI 기능이 하나 더해진 제품으로 볼 것인지, 소프트웨어와 모델 업데이트에 따라 기능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시스템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정부도 답했다…수요 만들고 기술 내재화해 중소 제조 현장까지

학계와 연구계, 법률 전문가의 주문이 이어진 뒤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들이 정부의 실행 방향을 설명했다. 이동철 산업통상부 인공지능기계로봇과장은 먼저 초기 시장에서 정부가 수요를 만드는 역할을 강조했다. 민간의 로봇 구매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방이나 연구 등 정부가 직접 수요자가 될 수 있는 영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부품과 데이터에 대한 투자도 언급했다. 액추에이터를 비롯한 핵심 부품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데이터 팩토리도 전국적으로 구축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 차원의 피지컬 AI 육성에서도 데이터 인프라와 핵심 부품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토론자들의 주문과 맞닿은 대목이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산업 전략의 주요 축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올해 피지컬 AI 관련 예산을 지난해 2149억원에서 4022억원으로 확대하고 제조·물류·건설 등 현장에 특화된 휴머노이드 로봇과 핵심 부품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정책과장은 기술 측면에서 피지컬 AI의 기반을 컴퓨팅 인프라와 AI 반도체, 시뮬레이션 플랫폼, AI 파운데이션 모델, 로봇·자율주행·드론 등 디바이스와 애플리케이션이 이어지는 구조로 설명했다.

과기정통부의 역할은 이 가운데 월드모델과 합성데이터, AI 반도체, 범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등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지원하고 이를 산업 현장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와 중기부가 각각 산업 현장 및 중소 제조기업으로 기술을 확산하는 방식의 부처 간 협업 필요성도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현재 민간과 함께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를 운영하며 관련 기술과 산업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김민수 중소벤처기업부 제조혁신과장은 피지컬 AI 경쟁력의 마지막 단계가 결국 중소 제조 현장까지 기술이 확산되는 데 있다고 봤다. 기존 스마트공장과 로봇 자동화 보급사업을 바탕으로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을 중소기업 현장으로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결국 피지컬 AI가 확산하는 데 있어 밑단의 중소 제조업 기업들이 전환이 잘돼야 합니다. 기술이 개발되면 저희는 중소 제조업 단의 확산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고요. 내년에는 피지컬 AI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obot Foundation Model) 같은 것들과 관련해 사업을 좀 더 키워가려고 합니다.”
이날 세 부처의 발언을 종합하면 역할의 윤곽도 드러난다. 과기정통부가 AI 반도체·모델·데이터 등 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산업부가 부품과 수요, 산업 현장 확산을 지원하며 중기부가 이를 중소 제조기업으로 넓혀가는 구조다. 이날 토론의 마지막 발언을 맡은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은 한국의 피지컬 AI 전략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기초과학하고 기술하고 산업 생태계를 다 갖추고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글로벌 강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결국 압축 성장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선도 기업에 가능한 자원을 집중했을 때 글로벌 파운드리도 가능하고 피지컬 AI 강국 실현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부품업체와 중소기업의 투자,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장 하나를 만드는 것과 산업 하나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이 목표로 하는 ‘글로벌 로봇 파운드리’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로봇 생산능력뿐 아니라 수요와 공급망, AI 모델과 데이터, 실증·인증·규제를 하나의 생태계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날 토론을 관통한 문제의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