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머노이드 AI 경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사람처럼 생긴 로봇’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 행동하는 AI’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메타(Meta)는 휴머노이드 로보틱스 스타트업 ARI(Assured Robot Intelligence)를 인수하며 로봇용 AI 모델 확보에 나섰고, 테슬라(Tesla)는 올해 자본지출 계획을 250억달러 이상으로 높이며 AI와 로보틱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제네시스 AI(Genesis AI)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GENE-26.5와 인간형 로봇 손을 공개하며 정밀 조작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흐름은 해외 빅테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기업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피지컬 AI 경쟁에 진입하고 있다. 다만 접근법은 해외 빅테크와 같이 휴머노이드 완제품 하나를 전면에 세우는 방식과 다르다. 삼성전자는 제조형 휴머노이드와 양팔 로봇 가능성을 키우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딥엑스와 함께 로봇용 온디바이스 AI 컴퓨팅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 LG CNS는 로봇 학습·운영 플랫폼을, KB금융과 제논은 시니어 돌봄 특화 휴머노이드 서비스를, 마음AI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피지컬 AI 로봇 플랫폼을, LG디스플레이는 휴머노이드용 디스플레이 부품을 앞세우고 있다.
최근 휴머노이드 산업 경쟁의 초점이 '누가 가장 먼저 사람 모양의 로봇을 보여주느냐'에서 '누가 로봇을 실제 현장에서 쓸모 있게 움직이게 하느냐'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휴머노이드 전략은 완제품 단독 경쟁이 아니라 제조, 반도체, 운영 플랫폼, 돌봄 서비스, 소프트웨어, 부품 공급망이 함께 맞물리는 현장형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삼성, 휴머노이드보다 먼저 ‘AI 공장’을 겨냥하다

한국 휴머노이드 AI 경쟁에서 삼성전자는 가장 먼저 거론되는 기업 중 하나다. 다만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방향은 휴머노이드 완제품 공개가 아니다. 핵심은 로봇과 AI 에이전트, 디지털 트윈을 제조 현장에 결합해 생산·물류·품질·안전 전반을 자율화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글로벌 뉴스룸을 통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제조 운영을 ‘AI-Driven Factories’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입고 물류, 생산, 품질검사, 최종 출하에 이르는 제조 가치사슬 전반에 AI를 통합해 차세대 자율 생산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제조 공정 전반에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을 적용하고, 품질관리·생산·물류에 특화된 AI 에이전트를 배치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이 전략에서 로봇은 핵심 실행 수단으로 등장한다. 삼성전자는 자동화를 고도 자율화로 전환하기 위해 생산라인에 휴머노이드 및 작업 특화 로봇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라인 운영과 시설 관리를 위한 운영 로봇, 자율 물류 이송을 맡는 물류 로봇, 정밀 제조 작업을 수행하는 조립 로봇이 언급됐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인프라 환경에는 디지털 트윈과 연계된 환경안전 로봇을 투입해 현장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위험을 선제적으로 줄이겠다는 방향도 포함됐다.
현대차·딥엑스, 로봇 안으로 들어가는 AI 반도체 경쟁

휴머노이드가 현장에서 움직이려면 클라우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AI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 경쟁이 로봇의 몸체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움직이려면 카메라와 센서로 환경을 인식하고, 사람과 물체의 움직임을 판단하며, 지연 없이 행동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로봇 안에서 AI 연산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다.
지난 4월에는 현대차그룹이 AI 반도체 스타트업 딥엑스(DEEPX)와 협력을 확대해 생성형 AI 기반 로봇용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딥엑스는 로봇, 공장, 자율주행차가 외부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AI 작업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NPU(신경망처리장치)를 개발하고 있으며, 현대차의 새 로보틱스 플랫폼은 딥엑스의 2세대 저전력 칩 DX-M2를 활용할 예정이다.
이 협력은 한국 휴머노이드 경쟁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로봇 하드웨어와 동역학 제어 역량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딥엑스의 저전력 AI 반도체가 결합하면, 로봇이 클라우드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더 빠르게 판단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공장, 물류, 자율주행, 안전관리처럼 네트워크 지연이나 전력 효율이 중요한 환경에서 특히 중요하다.
앞서 언급된 제네시스 AI가 로봇의 ‘손’과 조작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현대차·딥엑스 사례는 로봇의 ‘신경계’에 가깝다. 휴머노이드가 사람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모터와 관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계산 능력이 몸 안에 들어가야 한다. 피지컬 AI의 경쟁력이 AI 모델 성능뿐 아니라 반도체, 전력 효율, 열 관리, 엣지 연산 구조와 연결되는 이유다.
물론 이 역시 현대차 그룹과 딥엑스의 협력 단계로 로봇용 컴퓨팅 플랫폼 개발과 생태계 구축이 시작된 차원이며 향후 경과를 지켜봐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 하나는 현대차그룹이 로봇용 온디바이스 AI 컴퓨팅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LG CNS, 로봇을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피지컬 AI 시장 접근

최근 개별 로봇 성능보다 중요하게 떠오르는 기술이 조건이 전혀 다른 각각의 현장에 맞게 학습시키고 여러 로봇을 함께 운영하는 체계다. 이는 로봇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휴머노이드 산업 내 경쟁에 뛰어 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에 들어가려면 도입, 학습, 검증, 운영, 장애 대응, 재학습까지 이어지는 통합 체계가 필요하다. 이 영역에서 LG CNS는 ‘로봇 운영 플랫폼’이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LG CNS는 지난 7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RX 미디어데이를 열고 로봇 학습·운영 플랫폼 ‘피지컬웍스(PhysicalWorks)’를 공개한 바 있다. 이 플랫폼은 로봇 학습을 관리하는 ‘PhysicalWorks Forge’와 여러 로봇을 통합 제어하는 ‘PhysicalWorks Baton’으로 구성된다. 이날 현신균 LG CNS 대표는 “로봇 도입의 핵심이 개별 로봇의 성능보다 현장 학습, 검증, 통합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LG CNS의 이러한 접근은 휴머노이드 경쟁을 하드웨어 관점에서 운영 레이어 관점으로 확장한다. 공장이나 물류센터에는 하나의 휴머노이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협동로봇, 사족보행 로봇, 이동로봇, 휴머노이드, 자동화 설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 집중한 것이다. 로봇이 사람 대신 일하려면 개별 기계의 성능보다 어떤 로봇이 어떤 일을 맡고, 실패했을 때 어떤 로봇이 대체하며, 현장 데이터가 어떻게 다시 학습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해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LG CNS가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을 조율하는 피지컬 AI 경쟁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LG CNS 사례는 국내 기업의 피지컬 AI 전략이 완제품 제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드러낸다. 메타가 로봇 지능을 확보하고, 테슬라가 로봇 제품을 키우는 사이, LG CNS는 로봇이 현장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운영 체계를 겨냥한다. 이는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SI, 클라우드, 데이터, 제조 현장 운영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LG CNS의 포지션은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다양한 로봇을 학습시키고 통합 운영하는 IT서비스·플랫폼 기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휴머노이드 개발사와 경쟁이 아닌 협력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KB금융·제논, 휴머노이드를 ‘돌봄 서비스’로 끌어오다

휴머노이드의 적용처는 공장만이 아니다. 고령화, 돌봄 인력 부족, 재활 보조, 복약 관리 같은 사회적 문제도 피지컬 AI의 잠재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KB금융그룹과 생성형 AI 기업 제논(GENON)의 협업 사례가 이 흐름을 보여준다.
KB금융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I EXPO KOREA 2026에서 시니어 케어 특화 피지컬 AI 돌봄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는 KB금융과 제논이 공동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젠피(GenP)’를 통해 선보였다. 이번 행사에서 젠피는 재활 안내와 복약 전달 등 5개 시나리오를 시연했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휴머노이드를 기술 전시물이 아니라 서비스 시나리오 안으로 끌어왔기 때문이다. 젠피는 관람객 인사, 환경 인식, 일상 정보 안내, 감정·신체 상태 응답, 복약 시간 인지와 약 전달, 재활 동작 보조와 기립 부축 등 돌봄 상황을 전제로 한 시연을 진행했다. KB금융은 향후 단계적으로 피지컬 AI의 돌봄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겠다는 방향도 밝혔다. 특히 오는 7월 KB라이프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 종로평창카운티에 AI 케어로봇 ‘케비’를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KB금융의 시도는 시니어 돌봄 특화 휴머노이드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실증 방향을 제시한 초기 단계지만, 그럼에도 한국형 피지컬 AI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나 금융사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례적인 소식으로, 이는 피지컬 AI가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뿐 아니라 금융, 보험, 요양, 헬스케어, 에이지테크(AgeTech)와 결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인구 고령화 상황을 고려하면 돌봄형 로봇은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필요가 만나는 시장이 될 수 있다.
마음AI·LG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와 부품으로 넓어지는 한국의 참여 방식

한국의 피지컬 AI 경쟁은 완제품만이 아니라 대화형 AI, 데이터 학습, 디스플레이 부품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중 마음AI는 로봇 하드웨어보다 로봇의 지능과 실행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AI는 최근 로봇의 지능을 구현하는 핵심 AI 기술과 로봇 플랫폼을 선보이며, 데이터 수집-학습-추론-행동으로 이어지는 엔드 투 엔드 구조를 강조했다. 이는 특정 기능에 고정된 로봇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역할이 정의되는 피지컬 AI 로봇 플랫폼 ‘진도봇(JINDO BOT)’으로 대표된다.
부품 생태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 사례가 눈에 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SID Display Week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용 P-OLED 솔루션을 공개했다. LG디스플레이에 따르면 이 솔루션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 적용되는 것으로, 고성능 Tandem OLED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이 사례 역시 휴머노이드 경쟁이 로봇 완제품과 AI 모델만의 경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로봇이 사람과 상호작용하려면 디스플레이, 센서, 카메라, 반도체, 배터리, 액추에이터 같은 부품 생태계가 필요하다. LG디스플레이는 휴머노이드 제조사가 아니지만, 로봇의 얼굴과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부품 공급망 관점에서 피지컬 AI 시장과 연결된다.
종합해보면 한국 기업들의 휴머노이드 AI 경쟁력은 ‘누가 가장 먼저 사람형 로봇을 내놓느냐’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더 중요한 질문인 ‘로봇이 실제 산업과 생활 현장에서 반복 가능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승부는 로봇의 외형보다 현장 적용 능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들이 겨누는 시장도 바로 이 지점이다. 완제품, 반도체, 플랫폼, 서비스, 소프트웨어, 부품이 맞물려 피지컬 AI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면, 한국의 휴머노이드 전략은 해외 빅테크를 단순히 따라가는 추격전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다른 경쟁 구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