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네이버가 자사 생성형 AI 기술을 기업과 개발자에게 전면 개방하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24일 네이버클라우드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대표 AI 브랜드인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개발한 세 가지 버전의 경량화 모델이 MIT 라이선스로 배포된다. 'SEED'라는 이름이 붙은 이들 모델은 각각 5억, 15억, 30억 개의 파라미터로 구성돼 있으며, 학술 연구는 물론 실제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국내 주요 기업들이 공개한 AI 모델 중 상업적 제약이 가장 적은 사례다. 그간 LG AI연구원의 엑사원이나 카카오의 카나나 등이 오픈소스로 제공됐지만, 대부분 연구 목적으로만 이용이 허용됐다. 반면 이번 SEED 시리즈는 기업이 자유롭게 수정하고 배포하며 수익화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네이버클라우드 측은 "고성능 GPU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도 AI 기술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이번 개방의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AI 생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멀티모달 처리 가능한 3B, 주목받는 이유
세 모델 중 30억 파라미터 규모의 SEED 3B가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모델은 텍스트 이해를 넘어 이미지와 동영상까지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멀티모달 구조를 갖췄다. 이른바 '시각언어모델(VLM)' 방식으로, 사진 속 객체를 파악하거나 그래프를 해석하고 장면을 설명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네이버클라우드가 공개한 성능 평가 결과를 보면, SEED 3B는 한국어 콘텐츠와 한국 문화권 이미지 이해 능력에서 메타나 바이두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유사 규모 모델을 앞질렀다. 특히 파라미터 수가 훨씬 많은 대형 모델과 견줘도 정확도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성능 덕분에 활용 범위도 넓다. e커머스 플랫폼에서 상품 이미지를 분석해 광고 문구를 자동 생성하거나, 관광 앱에서 사진을 기반으로 여행지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구축이 가능하다. 15억 파라미터의 SEED 1.5B와 5억 파라미터의 SEED 0.5B는 초경량 설계로 응답 속도가 빠르고 서버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 강점이다. 챗봇이나 실시간 웹서비스에 적합한 선택지가 될 전망이다.
경량 모델 먼저, 추론 특화 모델은 상반기 예정
네이버클라우드의 김유원 대표는 이번 공개 배경을 설명하며 기업 현장의 니즈를 강조했다. 그는 "최근 기업들의 가장 큰 니즈는 경량 모델과 실제 서비스 적용이 가능한 추론 모델이었다"며 "특히 GPU 자원이 부족한 기업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범용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춘 경량 모델을 먼저 오픈소스로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경량 모델 공개에 이어, 올해 상반기 안에 추론 능력을 대폭 강화한 모델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 모델은 단순히 수학 문제를 풀거나 코드를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사용자의 복잡한 요청을 이해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설계한 뒤, 필요한 도구를 판단해 실행하는 '자율 추론' 방식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사용자가 "제주도 서귀포 쪽에 아이들하고 갈 만한 관광지 어디 있을까? 후기 좋은 숙소도 예약해줘"라고 요청하면, AI가 직접 웹 검색을 수행하고 관광지 정보를 수집한 뒤, 숙박 예약 API를 자동으로 호출해 결과를 완성한다. 기존에는 개발자가 어떤 API를 쓸지, 어떤 순서로 실행할지 일일이 지정해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추론 모델에는 시각, 음성 정보 처리 기능도 통합된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을 보고 판단하거나, 음성 명령을 인식해 작업을 수행하는 복합적 상황 대응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음성까지 확장…감정 표현 가능한 대화 AI 목표
네이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이퍼클로바X의 멀티모달 역량을 음성 영역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음성 특화 모델은 텍스트 기반 AI가 갖고 있는 지식과 추론 능력을 음성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문장을 합성하거나, 상대방의 말투와 억양을 분석해 의도를 파악하고, 자연스러운 쌍방향 대화를 이어가는 기능이 핵심이다. 단순히 텍스트를 소리로 바꾸는 TTS(Text-to-Speech)를 넘어, 텍스트와 음성을 자유롭게 전환하며 대화하는 AI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소버린 AI 생태계, 한 기업의 힘만으론 불가능
네이버클라우드는 이번 공개를 시작으로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이퍼클로바X를 발전시킨다는 방침이다. 첫째는 경량화를 통한 접근성 확대, 둘째는 멀티모달 처리 능력 고도화, 셋째는 자율 추론 기능 강화다. 이를 통해 네이버 자체 서비스에 적용함은 물론, 기업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국내 AI 오픈 생태계를 이끌겠다는 목표다.
김유원 대표는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버린 AI는 단일 기업의 과제가 아니다. 기술력만이 아니라 일상에 밀착된 AI 활용이 가능한 생태계 조성,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네이버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기술 공개를 넘어, AI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국내 AI 생태계가 소수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