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타트업계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해외 진출의 본격화가 아닐까? 스타트업의 본산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가까운 일본, 동남아 시장은 성공을 꿈꾸는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불리고 있다.
반면 유럽의 경우, 까다로운 규제가 많다는 선입견과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스타트업들의 관심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유럽 역시 한국 스타트업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진행된 ‘2025년 상반기 IBK창공 데모데이’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IBK 창공 데모데이는 특히 자크 플리스 주한룩셈부르크 대사가 직접 방문해 자국 스타트업 생태계와 해외 스타트업 지원·육성책을 언급하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어 행사에 참석한 스타트업들과 관계자들의 관심을 더욱 집중 시킨 것은 ‘유럽시장의 관문 – 룩셈부르크’를 주제로 한 주한룩셈부르크 대사관 구선미 수석의 발표였다. 구 수석은 유럽 진출을 모색하는 한국 스타트업에게 최적화된 룩셈부르크의 특장점과 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단숨에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에 테크42는 룩셈부르크가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는 이유와 함께 현장의 생생함을 담아 구선미 수석의 이야기를 전한다.
룩셈부르크, 금융·지식 기반 경제 전환에 성공한 유럽의 중심지
룩셈부르크는 인구 65만3000여명에 면적은 25만9000ha(헥타르), 그러니까 우리나라 제주도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룩셈부르크는 유럽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고 가난한 소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세기 후반 대규모 철광산이 발견된 이후부터다. 이러한 기회는 산업 혁명 시기와 맞물린 유럽의 엄청난 철강 수요에 힘입어 룩셈부르크를 급성장 시켰다.

하지만 20세기 말 철강 산업의 쇠퇴와 함께 룩셈부르크는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때 룩셈부르크가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한 것이 바로 금융업이다. 유럽 강국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금융업 육성 정책은 룩셈부르크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다. 현재 룩셈부르크는 EU(유럽연합) NATO(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립국이라는 위상과 함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1위인 12만1384달러(2024년 IMF 통계 기준)에 달하는 부유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룩셈부르크가 21세기 들어 새롭게 주목한 먹거리는 다름 아닌 지식 기반 경제 전환과 함께 진행한 ‘우주 산업’이다. 흥미로운 점은 ‘로켓’이나 ‘우주선’ 개발 등의 일반적인 관점의 우주산업이 아닌 ‘우주 광물 채취’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룩셈부르크는 유럽 최초로 우주 자원 채굴을 법제화한 국가로서, 우주 산업을 경제부 산하에 편제해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주 개척이 현실화되고 광물 채취가 인류의 새로운 자원 확보 방식으로 자리잡는 미래를 일찌감치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에 전략적 교두보로 주목 받는 이유는?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룩셈부르크는 전통적인 유럽 강국인 프랑스, 독일을 비롯해 벨기에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지정학적인 위치인 셈이다. 유럽 주요 도시들의 접근성이 뛰어나니 전시회, 밋업, 콘퍼런스 참여도 수월하다.
만약 유럽 시장에 진입을 고려하는 한국 스타트업이라면, 그 중에서도 개별 국가를 넘어 유럽이라는 단일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확장을 고려한다면 룩셈부르크는 굉장히 매력적인 거점이 될 수 있다.
프랑스어, 독일어, 룩셈부르크어가 공용어로 쓰이지만, 영어 사용도 매우 일반적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때문에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화 돼 있다. 다국적 팀 구성이나 다문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유연한 환경이라는 의미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와 팀을 빠르게 구성하고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마켓을 운영하려는 한국 스타트업이라면, 여간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룩셈부르크 정부는 이러한 지리적 장점을 살려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라는 국가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구선미 수석, “룩셈부르크, 정치적 안정성과 글로벌 개방성 세계 최상위”

“룩셈부르크는 UN의 창립 멤버이자 브뤼셀(유럽 철도 교통의 허브라 불리는 벨기에의 도시), 스트라스부르(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수도’로 꼽히고 있죠. 또 유럽은 인구 5억명, 16조 유로에 달하는 단일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바나나 벨트’라 불리는 룩셈부르크 반경 700km에서 유럽 GDP의 70%가 창출되고 있어요.”
이날 룩셈부르크 대사관의 구선미 수석은 룩셈부르크의 특장점을 언급하며 EU 산하 14개 기관이 밀집한 거리 사진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룩셈부르크는 브렉시트 이후 유로존에 직접 연결된 금융 허브로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으로 구 수석은 “유럽 시장은 한국 기업들에게 매력적이지만 어려운 시장”이라면서도 주목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유럽에는 27개국가가 있습니다. 언어도 24개에 달하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아직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굉장히 두려운 시장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룩셈부르크는 돈과 재화, 관련 서비스 인프라, 인재라는,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4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 국가이기도 해요. 국가 등급도 AA라는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회복 탄력성이 3위, 경제 부문은 세계 1위를 자랑할 정도로 높은 글로벌 개방성과 더불어 정치적 안정성도 세계 최상위 수준이죠.”

실제 룩셈부르크는 한국과 같은 안전한 치안 시스템과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다. 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세기 들어 글로벌 서비스 산업과 금융 산업으로 전환하며, 현재는 데이터 기반 디지털 경제 및 우주 산업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전환 과정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활발해졌다는 것이 구 수석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구 수석은 “전체 인구 중 70% 이상이 외국 출신 또는 인근 국가 출신의 크로스보더(국경 간) 노동자로 구성돼 있다”며 물류 측면 역시 장점이 존재함을 언급했다.
구 수석에 따르면 룩셈부르크의 물류 시스템은 이를 테면, 우리나라의 ‘대전’과 같다’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을 도로, 항공, 철도, 리버포트로 연계한 물류 허브로 발전했으며, 카고 운송 중심의 공항은 세계 5위권 규모다. 이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의 상품·서비스 이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는 실질적으로 4개 국가에 진입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자율주행의 경우 국가 간 규제와 기술, 환경이 다르지만 룩셈부르크는 이를 연결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고 있죠. 이 외에도 19개 달하는 글로벌 자산관리사가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두고 있고, 물류 규제가 적다 보니 보험사들도 굉장히 많이 자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전통적인 금융 기업 외에도 테크놀로지를 더한 핀테크 기업도 성장하고 있죠. 잘 알고 계시는 기업으로는 페이팔을 꼽을 수 있어요. 특히 디지털 이코노미에서 가장 중요한 사이버 보안도 강력하게 구축한 덕분에 유럽 데이터 센터의 40%가 룩셈부르크에 위치해 있습니다.”
디지털 인프라와 전략산업, 그리고 스타트업 기회의 지점
구 수석의 말처럼 룩셈부르크는 현재 금융 강국에서 디지털 이코노미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특히 사이버 시큐리티, 슈퍼컴퓨터, 빅데이터, 친환경 기술, 우주 산업 등 특정 분야에서 유럽 내 선도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구 수석은 재차 “사이버보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의 기반 산업으로 간주하고 전략적으로 육성 중”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기술적 강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룩셈부르크는 슈퍼컴퓨터 유치와 함께 데이터 이코노미 기반이 강화되면서, 에스토니아 등 외국 정부가 자국 데이터를 룩셈부르크에 보관하는 '데이터 엠버시(데이터 대사관)'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신뢰 기반은 스타트업에게 필수적인 인프라 안정성을 보장한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룩셈부르크는 특정 산업에 선택과 집중을 추진한다. 구 수석이 "핀테크, ICT, 헬스텍, 인더스트리텍, 친환경, 스페이스, 로지스틱, 사이버시큐리티 분야의 스타트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힌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실제 스타트업 육성과 관련해 룩셈부르크는 이미 20년 전부터 각 산업군별 액셀러레이팅 체계가 갖춰져 있으며, 정부-산업-투자기관 간의 네트워크가 밀착돼 있어 빠른 연결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운영하는 'Fit 4 Start' 프로그램이다. 이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최대 15만 유로의 무상 자금과 코칭, 사무 공간을 제공하며, 글로벌 스타트업의 유럽 안착을 돕는다. ‘Digital Tech Fund’와 같은 전문 분야별 펀드가 다양하게 존재하며, R&D 기업을 위한 세금 감면 및 보조금도 탄탄하다.
또한 Luxinnovation, House of Startups, LHoFT(Luxembourg House of Financial Technology) 등 스타트업 지원기관은 네트워킹, 파트너십 연결, 시장 진입 자문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생태계는 자금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 운영 측면에서도 강력한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구 수석의 말처럼 금융, 우주, 생명과학, 사이버보안, 클린테크 등 특정 산업군에 대해서는 집중 육성 전략이 병행되고 있어 한국의 딥테크 스타트업에게 적합하다.
이날 발표 말미, 구 수석은 한국 스타트업의 룩셈부르크 진출 시 혜택받을 수 있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등을 설명하며 “IBK창공 출신의 스타트업들에게서 성공 스토리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 놓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