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투자사인 DHP가 주관하는 연례행사 ‘DHP 2025’가 ‘AGI 시대의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제로 최근 서울 한국기술회관에서 개최됐다.
지난 13일 진행된 이번 행사는 기술·산업·의료·정책 전반에 걸쳐 거대한 전환이 예견되는 시점을 맞아, 의료 현장에서 AI가 만들어낼 구조적 변화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DHP 최윤섭 대표 파트너는 환영사를 통해 “AGI의 도래는 기술을 넘어 의료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거대한 흐름이며, 지금부터 그 변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오전에는 AGI·의료정책·생성형 의료 AI·파운데이션 모델 등 의료 기술의 핵심 의제를 다루는 키노트, 오후에는 DHP가 투자한 의료 AI 스타트업 8개 팀의 데모데이 행사로 진행됐다.
이중 테크42는 AGI 시대 의료 혁신의 실체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 4개 팀, 퍼플AI(뇌졸중 진료 End-to-End 플랫폼), 에이인비(생성형 AI 기반 항체 치료제 개발), 티알(TR, AI 기반 호흡기질환 진단 통합 솔루션), 리소리우스(RISORIUS, 정신과·신경과 특화 의료 AI)의 발표에 주목했다.
이들 4개 기업은 모두 의료 현장에서 실제 작동 가능한 AI를 만들기 위해 고질적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임상적 성과와 시장성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특히 이날 오후 데모데이에서는 기술 개요를 넘어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데이터의 한계,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 의료진·병원·환자를 동시에 고려한 운영 구조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되며 현장의 관심을 끌었다.
퍼플AI, 뇌졸중 진단·치료 전 주기를 아우르는 End-to-End 의료 AI

첫 발표에 나선 퍼플AI 박병준 대표는 “뇌출혈·뇌경색·뇌동맥류 등 뇌졸중은 사망률이 높고 골든타임이 매우 짧아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사의 기술이 겨냥하는 문제를 명확히 짚었다.
퍼플AI는 뇌졸중 진료 End-to-End를 지원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이날 박 대표는 미국 병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90%의 병원이 의료 AI를 경험해봤지만, 임상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고한 곳은 20% 미만”이라고 설명하며 의료 AI의 ‘효과성 부족’과 ‘신뢰성 문제’가 시장의 가장 큰 장벽임을 지적했다.
퍼플AI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진단 AI(뇌출혈·뇌경색·뇌동맥류)를 상용화했다. 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뇌출혈 진단 AI의 경우 솔루션을 사용한 병원은 오진 환자가 30% 줄고, 진단에서 치료 개시까지 시간이 절반 이하로 단축되는 성과를 올렸다. 뇌경색 진단 AI 역시 기존 CT 기반 진단의 한계를 넘어서 MRI로 가기 전 단계에서 CT만으로도 의료진 대비 약 15%p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뇌동맥류 진단 AI는 특히 5mm 미만의 난이도 높은 병변에서 20%p 이상 높은 정확도를 보여 글로벌 솔루션 대비 경쟁력을 확보했다.

퍼플AI는 국내 시장에서 이미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솔루션은 가산수가가 붙어 병원의 수익성을 높이고, AI가 진단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은 환자 진료가 가능해진다.
박 대표는 “10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저희 솔루션을 도입하면 연 7억원 이상의 추가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며 “현재 100여 개 종합병원 중 17곳과 계약을 체결했고, 60곳 이상과 긍정적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략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퍼플AI는 미국 시장에서 24시간 응급센터 등 중소형 기관을 우선 공략 중이며, 클라우드 SaaS 인프라에 강점을 둔 플랫폼 기업·지역 유통망과 파트너십을 확보했다.
발표 말미, 박 대표는 퍼플AI의 중장기 비전을 “글로벌 Top Neuro-AI Provider”라고 밝히며 “뇌졸중의 진단부터 예후 예측·치료까지 모두 아우르는 End-to-End AI 전환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에이인비, 28일 만에 항체 후보를 만드는 생성형 AI 신약 개발 플랫폼

에이인비(AinB)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최적의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발표에 나선 박은영 에이인비 대표는 서두에 “항체 치료제는 성공률이 낮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고 항체 신약 개발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며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AI를 신약 개발의 핵심 인프라로 채택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AI 신약 개발 시장은 이미 합성 신약 중심으로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복잡도가 높은 항체 치료제 개발에 집중해 AI 항체 분야의 첫 세대 선도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이인비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항체 설계부터 실험 검증까지 전 과정을 AI와 실험이 진행되는 구조로 통합돼 있습니다. 저희는 현재 자체적으로 4만여 건 이상의 데이터를 확보해 AI 모델을 학습하고 이를 플랫폼을 통해서 28일 안에 항원이 결합하는 항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에이인비가 구축한 AI 플랫폼 ‘ALT:D(Antibody Less Than Days)’는 항체 설계부터 실험 검증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다. 핵심은 서열 기반 학습 방식이다.
박 대표는 이 접근을 두고 “비용을 낮추면서도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확장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모델 고도화의 핵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4만여 건의 자체 데이터는 모델 안정성과 예측 성능을 크게 높이고 있다.

에이인비는 이 플랫폼을 통해 28일 안에 항원 결합 항체를 생성하고, 60일 내 검증까지 가능한 프로세스를 구현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기존 항체 개발 방식은 짧게는 6개월, 통상 1~2년 이상 걸린다.
에이인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비임상 후보 형태의 기술 이전이다. AI 기반 항체 후보 발굴 성공률을 10% 이상 지속적으로 입증하고 있으며, 이미 국내외 제약사들과 다수의 PoC·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해 플랫폼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NVIDIA GTC 2025에서 협력 결과를 발표하는 등 기술 검증과 시장 확장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특히 에이인비는 생성형 AI 기반 항체 개발 분야의 퍼스트 제너레이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모델 확장성과 글로벌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2026년 시리즈 A를 준비 중이다.
티알(TR), 의원급까지 확장 가능한 AI 기반 호흡기질환 진단 통합 솔루션

티알은 인공지능이 적용된 효율적인 호흡기질환 진단 검사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김병수 티알 대표는 유병률과 사망률이 높은 만성호흡기질환(COPD, 천식 등)의 조기 발견 실패 문제를 지적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 검사기는 만성호흡기질환을 진단하는 폐기능 검사기의 일종입니다. 보통 만성호흡기질환은 가볍게 여기게 되는데 생각보다 위험한 질환입니다. 세계 사망률 3위에 달하며 전 세계 인구 중 12%가 겪고 있는 질환이거든요. 하지만 초기 증상이 기침·가래 수준에 그치다 보니 환자들은 종합병원 대신 동네 병원을 찾습니다. 하지만 동네 의원에는 폐기능 검사 인프라가 부족해 진단률은 “2~5%에 불과한 거죠.”
김 대표의 말처럼 기존 폐기능 검사기는 고가 장비(억 단위)이며 숙련된 검사 인력까지 필요해 의원급 도입이 어려웠다. 검사가 어려운 이유도 명확하다. 환자가 올바르게 수행해야 하고, 결과 적합성·재현성 판단, 약물 처방 기준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기존 검사 결과 그래프만 보고 천식·COPD 등급과 약물까지 판단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티알이 개발한 검사기를 소개했다.
티알은 ‘더스피로킷’이라는 소형 AI 폐기능 검사기를 개발했다. 기기는 환자가 직접 잡고 볼 수 있으며, 적합성 자동 판정,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전송, AI 진단 및 약물 추천 기능까지 하나에 통합돼 있다. 실제 검사 결과 화면은 환자의 질환을 천식/COPD로 자동 분류하고 처방 약물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김 대표는 도입 사례와 함께 “동네 병원은 검사 수가가 6만원 이상이라 수익성이 높고, 대학병원은 병동 환자 폐기능 검사를 이동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현재 티알 제품은 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370여 의료기관에서 사용 중이며, 베트남 30억·인도네시아 8억원의 수출 계약도 체결했다.
특히 베트남 정부·아스트라제네카와의 협력은 주목할 만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지 폐기능 검사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티알 장비가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베트남은 종합병원에도 검사기가 부족해 국가적 비용 부담이 크다”며 “이 문제를 티알의 AI 폐기능 검사기로 해결하고자 협업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리소리우스, EEG 기반 정신과·신경과 특화 AI 모델 구축

리소리우스는 정신과 및 신경과를 위한 약물 반응성 예측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발표에 나선 배상윤 리소리우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지금 창업 휴학한 저를 포함한 공동 창업자들과 그리고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 몇 년 이상 몸 담아온 개발자들이 만든 팀”이라고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배 대표는 “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의료 분야를 AI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정신과·신경과 영역에서 가장 큰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 대표는 약물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정신과와 신경과 질환의 현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약물치료가 표준이지만 실제 그 효과는 매우 낮다는 것이다.
“2개 이상의 약물을 투여해도 연달아 듣지 않고 1년 이상 개선이 되지 않은 환자들을 치료 저항성이라고 정의하는데, 보통 40% 정도의 환자들이 이런 상황입니다. 토 1차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은 환자는 절반 정도에 달하죠. 당연히 약이 듣지 않으면 증상은 개선되지 않고, 환자의 예후는 나빠집니다. 의료비 증가와 환자의 만족도 감소도 문제죠.”

리소리우스(Risorius)는 뇌파(EEG) 기반 딥러닝 분석 기술을 활용해 개인별 중추신경계 대상 약물 반응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정신과와 신경과 의료 현장에서 가장 난제로 꼽히는 약물 반응성 예측 문제를 뇌파 분석 기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리소리우스의 핵심 기술은 딥러닝(Deep Learning)과 설명가능 인공지능(XAI) 기반의 EEG 분석이다. 이를 통해 EEG 데이터의 전처리와 표준화 문제를 독자 기술로 해결해 상용화의 가능성을 한 걸음 앞당겼다. EEG 데이터는 노이즈가 많고 일반화가 어려운 특성이 있어 AI 개발 장벽이 높다는 점에서 리소리우스의 성과는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배 대표는 “10만 건 이상 정제된 오픈 데이터셋 확보 후 논문 3편을 준비 중”이라며 “국내 12개 이상 종합병원과 공동 연구 중이며 해외 대학 연구도 확대 하고 있다”고 계획을 설명했다.
AI의 차별성은 데이터의 질과 임상 적용 가능성으로 결정 돼

이날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발표에서 다루지 못한 개별적인 에피소드와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의 고민들이 오갔다.
박병준 퍼플AI 대표는 대기업에서 분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AI·의료기기·사업화 전문성을 모두 갖춘 조직 구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신경계 질환에 집중한 배경에 대해 “뇌졸중은 사망률이 높고 사회적 비용이 큰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이인비 박은영 대표는 항체 AI 개발 과정에서 구조 기반이 아닌 서열 기반 접근을 한 이유에 대해 “데이터와 모델의 고도화를 연결점으로 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모아서 모델을 학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비용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서열 기반 접근을 통한 모델 학습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티알 김병수 대표는 의료진이 기기를 선호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AI가 가이드라인을 자동으로 잡아주고 약제를 추천해 급여 삭감 위험을 낮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리소리우스 배상윤 대표는 창업팀 구성과 연구 전략에 대한 질문에 “AI 시대에 레버리지할 수 있는 데이터는 EEG라고 판단했고, 아직 경쟁자가 많지 않은 영역에서 해자를 만들고자 했다”고 답했다.
패널토의 전반에서 각 사의 대표는 AI 성능의 본질이 결국 데이터의 질·임상적 타당성·실제 병원에서의 실행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공감했다. 퍼플AI·에이인비·티알·리소리우스 4개 팀은 각기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의료 현장의 실제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술 우수성을 넘어 규제·수익성·사용성·데이터 구조까지 아우르는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