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아직 멀었다?, 피규어와 어질리티가 먼저 도착했다

  • "시급 5.71달러면 충분"…BMW 공장 점령한 로봇의 정체
  • 2년이면 본전, CFO들이 결재 도장 찍기 시작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공장. 올 2월부터 이곳엔 새로운 동료가 생겼다. 스웨덴 헥사곤 로보틱스가 만든 'AEON'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유럽 완성차 공장에서 처음으로 정식 투입된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영화 속 소재가 될 수 없다. (사진=생성형 AI)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공장. 올 2월부터 이곳엔 새로운 동료가 생겼다. 스웨덴 헥사곤 로보틱스가 만든 'AEON'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유럽 완성차 공장에서 처음으로 정식 투입된 인간형 로봇. 작업자들 옆에서 부품을 옮기고 나르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같은 시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BMW 스파르탄부르크 공장에선 피규어 AI(Figure AI)의 '피규어03'이 시간당 25달러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한화로 약 3만5000원. 얼핏 비싸 보이지만, 미국 창고 노동자 평균 시급 28~30달러와 비교하면 싼 편이다. 게다가 이 로봇은 쉬지 않고, 아프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 숫자가 실험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BMW의 최고재무책임자가 예산 집행을 승인한 '상업 계약'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손익분기점을 넘긴 첫 사례로 기록됐다.

2026년, 휴머노이드는 연구실을 나왔다. 이제 공장 바닥에서 일한다.

■ 물류창고와 조립라인, 로봇들의 새 일터

휴머노이드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물류창고와 제조 현장이었다. 반복 작업이 많고, 동선이 정해져 있고, 환경이 통제된 공간. 로봇이 적응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미국 물류기업 GXO는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디지트(Digit)'를 창고에 배치했다. 디지트는 AMR(자율주행 로봇)과 컨베이어 사이에서 박스를 옮기는 일을 맡았다. 어질리티는 9개 고객사 시설에서 총 6만5000시간 이상의 운영 기록을 쌓으며 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GXO 외에 독일 셰플러(Schaeffler), 캐나다 토요타, 아르헨티나 메르카도 리브레(Mercado Libre) 같은 기업들도 고객사로 이름을 올렸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텍사스 앱트로닉(Apptronik)의 '아폴로(Apollo)'를 베를린 디지털 팩토리와 헝가리 케치케메트 공장에 투입해 물류 자동화를 진행 중이다. 중국 애지봇(AGIBOT)은 스마트폰 제조업체 롱치어(Longcheer) 공장에 G2 로봇을 배치했고, 4개월 만에 양산 라인에 통합시켰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BMW 스파르탄부르크 공장에서 나왔다. 피규어 AI의 '피규어02'는 11개월 동안 1250시간 이상 가동됐다. 9만 개가 넘는 금속 부품을 용접 지그에 실었다. 이 로봇은 주 5일, 하루 10시간씩 근무했다. 5mm 정밀도로 부품을 배치했고, 교대당 99% 이상의 정확도를 유지했다. 한 사이클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84초. BMW는 이후 '피규어03'을 물류 시퀀싱 작업에 투입하며 정식 상업 계약으로 전환했다. 초기 배치 규모는 40대. 2027년까지 점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휴머노이드가 주로 맡는 일은 명확하다. 자재 운반, 재고 보충, 라인 운송, 피킹, 검사. 반복적이면서도 사람의 동선과 비슷한 작업들이다. 아직 정밀 조립이나 복잡한 판단이 필요한 업무엔 투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화된 환경에서 명확한 지시가 주어지는 영역에선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 시간당 5.71달러 vs 28달러, CFO가 움직인 이유

휴머노이드가 실험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로봇의 시간당 운영 비용은 5.71달러. 미국 창고 노동자의 평균 시급 28~30달러와 비교하면 이미 비용 교차점을 넘었다. 로봇 10대를 배치하면 투자금 회수 기간은 1.16년. 물류 창고에선 2년 안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데이터도 나왔다.

이 경제성은 단순히 '저렴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로봇은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다. 휴가도, 병가도 필요 없다. 반복 작업에서 일관된 품질을 유지한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들은 "시간당 5달러의 휴머노이드 1대가 시간당 25달러의 인간 2명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며 "로봇 한 대당 연간 약 20만 달러의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산업 수준의 업타임(uptime)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업 고객들은 장시간 연속 운용, 고장 시 빠른 복구, 쉬운 유지보수, 명확한 안전 책임 체계를 요구한다. 작업 단위당 비용, 가동률, 유지보수 부담, 반복 배치 가능성 같은 정량적 지표가 구매 결정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 테슬라는 느리고, 피규어·어질리티가 앞섰다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테슬라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 배치에선 피규어 AI와 어질리티가 앞서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지난 1월 실적 발표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옵티머스는 아직 우리 공장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주로 학습을 위해 운영 중이다." 2025년 목표였던 5000대 내부 공장 배치는 실제로는 수백 대 수준에 그쳤다. 프리몬트 공장에서의 본격 생산은 7~8월 이후로 미뤄졌다. 2026년 7월 중순 기준으로 아직 생산은 시작되지 않았다.

테슬라가 옵티머스 생산량을 공식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외부에서 유포되는 '누적 5만 대' 같은 숫자는 테슬라가 확인한 바 없는 추정치다. 머스크는 7월 1일 새로 설치된 프리몬트 라인을 돌아보면서도 "아직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테슬라의 2분기 실적 보고서에도 옵티머스 관련 수치는 없었다.

반면 피규어 AI는 BMW 스파르탄부르크 공장에 350대 이상을 납품했고,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으로도 배치를 확대하고 있다. BMW는 '생산 분야 피지컬 AI 역량 센터'를 만들며 휴머노이드 배치를 가속화 중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더 넓은 상업 발판을 확보했다.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RoboFab' 공장은 연간 최대 1만 대 생산 능력을 갖췄다. 현재 9개 고객사에서 6만5000시간 이상의 운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중국, 물량으로 압도하다

중국은 물량으로 압도한다. (사진=생성형 AI)

중국에선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항저우 기반의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는 2025년 5500대 이상을 출하했다. 글로벌 출하량 1위다. 유니트리의 'G1' 모델은 1만6000달러부터 시작한다. 서구 플랫폼의 10분의 1 수준이다.

유니트리는 지난 8월 19일 상하이 STAR 마켓에 상장됐다. IPO 가격은 주당 150.8위안(약 22.3달러). 첫날 주가는 629% 급등했다. 종가 기준으론 460% 상승. 시가총액은 약 530억 달러(약 70조 원)를 기록했다. IPO는 8000배 초과 청약됐다. 중국 본토에 상장된 첫 순수 휴머노이드 기업이다.

물량이 곧 수익은 아니다. 유니트리의 2026년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52% 감소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주가가 급등하던 시기였음에도 말이다. 전략의 차이는 명확하다. 피규어, 어질리티, 앱트로닉은 좁은 작업에 특화된 산업용 로봇을 만든다. 유니트리는 비용과 물량을 추구한다.

중국은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의 약 75%를 장악하고 있다. JP모건 분석이다.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시장 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 2025년 4.4억 달러에서 2035년 1900억 달러로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IDC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 출하량은 약 1만8000대, 매출은 약 4.4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508% 증가한 수치다.

여러 기관의 전망을 종합하면 2026년 시장 규모는 54억~109억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2035년엔 500억~1927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성장률은 28~50% 수준이다. 전망 편차가 큰 이유는 기술 발전 속도와 대량 생산 시점을 각기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응용 분야별로 보면 산업용 협업과 물류가 시장을 주도한다. 2025년 기준 전체 시장 매출의 약 30%를 차지했지만, 2032년엔 67%로 비중이 확대될 전망이다. 상업 서비스와 소매 분야는 2025년 약 29%를 차지했다. 의료, 고령자 돌봄, 가정 지원 같은 소비자 중심 분야는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안전성과 법적 책임 문제로 상용화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역별로는 아시아태평양이 2025년 기준 전 세계 매출의 54.5%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북미는 2025년 18억 달러에서 2035년 493억 달러로, 연평균 39.2%의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유럽은 연평균 36.5%로 성장해 2035년 316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 넘어야 할 벽들

휴머노이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려면 몇 가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밀도와 하중 처리 능력이다. 현재 휴머노이드의 작업 정밀도는 0.5~2mm 수준. 산업용 로봇의 0.02~0.1mm엔 못 미친다.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도 3~10kg에 불과하다. 20kg 이상의 부품을 다루는 작업엔 제약이 있다. 작업 속도도 인간의 30~80% 수준이다.

평균 고장 시간(MTTF)도 개선이 필요하다. 산업용 로봇이 5만 시간 이상의 MTTF를 자랑하는 반면,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는 아직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안전 인증도 과제다. 협동로봇은 ISO 10218과 ISO/TS 15066 기준에 따라 인증을 받지만, 휴머노이드는 아직 명확한 안전 표준이 확립되지 않았다. 폭발 위험 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ATEX나 IECEx 인증을 받은 모델도 극소수다.

데이터 수집도 병목이다. 휴머노이드가 다양한 작업을 학습하려면 실제 환경에서의 대규모 데이터가 필요한데, 상업화된 응용 시나리오가 제한적이라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 높은 제조 비용, 제한된 부품 공급, 생산 확장성 문제도 시장 성장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 한국의 골든타임, 2030년까지

한국기계연구원은 2026년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업적 응용 단계로 전환되는 '상업적 임계점'으로 규정했다. 글로벌 출하량이 2025년 누적 1.8만 대 수준에서 2030~2035년엔 연간 100만 대 규모로 폭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골든타임은 2030년까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5월 '피지컬 AI 모델 기반 휴머노이드 미래선점기술 개발 전략'을 발표했다. 9대 중점 기술 과제를 제시했다. 공통 기반, 한계 돌파, 연구개발 공백 영역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됐다. 2040년 범용 휴머노이드 일상화 시대를 대비한 것이다. 정부는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관련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연간 3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로봇 전용 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다만 아직 실제 공장 투입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 로봇이 일하는 시대

2026년은 휴머노이드에게 특별한 해가 될 것이다. 기술 시연의 시대가 끝나고, 실제로 일하는 로봇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BMW 공장에서 부품을 나르고,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옮기고, 제조 라인에서 금속 부품을 정렬하는 로봇들. 이들은 이제 비용 대비 효율을 입증하며 산업 현장에 자리 잡고 있다.

시간당 5.71달러. 이 숫자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다.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작업 영역에선 이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정밀도, 하중, 안전성 같은 기술적 한계는 여전하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할 문제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확장 중이다. 중국은 물량과 가격으로, 미국은 기술과 AI로, 유럽은 품질과 안전으로 각자의 영토를 확보해가고 있다. 한국이 이 경쟁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2030년까지가 골든타임이다. 그 시간 안에 기술을 쌓고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소비자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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