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성장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미국 등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과 자본을 찾아 국경을 넘는 순간, 기업이 마주하는 제도적 현실은 복잡해진다. 해외로 모회사를 전환한 기업이 정부 창업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 기존 투자자의 세제 혜택은 유지되는지, 국내 연구개발 인력과 사업 기반을 갖췄더라도 한국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제도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팁스타운 S1 팁스홀에서 ‘크로스보더 창업의 기준 : 국경을 넘는 창업, 지금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가’ 세미나가 열렸다. 법무법인 미션과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벤처투자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이종훈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투자·지원 현장에서 발생하는 개념 혼선과 실무적 어려움을 짚었다. 이어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해외 진출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며 한국 창업생태계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기업인데 지원 자격은 다르다”…팁스·엔젤투자 현장의 혼선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종훈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투자·지원 현장에서 체감하는 개념 혼선과 실무적 어려움’을 주제로 크로스보더 스타트업이 실제로 겪는 문제를 소개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이번 세미나가 마련된 계기도 현장에서 제기된 민원이었다. 약 5~6개월 전 크로스보더 기업의 팁스(TIPS) 지원 가능 여부를 둘러싼 문의가 잇따랐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기업 구조를 놓고도 제도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판단 기준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크로스보더에 대한 해석이나 지원 요건의 해석에 있어서 같은 기업이라도 다른 답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지원 자격이 되느냐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동일한 질문에 다양한 기준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팁스 일반트랙은 50% 플러스 1주, 모태펀드는 30% 이상, 창업지원법은 국외 창업기업이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느냐를 봅니다. 같은 질문인데 프로그램마다 기준이 다른 거죠.”

이 회장이 발표에서 소개한 일반 팁스의 해외 본사·국내 자회사 구조에서는 해외 본사의 국내 자회사 지분 50%+1주 이상 보유 등이 지원 요건으로 제시된다. 반면 국외 창업기업의 법적 판단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 해외 신설법인의 의결권 있는 주식 또는 출자지분 30% 이상을 보유하면서 최대주주 또는 최대출자자의 지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 국내 사업과의 연관성 등 국외 창업기업에 해당하기 위한 추가 요건도 검토된다. 이처럼 사업별 투자·지원 요건과 법령상 국외 창업기업 인정 기준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차이가 팁스 프로그램 내부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반 팁스는 해외 본사와 국내 자회사의 역할, 연구개발 수행 주체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후속 지원사업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제가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것은 후속 팁스로 가면 요건들이 또 달라진다는 거예요. 이름도 많죠. 딥테크 팁스, 스케일업 팁스, 글로벌 팁스도 있고 연구개발, 사업화까지 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니까 해당이 되는지 저희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해외 본사가 받은 투자를 후속 투자로 인정할 것인지, 해외 법인이 본사인 경우는 어떻게 볼 것인지 이런 기준들이 다 다른 거죠.”
엔젤투자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 창업기업에 투자한 초기 투자자가 소득공제를 받은 뒤 해당 기업이 해외 모회사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플립(Flip)을 추진하면, 투자 시점과 지분 처분으로 인정되는 시점에 따라 세제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특히 투자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플립이 이뤄지는 경우 소득공제 추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기업의 글로벌 성장이 초기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세금 부담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기업확인 역시 과제로 꼽았다. 국내 법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업계획서와 평가표를 통해 해외 모회사와 국내 자회사가 함께 운영되는 기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해외 투자자의 투자 실적과 신인도를 어떤 자료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제도별 기준을 일시에 통일하기 어렵더라도 기업이 지원 가능성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도록 안내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청이 들어오면 담당자가 ‘이거 됩니다, 안 됩니다’라고 미리 안내하기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오늘 누구를 비난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저는 좋은 거라고 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서 창업하고 외국 사람들도 들어와서 창업하니까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거잖아요. 다른 것들이 당장 어렵다면 안내라도 잘해서 스타트업들에 예측 가능성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떠나는 게 아니라 두 시장을 선택하는 것”…크로스보더 컴퍼니와 양서류 전략

이어 발제에 나선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이러한 혼선의 배경을 한국 창업정책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국내 법인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찾았다. 거기에 더해 김 변호사는 한국 기업이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해외에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여러 국가의 자본시장과 창업생태계에 동시에 참여하는 ‘크로스보더 컴퍼니(Cross-Border Company)’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우선 국내 창업생태계가 성장한 성과와 글로벌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성은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에 참고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2025년 종합 순위 8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26년에는 9위에 올랐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이러한 도시 경쟁력이 반드시 글로벌 개방성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0~2022년 누적 기준 국가별 비교 통계에서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액 중 해외 자본 비중이 약 7%로, 싱가포르와 영국 등 주요 글로벌 금융·창업 거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김 변호사가 해외 자본시장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에서는 대규모 후속 투자와 장기적인 자본조달, 기업공개(IPO) 및 투자금 회수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창업자들은 처음부터 해외에서 법인을 설립할 것인지, 국내에서 성장한 뒤 해외 법인을 모회사로 전환하는 플립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김 변호사는 적잖은 한국 스타트업이 플립을 검토하는 핵심 이유로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을 꼽았다.
“제가 플립 전도사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웃음), 사실 절대 플립을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플립을 하겠다고 오시는 분들에게 왜 하려고 하시는지, 그게 꼭 필요한지를 계속 여쭤봐요. 꼭 플립을 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라면 안 하시는 게 맞다고 얘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플립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말씀드리면 결국은 자본시장 때문입니다. 다만 플립을 했다고 해서 미국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플립의 핵심은 법인의 국적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해외 투자자가 익숙한 법인 지배구조와 투자계약 체계를 갖추고, 해당 국가의 자본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선택지인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국내 사업 기반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한국의 연구개발 역량과 기술·인력을 유지하면서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자본과 고객, 사업 기회를 확보하는 구조가 현실적인 글로벌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를 ‘양서류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저는 이걸 크로스보더 컴퍼니, 양서류 전략이라고 합니다. 단순하게 해외로 나가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두 나라 이상에서 거점을 두고, 두 나라 이상의 생태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실제로 저희 고객 중 상당수는 핵심 역량과 지식재산권(IP)은 한국에 두고 시장 검증과 자원 확보는 현지, 특히 미국에서 수행합니다. 플립을 하더라도 한국에 자회사를 두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어느 한 국가의 창업생태계를 선택하고 다른 국가를 포기하는 방식과 구별된다. 예컨대 미국 델라웨어에 모회사를 설립해 글로벌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한국 자회사에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국내 엔지니어를 고용한다면, 해당 기업의 성장은 한국 창업생태계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 플립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장애물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 투자자의 동의 문제다. 한국 스타트업의 투자계약은 개별 투자자가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동의권을 보유하는 구조가 많다. 반면 미국 벤처투자에서는 우선주주 집단이나 이사회의 일정 비율 이상 동의를 통해 의사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해외로 전환하거나 글로벌 투자자를 유치할 때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김 변호사는 실제 경험한 사례로 투자자 36곳 가운데 34곳의 동의를 확보했지만 2곳의 반대로 투자 유치가 무산된 기업 사례를 언급했다. 해외 투자자가 요구하는 지배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 투자계약을 조정해야 하지만, 개별 투자자의 동의권이 사실상 거부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금 문제도 복잡하다. 국내 법인 주식을 해외 모회사 주식으로 교환하는 전통적인 플립에서는 실제 현금이 유입되지 않더라도 세법상 주식 처분으로 판단돼 양도소득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창업자가 보유한 주식의 취득가액은 낮은 반면 후속 투자로 기업가치가 높아진 상태라면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플립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역설이다. 여기에 기존 투자자의 세제 혜택, 투자계약상 권리 승계, 정책자금 운용기관의 동의 여부까지 얽히면 이해관계자 간 조정 부담은 더욱 커진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모든 기존 주주가 동시에 해외 법인으로 지분을 이전하는 전통적인 플립 대신, 일부 주주만 먼저 지분을 이전하거나 국내외 법인을 병행 운영하면서 경제적 권리를 연계하는 대안적 구조도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 진입을 위해 기업의 구조를 바꿔야 하지만, 정작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과 불확실성이 발생한다면 창업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창업자를 붙잡을 것인가, 세계와 연결할 것인가”…제도 전환의 여덟 가지 과제
김 변호사는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 정책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했다. 가령 이스라엘은 일정 요건을 충족한 해외 플립에 대해 양도소득세 과세를 이연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과세 부담을 완화하고, 향후 실제 지분 매각 등으로 수익이 실현되는 시점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구조다. 두 번째 사례로 언급한 대만 역시 국내 법인 소재지뿐 아니라 자국 내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고려해 일정한 해외 신생기업을 공적 투자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 변호사는 한국에서도 제도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2024년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개정과 관련 제도 정비를 통해 ‘국외 창업기업’에 대한 지원 근거가 마련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인이 해외에 설립한 기업이라도 일정한 지배력과 국내 연계 요건을 충족하면 국내 창업지원 제도에 포함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개별 지원사업과 투자·세제 체계 전반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진단이다.
팁스와 같은 개별 지원사업은 여전히 서로 다른 신청 요건을 적용하고 있으며, 벤처기업확인과 해외 투자 실적 인정 등에서도 국외 창업기업의 사업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정책금융기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플립을 추진하는 기업이 기존 투자자의 동의를 구하더라도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 어떤 기준으로 권리 변동과 해외 법인 전환을 판단할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날 세미나 자료집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확장적 창업생태계를 위한 여덟 가지 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먼저 해외로 나가는 과정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 △창업자를 포함한 플립 양도소득세 과세이연 제도 도입 △해외 법인 지분 회수 시 투자자 세제 혜택의 적용 기준 명확화 △국내 VC의 해외투자 관련 규제 완화 △외국환 신고 절차의 원스톱 처리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이어 국내 창업생태계와의 연결을 유지하거나 해외 인재·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정책금융기관의 플립 동의·사후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국외 창업기업의 팁스 참여 및 벤처기업 관련 규정 정비 △창업가 비자와 외국인 국내 법인설립 절차 개선 △해외에서 성장한 자본과 경험이 국내로 돌아오는 환류 장치 및 범부처 추진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플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즉각적인 면세보다 과세 이연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제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까지 세금 납부를 미루는 방식이라면 창업자의 자금 부담과 국가의 세수 문제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모든 과제를 법 개정 이후에 추진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원사업별 신청 자격과 확인 절차를 명확히 하거나 정책금융기관의 플립 관련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은 행정적 정비를 통해 먼저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두 발제자의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 역시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이 투자·지원 현장에서 강조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고, 김 변호사가 제시한 확장적 창업생태계를 구현하려면 그 기준 자체가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기업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변호사는 “우리 생태계가 글로벌로 나아간 기업들과 연동해서 움직이려면 불필요한 장애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이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한국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벤처캐피털과 펀드, 회사들과 결합해서 성장할 수 있다”며 “잘 나갈 수 있는 나라가 잘 들어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합해보면, 확실한 것은 이미 스타트업의 성장 경로는 국경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업의 법인 소재지만을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가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내 고용과 연구개발, 투자 및 기술적 연결성을 함께 고려하는 기준이다. 글로벌 진출을 독려하는 정책과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기업이 마주하는 제도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한국 창업생태계가 풀어야 할 과제인 셈이다.
한편 이날 논의는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국내에서 창업한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고, 해외에서 성장한 인재와 자본이 다시 한국의 기술과 산업에 연결되는 구조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것인지에 대한 패널토론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