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스닥지수가 하루에 5.52% 내렸다. 2조5000억 달러(약 3350조 원)가 증발한 것이다. 엔비디아는 9.3% 하락으로 올해 들어 쌓아 올린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고, AMD는 17.3%, 마이크론은 17%대, 인텔은 10.3%, 샌디스크는 22%대씩 무너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12.3% 폭락은 약 6년 반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뉴욕이 무너지기 몇 시간 전, 코스피가 먼저 출렁였다. 지난 5일(한국시간) 코스피는 5.28% 하락한 5383.80에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20만1500원(-7.57%), SK하이닉스는 126만4000원(-9.46%)까지 밀리며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오늘(6일) 아시아 증시는 어젯밤 뉴욕의 폭락을 그대로 안고 문을 연다. 이 폭락의 출발점은 경제지표도 실적발표도 아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양원을 모두 내주면서부터 시장의 계산이 바뀌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는 낙관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미국 여론조사 집계기관 디시전 데스크 HQ에 따르면 민주당은 하원에서 258석을 가져갔다. 상원은 민주당 54석, 공화당 44석인데 미시시피와 알래스카 두 곳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선거 전 공화당은 상원 53석과 하원 219석을 쥐고 있었다. 공화당 텃밭 텍사스에서는 제임스 탈라리코(James Talarico)가 켄 팩스턴(Ken Paxton)을 꺾으며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상원의원을 배출했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지나 히노호사(Gina Hinojosa)가 3선에 도전하던 그렉 애버트(Greg Abbott)를 물리쳤고, 조지아의 키샤 랜스 보텀스(Keisha Lance Bottoms)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주지사에 당선됐다. 오하이오에서는 에이미 액턴(Amy Acton)이 비베크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를 이겼고, 메인의 현직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는 낙선했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차지한 것은 20년 만이다.
트럼프 진영이 패배의 원인을 스스로 언급했다는 점이 이번 선거의 특이점이다. 제이디 밴스(JD Vance) 부통령은 "우리가 진 이유는 전쟁"이라고 지목했다. 8개월째 이어지는 이란 전쟁이 휘발유와 비료 가격을 끌어올렸고, 캐나다를 상대로 한 관세 전쟁과 높아진 물가가 불만을 쌓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선거 영향을 인정하면서 "이란 문제는 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과 협력할 여지를 두고 "2년 내내 거부권만 행사하며 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지만, 관세 철회는 부인했다. 민주당이 관세를 견제하는 입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양원 각각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골격은 그대로다.
시장의 반응은 이틀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선거 다음 날 하루는 아마존이 8%, 애플이 7%, 구글이 6% 오르며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가 들썩였다. 규제가 조여지면 막대한 인프라 투자 부담이 줄어 현금흐름이 나아진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시장은 계산을 고쳤다. 규제는 결국 AI 인프라 수요 자체를 줄인다는 판단이 이겼다. 발화점은 텍사스였다. 구글과 메타, 오라클, 오픈AI가 데이터센터에 몰려 투자해 온 주의 지삿대에,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 중지하고 세제혜택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히노호사가 당선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AI 데이터센터 규제 주민투표 41건이 붙었고 그중 40건에서 유권자가 데이터센터 반대 쪽에 표를 던졌다.
CNBC가 유권자들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56%가 데이터센터가 투표 결정의 중대 요인이었다고 답했다. 뉴욕주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소비전력 50메가와트 이상 시설의 신규 허가를 중단했고, 버지니아·조지아 등 12개 주에서 유사한 제한 법안이 논의돼 왔다. 민주당이 발의한 그리드 세이빙법(GRID Savings Act)은 대형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증설 비용을 전액 부담하도록 요구한다. 빅테크의 8000억 달러(약 1070조 원) 인프라 투자가 전기요금이라는 생활 쟁점과 충돌한 셈이다. 오픈AI의 그렉 브록만(Greg Brockman) 공동창업자는 "모두 놀랐다.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발주가 줄어들면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80%를 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구조다. 퀄컴이 메모리 가격 급등이 매출을 압박한다고 밝히며 실적 기대치를 놓친 점도, 호황의 이면이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정책의 축도 옮겨가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관세·규제처럼 대통령 권한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기조가 이어지는 반면, 세제·예산·보조금처럼 의회 협력이 필요한 영역은 제약이 커질 것으로 분석한다. 관세는 살아남는다. 문제는 칩 수출통제다. 이 영역은 오히려 의회로 넘어가며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1월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 H200의 대중국 수출을 25% 관세와 50% 물량 상한 조건으로 허용하며 '원칙적 불허'를 '개별 심사'로 바꿨다. 여기서 반발한 의회는 국방수권법안(NDAA)에 세 법안을 묶는 수정안을 추진해 왔다. 첨단 AI칩 수출을 의회가 심사하는 AI 감독법(AI OVERWATCH Act), 수출 칩에 위치 확인 장치를 단 칩 시큐리티법(Chip Security Act), 대중국 반도체 제조장비 판매를 막는 매치법(MATCH Act)이 그것이다. 매치법은 피트 리케츠(Pete Ricketts) 의원과 앤디 김(Andy Kim) 의원이 공동 발의한 초당적 법안이다. 상원까지 민주당이 잡으면서 판이 달라졌다. 엔비디아가 물밑 협상으로 무산시켰던 '게인 AI 법(GAIN AI Act)'의 전례를 반복하기 어려워졌고, H200 수출 허가 자체가 청문회와 자료 요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주경제가 전한 바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잃은 뒤 1년 단위 허가로 중국 내 시안·우시·다롄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반입해 왔다. 의회가 강경으로 기울수록 이 심사의 문턱도 높아진다.
중국의 움직임도 꼬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확인한 바로는 미국이 수출을 열어준 H200 약 60만 개가 홍콩에 쌓인 채 베이징의 대량 수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각자 1만 개 수준의 칩만 확보한 상태이고, 8카드 H200 서버의 비공식 시세는 1년 새 3배로 뛰었다. 미국이 문을 열어도 중국이 의존도를 경계하며 발걸음을 늦추는 역설이다. 한편 중국이 유예해 온 희토류 수출통제 시한은 오는 10일로 다가온다. 의회가 대중 강경으로 기울면 중국이 통제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금 반도체 시장을 붙잡고 있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규제의 속도고, 다른 하나는 그간 의심하지 않았던 AI 투자에 대한 검증이다. 데이터센터 규제는 연방의 전면 차질이 아니라 주 단위의 속도 조절이다. 규제 장벽은 오히려 기존 인프라를 쥔 강자를 단단하게 만드는 진입장벽으로 작동한다. 반도체의 장기 성장 방향이 뒤집힌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3년간 연간 239%, 171%, 39%씩 뛰어 오르다가 이번에 연초 상승분을 반납한 엔비디아의 한 해는, '무조건 성장'에 붙이던 프리미엄을 다시 묻는 시간이 됐다. 관세와 미국 내 생산 지원 기조가 유지되는 만큼 한국 반도체의 기회도 남아 있다. 데이터센터 규제와 수출통제 강화는 척도가 엇갈리는 리스크로 남는다.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반도체 수요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는 속도가 아니라 견고함이 지수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