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붐이 아이폰 공급망 흔들었다…애플 시총 1위 끌어내린 ‘공급망 역설’

역대 최고 분기 실적에도 주가 7퍼센트대 급락
AI 수요가 메모리·첨단 반도체 공급망 압박
AI 투자 부담 줄인 애플, 공급망 통해 간접 비용 떠안아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반도체 공급망의 우선순위를 바꾸면서,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가총액 경쟁도 다시 뒤집혔다. (이미지AI로 생성)

애플이 엔비디아로부터 되찾았던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다시 내줬다. 애플은 지난달 17일 안정적인 아이폰 판매와 서비스 매출,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부담을 앞세워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30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을 계기로 시장의 평가가 다시 뒤집혔다. 애플은 역대 6월 분기 최고 실적을 냈지만, 31일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7.4퍼센트 급락했다. 엔비디아는 다시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문제는 아이폰 수요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공급 능력이었다. 애플이 예상 수준을 넘어선 아이폰과 맥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 수요까지 확대되면서 첨단 반도체 공정과 메모리 공급망의 여유가 줄어든 것이다.

공급난을 AI 데이터센터만의 영향으로 볼 수는 없다. 애플은 예상보다 강한 제품 수요와 애플 실리콘이 생산되는 첨단 공정의 제한된 가용 물량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만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반도체 공급망 전반을 압박하면서 추가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점은 애플도 피할 수 없었다.

경쟁사보다 AI 인프라에 적은 자본을 투입해 직접적인 부담을 줄였던 애플이 부품 가격 상승과 생산 제약이라는 형태로 AI 경쟁의 비용을 떠안게 된 셈이다.

실적은 최고인데 주가는 급락했다

애플은 역대급 분기 실적을 냈지만, 시장은 공급 제약과 향후 성장 둔화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지=AI로 생성)

애플의 2026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은 1094억2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4퍼센트 증가했다. 희석 주당순이익은 2.02달러로 29퍼센트 늘며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주당순이익에는 미국 정부의 관세 환급에 따른 0.11달러의 일회성 효과가 포함됐다. 이를 제외해도 시장 예상치인 1.89달러를 넘어선다. 애플은 매출과 주당순이익 모두 역대 6월 분기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이폰 매출은 542억5000만달러로 21.7퍼센트 증가했고, 맥 매출은 103억5000만달러로 28.7퍼센트 늘었다. 아이폰 매출은 회계연도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서비스 매출은 307억4000만달러로 12.1퍼센트 증가했지만 시장 예상치인 312억200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했다. 높은 수익성을 가진 서비스 사업의 성장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음 분기 전망도 시장의 눈높이에 못 미쳤다. 애플은 9월 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1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전망치인 약 12퍼센트보다 낮다.

공급 제약은 9월 분기에 더 커질 전망이다. 애플은 6월 분기 맥을 중심으로 나타난 공급 제약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애플 시스템온칩(SoC)이 생산되는 첨단 공정의 가용 물량이 주요 제약 요인으로 지목됐다.

역대 최고 실적에도 주가가 급락한 이유다. 시장은 현재의 판매 실적보다 공급 제약이 앞으로의 성장과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더 크게 반영했다.

AI 서버와 아이폰은 왜 충돌했나

AI 서버와 아이폰은 서로 다른 제품이지만, 한정된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생산 여력을 공유하는 공급망 안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미지=AI로 생성)

AI 데이터센터가 아이폰에 들어갈 부품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아이폰용 저전력 메모리는 용도와 사양이 다르다. AI 가속기와 애플 실리콘도 서로 다른 반도체다.

그러나 두 시장은 한정된 반도체 생산설비와 투자 재원을 공유한다. 메모리 기업은 고대역폭 메모리와 서버용 메모리, 스마트폰·PC용 메모리 가운데 생산 비중을 조정해야 한다. 파운드리 기업도 제한된 첨단 공정 생산 능력을 AI 가속기와 소비자용 반도체 고객에게 배분한다.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는 높은 가격과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 기업이 고대역폭 메모리와 서버용 제품 생산을 확대할수록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공급은 상대적으로 압박받을 수 있다. AI 반도체 주문이 늘면 소비자용 반도체 업체가 활용할 첨단 공정의 여유도 줄어든다.

메모리 가격은 이미 애플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애플이 3월 분기보다 6월 분기에 더 높은 메모리 가격을 지급했으며, 9월 분기에는 비용이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재고를 활용한 완충 효과도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애플은 메모리 가격 상승을 반영해 맥과 아이패드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아이폰 가격은 유지하고 있지만 부품 가격 상승이 계속되면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거나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결국 애플의 예상 밖 수요와 AI 데이터센터 붐이 동시에 공급망을 압박한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다. 과거처럼 공급망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면 추가 수요에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AI 반도체 주문이 급증한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생산 물량을 늘리기 어렵다.

AI 투자 부담은 줄였지만 비용은 피하지 못했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상대적으로 덜 나선 애플도 결국 공급망을 통해 부품 가격 상승과 생산 제약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미지=AI로 생성)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아마존, 메타처럼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과 다른 전략을 택해 왔다. 아이폰과 맥 등 자체 기기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를 중심으로 자체 데이터센터와 외부 클라우드의 서버 연산을 결합하고 있다.

애플 역시 AI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경쟁사보다 기기 자체의 연산 능력과 분산형 컴퓨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규모 중앙집중형 데이터센터에 대한 의존도를 상대적으로 낮췄다. 이러한 전략은 AI 투자비 회수에 대한 우려가 커질 때 애플의 강점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번 공급 제약은 AI 인프라 경쟁에 상대적으로 덜 참여한 기업도 비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메모리와 첨단 공정 수요를 끌어올리면 애플은 더 높은 부품 가격과 제한된 생산량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에 직접 투입하지 않은 비용이 공급망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구조다. 애플은 직접적인 인프라 투자 부담을 줄인 대신 부품 가격 상승과 생산 제한, 제품 가격 인상 가능성이라는 간접 비용을 떠안게 됐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다. AI 가속기를 넘어 네트워크와 서버,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데이터센터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중심에 섰다.

다만 이번 공급 병목을 엔비디아 한 기업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클라우드 사업자와 AI 모델 기업, 데이터센터 운영사, 반도체 설계 기업이 동시에 부품과 생산 능력 확보에 나선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가총액 순위는 주가에 따라 다시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 인프라가 반도체 산업의 생산 우선순위와 공급망의 협상력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경쟁은 모델과 서비스에 머물지 않는다. 한정된 반도체와 전력, 생산설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실제 수익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빅테크 기업의 가치와 제품 경쟁력을 함께 좌우하기 시작했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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