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 발표한 5000억 달러(692조원) 규모의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이어 최근 전례 없는 수준의 민간·공공 연계 기반 AI 혁신 전략 ‘AI 액션 플랜(Winning the AI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에 대응하는 중국과 유럽 등의 AI 투자와 육성 정책도 엄청난 물량 공세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역시 인공지능(AI) 분야에 100조원 규모 민관 공동 투자를 약속한 이재명 정부의 구상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새정부에서 새롭게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의 첫 초대 비서관으로 ‘소버린 AI(sovereign AI, 주권형 AI)’를 주창해 온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을 임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최근 개최된 AI 실전 활용을 다루는 ‘AX 대전환 : AI 어디까지 써봤니?’ 컨퍼런스에서도 ‘소버린 AI’가 주요 키워드로 다뤄지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4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엘타워 6층 그레이스홀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는 국내 주요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친 AI 적용 사례와 전략을 조망하는 자리였다.
이날 ‘한국적 AI 추진과 응용’을 주제로한 배순민 KT AI 퓨처랩장의 기조 연설에 이어 두 번째 기조 연설로 나선 이는 ‘소버린 AI 시대, 국산 AI 반도체로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AI G3 도약’을 주제로 한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였다.
지난해 말 리벨리온은 사피온코리아와 합병을 통해 약 1조 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아 국내 첫 AI 반도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으로 등극했다. 이를 바탕으로 리벨리온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이날 현장 참석자들 역시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박 대표의 발표에 주목했다.
소버린 AI는 기술 주권...‘다 같이 방향을 잡고 가야 할 때

“소버린 AI가 과연 맞는 개념이냐는 논쟁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챗GPT 쓰지 말고 한국형 모델을 쓰자’고 하고, 어떤 분은 ‘엔비디아 H100 갖다 버리고 리벨리온 칩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극단적인 주장도 있고 각자 입장에서 맞는 말씀들이기도 하죠. 하지만 어쨌든 현재는 소버린 AI에 대한 방향이 잡혔고 전력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의견차가 있고 동의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지만, 방향이 정해진 상황에서는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기조연설의 서두에서 ‘소버린 AI(sovereign AI)’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언급하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방향이 조금 다르더라도, 방향 없는 것보단 낫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기술 주권을 향해 가야 한다”고 언급한 박 대표는 소버린 AI에 대해 “가장 핵심은 기술 주권, 우리가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마치 독립운동가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해외 기업과 경쟁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뒤에서 ‘독립운동 되겠냐’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 더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한국형 AI 모델, 한국형 기술 주권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은 앞으로 어떤 문제가 어떻게 발생할지는 모르니 그에 대한 대응책은 갖고 있자 정도죠. 사실 AI와 관련된 패배 의식도 상당합니다. 돈도 없고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의 말들이죠. 저희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독립운동이 되겠냐고 그냥 살자는 말과 같죠. 좋은 미사일은 사다 쓰면 됩니다. 그렇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부적인 기술도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단순한 프로덕트 개념보다는 기술 안보적으로 접근하자는 거예요.”
“지금은 AI 반도체 경쟁 1막”…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가

박 대표는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을 “AI 반도체 경쟁 1막”이라며 이를 ‘삼국지’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보통 삼국지를 이해할 때 한 국가의 등장 인물 별로 이해하는 방식이 있죠. 지금이 1막이라고 한다면 향후 5년에서 10년 후 2막이 열리고 저희 후배들이 이 자리에 섰을 때 리벨리온도 글로벌 빅테크들과 함께 경쟁하는 회사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우선 1막인 지금 상황에서는 엔비디아가 삼국지의 주역인 조조 정도 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기술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세계 챔피온이라고 해서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어 박 대표는 마벨(Marvell), 브로드컴(Broadco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특화형 AI 칩 전략도 소개하며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모델 훈련(training)’과 ‘추론(inference)’을 언급했다. 현재 엔비디아가 모델 훈련에 특화된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 AI 모델들로 서비스를 할 때는 추론에 특화된 추가적인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것. 즉 엔비디아를 분석하고 벤치마크를 하면서 때론 니치 마켓을 찾아내 마켓 플레이스를 넓히는 게임을 하는 것이 리벨리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추론 시장을 ‘AI 반도체 경쟁의 2막’이자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훈련(training)은 범용 GPU(General Purpose GPU)가 장악했지만, 추론(inference)은 미정입니다. 다양한 사용처마다 필요한 요구사항이 달라서, 맞춤형 칩들이 필요한 구조입니다. 그런 점에서 추론 시장은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신흥 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죠. 디 팩토 스탠다드(De-facto Standard, 사실상 표준)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엔비디아조차 이 시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아직 확실히 정하지 않습니다.”
박 대표는 이어 데이터센터의 오퍼레이션 구조에 대해 설명하며, “AI 시대 이전에는 설비투자(CAPEX)와 운영비용(OPEX)가 분리돼 있었지만, 지금은 칩 하나의 전력 효율이 전체 센터의 운영비와 설비 구조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리벨리온의 칩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강점을 가진다. 팬 파워, 쿨링, 전력 구조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효율적인 컴포넌트를 만들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투자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발표 말미, 박 대표는 “이제는 정책 자금과 산업 협력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라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마켓이 열리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재차 ‘협력’을 언급했다.
“다시 한 번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찌됐든 지금은 방향이 정해졌다는 겁니다. 굉장히 좋은 시기죠. 저희라고 모든 사항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습니다. 각 기업마다 각자 색깔이 있고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기술 축구에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거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잘 연결돼 경쟁보다는 협력의 포션을 키워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