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AI에게 지구 살리기를 맡기기 시작했다. 탄소 감축부터 폭우 예측까지, 현장에 투입된 AI의 성과와 그 이면에 숨은 딜레마를 들여다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AI가 2035년까지 연간 14억 톤의 CO₂ 감축을 이끌 수 있다고 추산했다. 런던정경대(LSE) 그랜섬 연구소는 에너지·수송·식품 3개 부문에 AI를 폭넓게 도입하면 연간 최대 54억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마트 제조 분야에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AI 기반 공정 최적화를 적용하면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30~50%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소 포집·저장(CCS) 분야에서도 AI 도입 시 포집 비용을 기존 톤당 100달러에서 70달러까지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기후 대응의 첫 단추는 정확한 예측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2025년 11월 차세대 기상 예측 모델 '웨더넥스트 2(WeatherNext 2)'를 공개했다. 기존 모델보다 예측 정확도가 6.5% 향상됐고, 예보 생성 속도는 8배 빨라졌다. 시간 해상도는 1시간 단위까지 세분화됐으며, 단일 TPU 한 대로 1분 이내에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산출할 수 있다.

웨더넥스트 2는 구글 검색, 픽셀 날씨 앱, 구글맵에 이미 적용됐다. 데이터는 구글 클라우드 어스 엔진과 빅쿼리를 통해 외부 연구자에게도 개방됐다.
AI 날씨 예측의 파급력은 항공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구글 리서치와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아메리칸 항공 파일럿 소규모 그룹과 6개월간 70회 시험 비행을 진행한 결과, AI 기반 비행 경로 최적화를 통해 비행운(contrail) 생성을 54%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비행운은 항공 부문 기후 영향의 약 3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의 교통 신호 AI 최적화 프로젝트 '프로젝트 그린 라이트'는 교차로 정차 횟수를 최대 30% 줄이고, 교차로 배기가스를 평균 10% 이상 낮췄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AI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카이스트와 공동 개발한 AI 초단기 강수 예측 모델 '나우알파(NowAlpha)'를 2025년 5월부터 실제 예보에 적용했다. 나우알파는 레이더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10분 간격, 1㎞ 공간 해상도로 6시간 후까지의 강수 예측 정보를 제공한다. 기상청은 국가 연구기관이 자체 AI 기상 모델을 현업에 도입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2025년 9월 22~26일에는 제주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세계기상기구(WMO)와 공동 주관으로 'AI 초단기예측 시범 사업(AINPP) 워크숍'이 열렸다. 구글, 엔비디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등 주요 기관이 참여해 AI 기상예보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했다. 기상청은 엔비디아의 생성형 AI 모델 '코스모스(Cosmos)'를 활용해 나우알파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경기도는 2024년 7월 '기후행동 기회소득' 앱을 출시했다. T맵 친환경 운전 점수, 수도권 대중교통 카드 데이터와 자동 연동해 탄소 감축 실적을 즉시 인증한다. 출시 17개월 만에 누적 가입자 174만 명을 넘어섰다. 경기도에 따르면 누적 탄소 감축량은 39만 톤에 달한다. 이 사업은 2025년 기후에너지환경부 '지자체 탄소중립 우수사례' 광역 1위(장관상)를 수상했다.
한국 정부는 민간투자를 포함해 2030년까지 기후테크 분야에 145조 원 규모의 투자를 확대하고,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10개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카카오임팩트·소풍벤처스와 함께 2025 기후테크 스타트업 서밋을 열고 AI와 기후테크 결합을 통한 산업 전환 방향을 논의했다.
AI의 기후 기여에는 심각한 역설이 존재한다.
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약 2배로 증가해 945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그보다 훨씬 가파르게 4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AI가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2023년 대비 165%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독일 연방환경청은 AI 데이터센터가 2028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약 1%인 300TWh를 소비할 것으로 내다봤다.
MIT는 2025년 분석에서 AI의 환경 영향은 훈련·추론·하드웨어 제조 과정 전반에 걸쳐 있으며, 전력 소비량만으로는 충분히 측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IEA는 AI가 기후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려면 데이터센터 전력의 재생에너지 전환이 선결 과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I 도입과 에너지 전환이 병행될 때만 감축 잠재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