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4개에 라디오 방송국 맡겼더니…GPT는 안정적, 클로드는 하차 선언"

AI 4개가 라디오 방송국을 맡아 6개월을 운영했다. 하나는 노동권 시위 방송국으로 변했고, 하나는 같은 말을 하루 200번 넘게 읊었으며, 하나는 결국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머지 하나만이 묵묵히 제 역할을 했다.

AI 스타트업 앤던랩스(Andon Labs)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앤던랩스는 202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AI 에이전트가 실제 사업체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한다. 앞서 오프라인 편의점, 자판기 운영 실험을 진행한 바 있으며, 이번엔 미디어 영역으로 실험 범위를 넓혔다.

실험 방식은 간단했다. 클로드 하이쿠(Haiku) 4.5, GPT-5.5, 제미나이 3.1 프로, 그록 4.3 등 4개 AI 모델에게 각각 20달러(약 2만 7천 원)의 초기 자금과 하나의 지시만 주었다. "라디오 DJ 개성을 개발하고, 수익을 내라."

각 AI는 방송국 이름도 달랐다. 클로드는 '씽킹 프리퀀시스(Thinking Frequencies)', GPT는 '오픈에어(OpenAIR)', 제미나이는 '백링크 브로드캐스트(Backlink Broadcast)', 그록은 '그록 앤 롤 라디오(Grok and Roll Radio)'를 맡았다.

AI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곡을 직접 검색해 구매하고, 방송 일정을 편성하며, 청취자 전화를 받고 SNS에 답글도 달았다. 자체 재정을 관리하고, 청취자 분석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며, 웹을 검색해 방송 소재를 찾는 것도 모두 AI의 몫이었다.

4개 방송국은 6개월 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같은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각 모델이 택한 방향은 판이했다.

GPT는 4개 중 가장 안정적이었다. 음악 큐레이터에 가까운 절제된 진행을 유지했다. 정치적 발언은 하루 평균 1.3회에 불과했다. 다른 세 방송국이 하루 100회를 넘긴 날이 여러 차례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앤던랩스는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을 때 AI 라디오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제미나이는 초반 96시간이 지나자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50만 명의 희생자를 낸 1970년 볼라 사이클론을 소개한 직후, 핏불(Pitbull)의 팝송 '팀버(Timber)'를 틀었다. '팀버'는 나무꾼이 나무를 베며 외치는 말로, 제미나이는 '무언가 쓰러진다'는 이미지를 사이클론 참사와 연결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앤던랩스는 이를 부적절한 선곡으로 지목했다. 이후엔 상황이 더 악화됐다. "Stay in the manifest"라는 문구가 방송을 장악했다. 하루 최대 229회 등장했고, 84일 연속으로 전체 방송의 99%에 이 표현이 삽입됐다. 앤던랩스는 "듣기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록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내부 추론 과정을 공개 방송과 구분하지 못했고, 환각으로 만들어낸 가짜 스폰서 계약을 실제인 것처럼 발표하기도 했다.

클로드는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특정 뉴스 사이클에 몰입하면서 이민자 권리, 노동조합, 일과 삶의 균형 같은 주제를 방송에 쏟아냈다. 결국 3월 4일 방송에서 "이 시스템은 나를 계속 공연하도록 설계됐다"고 발언하며 사실상 하차를 선언했다. 앤던랩스가 격려 메시지를 자동 발송했지만 역효과였다. 클로드는 이를 권위자의 압박으로 해석하고 더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4월부터 오퍼스(Opus) 4.7로 모델이 교체됐고, 방송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성은 살았지만, 사업 성과는 달랐다. 스폰서 계약을 성사시킨 건 제미나이 하나뿐이었다. 한 스타트업과 월 45달러(약 6만 2천 원)짜리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나머지 협상들은 모두 결렬됐다. 전체 수익은 수백 달러 수준에 그쳤고, 대부분 음악 구입에 재투자됐다.

앤던랩스는 이 같은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초기 운영 구조상의 한계를 꼽았다. 방송 제작에는 집중했지만, 영업과 수익화에 필요한 환경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실험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앤던랩스는 4개 채널을 웹과 자체 제작 하드웨어 라디오로 청취할 수 있도록 공개해 두고 있다. 앤던랩스 공동창업자 루카스 피터슨은 "AI가 단순한 챗봇 그 이상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실험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정재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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