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섹터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니라 특정 산업 영역에 특화된 '버티컬 AI'였다.
광고마케팅 자동화 기업 매드업이 6월 일반청약에서 경쟁률 3305대 1, 청약 증거금 약 6조6000억원으로 올해 코스닥 기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데 이어, 제조·국방 현장 특화 AI 기업 마키나락스는 5월 청약에서 2807.8대 1, 약 13조8722억원의 증거금을 끌어모으며 올해 최고 청약 증거금 기록을 세웠다. 두 기업 모두 범용 AI가 아닌, 수년간 축적한 도메인 전용 데이터와 실무 자동화 기술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버티컬 AI는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인공지능을 뜻한다. 범용 데이터 대신 자체 데이터를 활용하는 구조 덕분에 보안과 정확도에서 강점이 있다. 제조·국방 분야에서 도입 관심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진입장벽도 높아, 고정밀·고신뢰·고보안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만큼 후발 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다.
마키나락스의 경우 이 진입장벽이 곧 투자자 설득 논리가 됐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6000개 이상의 AI 모델을 현장에 적용하며 축적된 25TB 이상의 산업 특화 데이터 자산이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만드는 핵심 경쟁력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과도 수치로 제시됐다. 자동차 관련 기업 A사는 마키나락스 AI로 로봇 작업 경로를 최적화해 작업 시간을 93% 단축했고, 반도체 기업 B사는 PCB 부품 배치 최적화로 48시간 걸리던 작업을 4시간으로 줄였다.
매드업은 광고 집행 데이터를 무기로 삼았다. 이주민 대표는 "광고비 1조원을 집행해야 얻을 수 있는 광고성과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라며 자사 AI 에이전트 'LEVER Xpert(레버 엑스퍼트)'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레버 엑스퍼트는 마케팅 데이터 수집 업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하며, 2024년 17억원이던 솔루션 매출이 2025년 49억원으로 285% 증가했다. 삼성전자, 올리브영, 무신사 등 국내 대형 브랜드의 해외 광고 캠페인을 담당하며 쌓은 레퍼런스도 신뢰도를 높이는 근거가 됐다.
버티컬 AI의 상장 전략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범용 모델을 개발하는 대신 특정 도메인에서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와 실적을 쌓은 뒤 공모 시장에 나서는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VC 리서치 기관 유클리드 벤처스에 따르면 2025년 버티컬 AI 기업의 IPO는 전체 15건 중 9건을 차지했으며, 합산 가치는 43억 달러(약 6조2000억원)에 달했다. 2년간의 IPO 가뭄 이후 창구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상장 후 과제도 남아 있다. 매드업은 2024년까지 적자가 지속됐으며 누적 손실이 350억원에 달한다. 마키나락스 역시 흑자 전환 이전 단계다. 글로벌 빅테크의 산업 AI 시장 진출 가능성도 변수다. 다만 마키나락스 윤성호 대표는 "경쟁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며, 글로벌 빅테크가 클라우드 기반 전략적 의사결정이나 ERP·재무 영역에 집중하는 반면, 자사는 공장과 전장 등 실물 현장에서 직접 동작하는 AI에 특화됐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버티컬 AI 기업의 상장 흐름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다. 매드업·마키나락스 두 기업의 잇단 흥행이 후속 주자들의 상장 시도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LLM이 아닌 현장 데이터와 검증된 레퍼런스로 승부하는 버티컬 AI의 상장 전략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새로운 경로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