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N번방이 없기를 바랍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사실 나도 텔레그램(Telegram)이라는 걸 쓴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니던 선후배들과 함께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에서 '순도 100%'의 일상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들과의 대화만 존재하는 방 하나만 개설되었을 뿐 나머지 99%의 대화는 카톡에서 이루어진다. 메신저라는 정체성을 가진 텔레그램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그 어느 날, 이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미성년자 및 일반 여성의 성 착취 사건'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연령불문하고 타깃이 될법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이나 사진을 찍도록 (누군가) 협박하고 강요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과 사진은 음란물이 되어 마치 물건이라도 된 듯 메신저를 통해 팔려나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키득거리며 즐겨봤을 것이고 누군가는 돈을 챙겼을 것이며 누군가는 이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마치 지옥에 갇힌 듯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출처 : 넷플릭스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에는 1번부터 8번까지 이른바 'N번방' 그리고 박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개설한 '박사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곳에서 여성들의 성 착취 영상과 사진 등 음란물이 공유되고 판매되었다고 한다. 박사를 포함한 가해자들 모두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을 통해 이를 거래했는데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것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압수수색이 어렵다는 이유였다고 한다(텔레그램은 2013년 개발된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로 러시아에서 만들어졌다. Made by Russia) 또한 비밀 대화방의 특징인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발신자부터 수신자까지 정보의 암호화를 유지하면서 전송하는 방식)를 사용하므로 서버에서 대화 내용을 해독할 수도 없고 대화 내용 역시 삭제가 가능한데 일정 시간 이내 자동 삭제 설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카톡보다 기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박사를 비롯한 텔레그램 유저들은 비밀대화에 따른 기능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일반 계좌를 통한 현금 이체가 아니라 문화상품권부터 암호화폐 등 추적이 어려운 자산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비밀 대화방에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렀음에도 대화방 자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개설되는 등 수차례 반복되기도 했고 박사라는 가해자가 사용한 이메일도 자산 거래를 위한 자신의 거래처도 여러 차례 바뀌기도 했단다.

어떠한 스릴러 영화보다도 끔찍한 스토리로 범벅된 N번방 사건의 전말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제의 콘텐츠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구성도 연출도 뛰어났는데 무엇보다 해당 내용 자체가 픽션 같은 논픽션이라는 점, 말 그대로 '현실판 (사이버) 지옥'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작품은 N번방 사건의 추적기를 그리는 랜선 스릴러다. 모바일에서 이뤄졌던 일들을 화면으로 구성하고 재연해 이해도를 높이고 몰입감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당시 사건을 쫓아다녔던 한겨레 기자부터 jtbc, SBS 등의 프로듀서와 작가, 정체를 가린 추적단 불꽃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과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니 더욱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추적단 불꽃의 집요한 추적과 용기가 대단했다고 본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추적단 불꽃에서 '불'은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비대위원장 박지현이고 '단'으로 활동했던 인물은 '불꽃'으로 이름을 바꾸고 여전히 익명 활동 중에 있다고 한다.

N번방 사건을 쫓아 취재했던 한겨레 오연서 기자의 증언 모습. 출처 : 넷플릭스

이 콘텐츠에 등장하는 한겨레 기자, PD, 프로듀서, 범죄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쫓는 자'의 경험담이 자칫 정신없이 난립할 수 있겠지만 N번방 사건이라는 중심으로 모두 이어지고 있고 그 조각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러닝타임에 따라 착착 맞춰지는 모양새였다. 이 작품을 연출한 최진성 감독은 영화 <소녀>라는 미스터리 영화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는데 필모그래피의 대다수 장르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작품에서는 N번방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가 마치 텔레그램에서 이야기하듯 모바일 디스플레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했고 자극적이지 않은 듯 보이지만 충분히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법한 애니메이션을 적절하게 섞어내 이해도와 몰입감을 높였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 출처 : 넷플릭스

실제로 N번방의 주요 피의자인 박사와 갓갓 등은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다. 더구나 2020년 이들의 신상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박사 조주빈은 박사방을 운영하고 성 착취에 따른 음란물 제작과 유포 등 14개 혐의로 징역 42년에 전자발찌 부착 30년을 선고받았다. 갓갓이라는 이름의 문형욱은 박사와 (2020년 당시 24살) 동갑인데 N번방을 최초 개설한 뒤 조주빈과 마찬가지로 음란물 제작과 유포 등의 혐의로 징역 34년을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을까? 가해자들 일부는 법정 구속되었지만 '물건(성 착취물)'을 파는(sell) 사람과 더불어 이를 사는(buy)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다른 처벌이 없다는 것에 미디어는 주목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연출한 최진성 감독부터 한겨레 측 기자들까지 입을 모은다. 말하자면 현재 진행형.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허술한 부분들이 존재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 비대면 사이버 범죄, 모방 범죄까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물론 104분 밖에 되지 않는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닥친 과제를 위한 충분한 해법이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찌 됐든 경각심을 준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겠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추적단 불꽃. 출처 : 넷플릭스

<그것이 알고 싶다>라던가, 등 일반적인 교양 다큐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가해자들의 법정 구속 후 한마디는 (영혼이 있든 없든) "죄송합니다" 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조주빈의 경우는 "악마의 삶을 멈출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을 쫓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은 여기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에게만 포커싱이 되어있을 뿐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피해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애초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초기부터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피해자가 그 어떠한 내용이든 인터뷰 한마디 하는 순간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고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완벽히 배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이 살아줬기에 그리고 용기를 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제작진은 전했다. 당시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사이버 지옥이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절대로 반복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아래 사이트를 일부 참고했습니다.

  • <“n번방은 당신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연대로 범인 잡았다”>(2022.5.26),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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