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플랫폼법’에 대한 몇 가지 우려

[AI요약]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발 ‘플랫폼 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이 다시금 논란의 불을 당겼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 제대로 실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을 사전에 규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발 ‘플랫폼 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이 다시금 논란의 불을 당겼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발 ‘플랫폼 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이 다시금 논란의 불을 당겼다. 독과점된 대규모 플랫폼의 폐해를 줄이고 소수의 핵심 플랫폼 사업자, 이른바 시장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규제해 플랫폼 시장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위반행위를 금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바로 직전까지 정부 정책 기조였던 ‘자율 규제’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공식적인 입장 변화로 여겨지며 각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일관성을 상실한 정부의 플랫폼 정책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듯 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은 모바일 인터넷 대중화 이후 플랫폼 산업의 부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율 규제'로 선회하는 듯했던 정책 기조는 지속적으로 불거진 플랫폼 기업들의 갑질 논란과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먹통 사태로 인해 다시금 규제 강화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미지=픽사베이)

플랫폼 산업을 기존 산업과 같이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시도는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추진된 이른바 ‘뉴노멀법’은 플랫폼 서비스를 기존 기간통신산업이나 방송산업처럼 규제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전문가와 학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플랫폼 산업을 ‘대규모유통사업자’로 규정해 규제하려는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추진되며 같은 논란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은 윤석열 정부 들어 ‘자율 규제’ 기조로 전환되며 잠시 변화를 맞이하는 듯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불거진 플랫폼 기업들의 갑질 논란과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먹통 사태였다. 이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카카오를 직격하는 발언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공정위 발 ‘플랫폼법’ 추진이 소식이 알려지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 한국 플랫폼 산업의 특수성 간과돼

지난해 공정위의 '플랫폼법'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각 업계 협회가 소속된 디지털경제연합은 공동입장문을 내고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논의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플랫폼 산업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플랫폼 산업은 미국과 유럽,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앞선 기술력을 무기로 애플,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각국 디지털 서비스와 플랫폼 산업 점유율을 늘려 나가는데 혈안이 돼 있다.

유럽(EU)은 사실상 미국, 중국 등 플랫폼 기업들에게 점령당한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강력한 규제 내용을 담은 디지털시장법(DMA)을 통과시키며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주의라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강력한 자국 기업 보호와 육성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까지 성공한 플랫폼 기업을 배출하고 있다. 더구나 초기 막강한 내수 기반으로 성장한 이들 중국계 플랫폼 기업들, 이를테면 ‘틱톡’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은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어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상대로 국내 토종 플랫폼 기업들이 힘겹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과 달리 국내 플랫폼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바일 플랫폼 분야 국내 1위를 고수했던 카카오가 최근 유튜브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구글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점유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1위인 네이버와 격차를 좁히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인 플랫폼 서비스는 국경과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법은 관할구역 내에서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국내법에 눈치를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글로벌 공룡 기업보다 국내에 기반을 둔 토종 기업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구글갑질방지법’ 등 글로벌 빅테크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애플, 구글 등은 갖은 편법을 동원하며 이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구글갑질방지법’ 등 글로벌 빅테크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애플, 구글 등은 갖은 편법을 동원하며 이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실증 없는 섣부른 규제로 소비자 후생 훼손 될 수도

소수의 성공한 대형 디지털 플랫폼이 그 지배력과 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을 기반으로 수익화에 나서는 과정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내 대형 플랫폼 서비스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갑질 문제, 서비스 안정성을 위한 투자 부족 등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공정거래법 등 기존 제정돼 있는 법률로도 충분히 규제와 시정 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국내 시장에 집중된 플랫폼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해외 진출로 전환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되는 이번 ‘플랫폼’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공개된 내용을 보면 구체적인 연매출액과 시장 점유율, 이용자 규모 등을 기준으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사전 규제는 내용이 골자다. 정략적 기준으로 연매출이 국내 총생산(GDP)의 0.075% 이상이면서 이용자수 750만명 이상 또는 GDP의 0.025% 이상이면서 시장 점유율 75% 이상인 플랫폼 기업이 대상으로 알려졌다. 또 끼워팔기, 자사우대, 최혜요구 대우, 멀티호밍(자사 플래폼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 이용을 막는 행위)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 제대로 실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을 사전에 규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공정위 ‘플랫폼법’의 규제 내용 상당 부분이 EU의 디지털시장법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은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공정위 ‘플랫폼법’의 규제 내용 상당 부분이 EU의 디지털시장법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이다. 이는 업계와 학계에서 지적하는 가장 큰 우려점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EU의 규제 대상은 애플, 구글, 메타 등 자국 플랫폼 산업을 점령하고 있는 글로벌 공룡들이다. 게다가 법이 발효된 이후 EU 내에서도 일부 성장하고 있는 자국 기업까지 규제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애플은 EU의 디지털시장법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앱스토어 정책을 변경, 3월부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공식 앱스토어를 경유하지 않는 외부 결제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애플의 앱마켓 생태계에 종속된 많은 기업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애플이 외부 결제 허용과 함께 제시한 ‘핵심 기술 수수료(Core Technology Fee)’ 때문이다.

애플은 기존 앱스토어 결제를 강제할 때 부과한 15~30% 수수료 대신, 외부 결제를 채택할 때 추가로 100만회 이상 다운로드된 앱 대상으로 0.5유로(한화 약 725원)의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무료앱도 예외가 아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EU의 디지털시장법을 수용하는 듯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서 수수료를 신설해 수익을 더 만들어 낸 셈이다. 이러한 수수료 부담은 결과적으로 각 기업의 앱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른바 ‘소비자의 후생’이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의문… 미국계 글로벌 플랫폼 규제 가능할까?

EU의 디지털시장법이 미국계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추진되는 ‘플랫폼법’은 오히려 국내 토종 플랫폼 서비스의 위축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 역시 전문가들이 공히 지적하는 우려점이다.

다수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단골 사례가 과거 국토교통부의 주도로 이뤄진 ‘타다금지법’이다. 당시 국토부는 타다큼지법을 추진할 때 ‘더 많은 타다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카카오 택시 독과점 환경이 되며 섣부른 규제가 건전한 경쟁 시장 형성을 망가뜨린 결과를 낳았다.  

한때 국내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1위를 기록했던 ‘판도라TV’의 사례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당시 선정적인 영상이 걸러지지 않고 있는 문제점이 대두되고 규제가 적용된 후 판도라TV는 이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유튜브에 급속도로 점유율을 잃고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적용 이후 국내 VC(벤처캐피탈)들은 동영상 서비스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국내 동영상 서비스는 현재 유튜브 독점 환경으로 굳어지게 됐다. 문제는 유튜브 역시 가짜뉴스를 비롯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21년 '타다금지법' 통과 1년 반만에 나온 다큐멘터리는 타다금지법이 통과된 배경과 이후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주목받았다. (포스터=블루)

이러한 문제는 비단 유튜브만이 아니다. 모기업인 구글을 비롯해 애플, 메타, 넷플릭스 등 다수의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편법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된 법인세를 내지 않고 있다. 또 공정위에 규제에도 법적 대응을 통해 반발하는 태도를 이어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상공회의소는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한국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표면적인 입장은 소비자의 실익을 저해하는 경쟁을 짓밟고 건강한 규제 모델의 기본이 되는 좋은 규제 관행을 무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재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더 강하면 강하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다.

찰스 프리먼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 (사진=코트라)

법 제정도 전에 이미 미국과 무역 마칠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법이 통과되더라도 과연 미국계 글로벌 기업을 규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잘못은 바로잡으면서 규제보다는 진흥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이는 ‘사전규제 지양’ ‘글로벌 경쟁력 증진 원칙 수립’ ‘협력적 거버넌스 설계’ ‘이용자 후생 증진’ ‘적극적 자율 정책의 증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며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해 우리나라 각산업 생태계를 보호·육성 할 묘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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