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넘어 기술로'… 다쏘시스템, 한-EU ESG 협력 모델 꺼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다쏘시스템)

"ESG를 규제 준수 차원이 아닌, 기술 혁신의 기회로 봐야 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FKI) 타워에서 열린 'KEY ESG & 지속가능성 포럼'에서 프랑스 산업 소프트웨어 기업 다쏘시스템이 던진 메시지다. 약 100여 명의 한국·유럽 ESG 전문가와 에너지·금융 업계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쏘시스템은 자사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활용한 ESG 실행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번 포럼은 KEY(Korea Europe & You), 한국경제인협회, 고려대 EU 장모네 센터가 공동 주최했으며, 프랑스 크레디 아그리콜 CIB와 다쏘시스템이 후원했다. '한국과 유럽의 에너지 믹스와 지속가능 금융'이라는 주제 아래, 양 지역의 정책 경험과 산업 기술력을 결합한 현실적 협력 모델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ESG, '서류 작업'에서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로

개회식에서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는 "ESG는 더 이상 연말에 보고서 내는 과제가 아니다"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제품 설계 단계부터 탄소 배출량을 시뮬레이션하고, 공급망 전체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진짜 ESG"라고 강조했다.

첫 세션 발표자로 나선 김현 다쏘시스템코리아 신사업 담당 파트너는 'ESG 규제 대응을 위한 기술 중심 전략'을 주제로 구체적 방법론을 공개했다. 그는 "유럽의 CSRD(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미국의 SEC 기후 공시 규정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단순 데이터 수집만으로는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김 파트너는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제품 설계 단계에서 탄소발자국 시뮬레이션 △공급망 전 단계의 ESG 데이터 통합 관리 △생애주기(LCA) 분석을 통한 배출 저감 최적화 등이 핵심이다.

특히 그는 "과거에는 제품이 나온 뒤 사후 평가했지만, 이제는 설계 단계에서 가상으로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테스트해 가장 친환경적인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며 '디지털 트윈' 기술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한-EU 라운드테이블: "지정학 리스크 속 민간이 답 찾는다"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는 한국과 유럽의 에너지 정책 전문가, 다쏘시스템 기술진,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해 '에너지 전환 시대의 도전과 대응'을 논의했다.

토론에서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에너지 전환에 미치는 영향이 집중 조명됐다. 한 유럽 측 참석자는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면서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며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LNG 수입 증가 등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 측 전문가는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탄소중립 달성이 더 어렵다"며 "하지만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에서 축적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ESG에 접목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맞받았다.

참석자들은 "정책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이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AI 기술로 자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며 "이것이 한-EU 협력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영선 전 장관 "말보다 행동, 한-EU 협력 더 깊어져야"

폐회사를 맡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한-EU 협력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유럽은 ESG 규제 설계에서 앞서 있고, 한국은 제조 기술과 디지털 인프라가 강합니다. 이 두 강점이 만나면 실효성 있는 ESG 이행 모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박 전 장관은 "ESG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라며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자체 역량이 부족한데, 플랫폼 기반 기술 솔루션이 이들의 ESG 대응을 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속가능성 논의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질적 행동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쏘시스템의 노림수: 한국 제조업 ESG 파트너 되기

정운성 대표는 폐회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포럼은 기술이 ESG 과제를 현실 전략으로 전환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재확인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제조업은 고도화됐지만 ESG 대응은 여전히 초기 단계"라며 "다쏘시스템은 설계-제조-유통 전 단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한국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쏘시스템은 최근 국내 대형 제조사들과 ESG 컨설팅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에서 제품 설계 단계부터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차를 만든 뒤 배출량을 측정했지만, 이제는 설계 소프트웨어 안에서 배터리 용량, 차체 재료, 생산 공정을 바꿔가며 최적 조합을 찾는다"며 "비용과 시간이 크게 절약된다"고 전했다.

업계 평가: "기술 기반 ESG, 현실화 단계 진입"

ESG 컨설팅 업계에서는 다쏘시스템 같은 시뮬레이션 플랫폼이 향후 ESG 이행의 표준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ESG 컨설턴트는 "지금까지 ESG는 대부분 보고서 작성과 외부 인증에 집중됐다"며 "하지만 EU 택소노미, CSRD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실제 탄소 저감 실적을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시뮬레이션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도구"라고 분석했다.

다만 중소기업 적용 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은 도입 비용이 억 단위에 달해 대기업 위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다쏘시스템 측은 "중소기업을 위한 SaaS(클라우드) 모델과 단계별 도입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EU ESG 협력, 시작은 포럼, 다음은?

이번 포럼은 선언적 논의를 넘어 구체적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한-EU 간 △ESG 데이터 표준화 공동 연구 △에너지 전환 기술 교류 △지속가능 금융 상품 개발 등이 추진될 전망이다.

KEY 관계자는 "올해 포럼을 시작으로 매년 한-EU ESG 협력을 심화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유럽 규제가 한국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실무적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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