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장승규 크래쉬컴퍼니 대표 “중소상인의 ‘시간’을 돌려주는 통합 사업관리 솔루션 선보일 거예요”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대기업 제조사들이 선보이는 각종 브랜드와 빅테크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들은 우리 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외에도 삶에 필수적인 부분, 예컨대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중소상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적지 않다. 이를테면 헤어숍이나 펫숍, 세탁소, 크고 작은 식·음료 가게 등이다. 공통점은 우리에게 흔히 ‘단골가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디지털 전환이 화두가 되고 있는 세상이지만, 이들 중소상공인, 개인 사업자에게 최적화된 사업관리 솔루션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포스단말기, 요즘에는 키오스크가 등장하며 결제와 관련된 수고를 덜어주고 있지만, 그 외에 예약을 비롯한 일정, 고객, 매출, 급여 관리 등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소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종합 사업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자’, 크래쉬컴퍼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유학파 출신의 회계 전문가, 비선형적 커리어 끝에는 창업이 있었다

장승규 크래쉬컴퍼니 대표. 회계를 전공한 그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수산무역 사업, 스타트업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바 있다. (사진=크래쉬컴퍼니)

마루180에서 만난 장승규 크래쉬컴퍼니 대표는 선한 얼굴의 조곤조곤한 말투가 인상적인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비선형적 커리어’를 쌓아 왔다고 말하곤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정해진 길을 가기보다 새로운 상황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해 왔다는 의미다.

그 의미는 실제 그가 거쳐온 삶의 궤적을 짚어보면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금융사 주재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해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그는 외고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에서 회계 석사과정까지 마친 이후에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서 1년여를 몸담았다. 안정적인 길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미 대학 시절부터 꿈꿨던 창업 의지는 그의 삶을 다른 길로 인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첫 창업 아이템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니면서 농축수산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세상이 직면할 가장 주요한 문제는 무엇일까를 고민했죠. 당시 제가 관심을 가졌던 리포트들을 통해 얻은 결론은 세계적인 중산층 증가와 그로 인한 식단의 변화로 단백질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심화되며 자칫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예견도 있었죠.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공급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회가 있다고 봤어요. 요즘이야 애그리테크(Agri-tech), 푸드테크(Food tech)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주제이기도 했고요.”

기업형 수산업 분야에 도전해 스리랑카에서 폰투스 홀딩스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업총괄로 일하던 당시 장승규 대표.

그가 도전한 분야는 다름 아닌 수산업이었다. 뜻이 맞는 이들과 공동창업을 통해 설립한 ‘폰투스 홀딩스(Pontus Holdings)는 스리랑카를 거점으로 기업형 조업과 무역을 하는 회사였다. 30억원의 투자유치까지 성공한 회사에서 그는 사업총괄을 맡으며 쉽게 접하기 힘든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2년 뒤, 그의 삶은 또 다른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세계 1위였지만 그에 비해 공급에 제약 사항이 많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일단 스리랑카는 저개발국가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규제 불확실성이 컸어요. 정권의 변화 조차도 사업에 민감한 영향을 미쳤고요.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이 사업이 과연 제가 꿈꿨던 것인가’ 의문이 생기더군요.”

고민 끝에 지분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오게 됐지만, 사업 의지는 여전히 불타올랐다. 하지만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또 다른 경험이 필요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장 대표는 “한동안 1·2차 산업에 매몰 돼 있던 터라, 4차산업 및 인공지능 분야에 경험을 쌓아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몇 개월 간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던 중에 약 10억원 정도 시드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됐어요. 개발자만 8명 가량 있던 팀이었는데, 그렇게 합류해 1년 반정도 우리나라의 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인공지능 관련 생태계를 파악하고 여러 기업을 만날 수 있었죠. 당시 진행했던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PoC(개념증명)로 돌리면서 세일즈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고요. 어느 정도 파악이 되니, 그때부터 다시 스멀스멀 창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웃음).”

버티컬 SaaS 솔루션에서 발견한 가능성, 모든 중소 사업자를 위한 솔루션으로 진화 중

크래쉬컴퍼니는 초기 '헤이디' 서비스를 뷰티션을 위한 버티컬 SaaS 솔루션으로 나아가 모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솔루션으로 고도화 시켜 나가고 있다. (이미지=크래쉬컴퍼니)

절치부심의 시간 속에서 그는 ‘새로운 창업 아이템은 의식주와 밀접하고 일상에 가까운 주제’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 찾은 첫 아이템은 미용 분야였다.

“대부분의 의식주 관련 산업들은 이미 유의미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가며 시장을 선점한 플레이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미용 분야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에 걸쳐 소비하는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시장만큼은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았죠.”

장 대표가 미용 분야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이 개인 사업자들로 이뤄진 산업인데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계약직·프리랜서 등 임시직 중심의 경제)와도 연결돼 있다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한 사람의 사업자가 수시로 바뀌는 직원들의 급여를 비롯해 매출, 고객, 예약 등의 모든 관리 해야 하는 분야기도 했다.

“크래쉬컴퍼니는 이미 2019년 11월에 창업을 했어요. 저는 주주로만 참여했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표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잘 안 풀리면서 2021년 6월에 제가 대표로 취임하게 됐죠. 그러면서 저를 포함 이종빈 개발자와 최유경 디자이너 3명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대표로 나서며 새 출발한 크래쉬컴퍼니의 첫 시도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헤어디자이너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서비스 ‘헤이디’였다. 창업 이후 빠르게 MVP(최소기능제품)로 만들어 출시한 이 서비스를 통해 크래쉬컴퍼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이 서비스는 시장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해결하는데 주력하며 몇 차례의 변화를 거치게 된다.

크래쉬컴퍼니는 모든 중소상인, 자영업자를 위한 사업관리 솔루션을 현재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루180에 위치한 크래쉬컴퍼니 업무 공간. (사진=크래쉬컴퍼니)

“첫 MVP를 통해 시장 반응을 보면서 지난해 1월 피봇(사업 방향 전환)을 진행했어요. 뷰티션(헤어디자이너를 포함한 미용 종사자)를 위한 백오피스 SaaS 솔루션으로 고도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죠. 쉽게 말하자면 결제부터, 예약 관리, 일정 관리, 고객 관리, 매출 관리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사업 관리 솔루션이예요. 저희가 가장 주목한 것은 뷰티션의 작업 흐름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었죠.”

뷰티션은 이미용, 네일, 피부, 메이크업 등에 종사하는 모든 전문인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각각의 세분화된 분야는 국가자격증 시험을 통해 자격이 부여되고 이에 응시하는 사람만 매년 10만명에 달했다. 1차 MVP에서 피봇을 한 뒤 크래쉬컴퍼니는 각각의 뷰티션의 작업 흐름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방식은 베이스가 되는 기본 기능 위에 각각의 사업 분야에 따른 추가 기능을 모듈형으로 얹는 식이었다. 이는 이후 솔루션의 타깃이 뷰티션에서 모든 중소상인, 개인 사업자로 넓혀지는 요인이 된다.

“개발을 하면서 모든 분야를 사용할 수 있는 종합 사업관리 솔루션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뷰티션은 당장의 거점 고객이라 할 수 있죠. 이렇게 방향성이 정해지면서 지난해 말 2차 MVP가 나왔고, 지금은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예요.”

이렇듯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히 하는 과정을 거치는 사이 크래쉬컴퍼니는 10억원 규모의 시드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은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지금 크래쉬컴퍼니와 장 대표는 이미 새로운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크래쉬컴퍼니 구성원들. (왼쪽부터)이종빈, 김은혜, 김시안, 장승규(대표), 최유경, 김소연 님. 장 대표는 최근 합류한 이은지 인턴도 꼭 언급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크래쉬컴퍼니)

“시드 투자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늦가을쯤 현재의 팀이 세팅돼죠. 팀원도 기존 3명에서 개발자 세 분과 프로덕트 디자이너 한 분이 합류하며 7명이 됐고요.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팀원들이 기존 분야에 6~7년 종사하다가 직무 전환을 한 분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개발자, 디자이너라는 정체성보다는 ‘우리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 팀원들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에는 테스트를 거치면서 PMF(Product Market Fit, 제품과 시장이 부합된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에요.”

‘헤이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크래쉬컴퍼니의 버티컬 솔루션은 이제 모든 분야의 중소상인, 자영업자가 쓸 수 있는 SaaS형 사업관리 솔루션으로 거듭나고 있다. 상용화 무렵에는 솔루션의 명칭도 그에 걸 맞는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될 듯하다. 새로운 계획들을 이야기하는 장승규 대표의 시선은 이미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소상인과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사업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한 구독료를 책정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겠죠. 하지만 구독료는 시작점에 불과해요. 저희는 뷰티션을 비롯해 각각의 버티컬 서비스 분야에 최적화된 종합 사업관리 SaaS 솔루션을 지향합니다. 향후에는 금융, 세무회계, 커머스 등과 같이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들도 해결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려 해요. 물론 사업 난이도는 꽤 높긴 하지만, 버티컬 솔루션에 대한 거시적인 흐름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도 곧 닥쳐올 파도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파도의 정점을 준비하며 우리의 일상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소상인, 개인 사업자 분들의 성장을 돕고 행복한 삶의 기반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저희의 미션이자 비전이예요.”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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