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케터들의 불안감. 그 정체는?

 SNS 좀 하고, 포토샵 좀 한다는 이유로 마케터가 된 분들이 많습니다. 하다 보니 키워드 광고도 좀 배우고, 상품 페이지도 만들게 됐죠. 그런데 어째 좀 불안합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진짜 마케팅인가 싶죠. 

이 불안감의 원인은 뭘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일반적인, 업계 상식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높이려고 무료로 영상을 만들고, 조금만 돈을 지불하면 온갖 전자책과 온라인 강의들을 통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에요. 

흔히 '암묵지(暗默知)'라는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문서 같은 것으로는 정리하기 힘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해요. 뭔가 큰 회사, 내지는 도제식(?)으로 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곳에선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아닌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처럼- 알음알음 전달돼 오는 노하우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에겐 그런 무기가 없는 것 같으니 불안해지죠. 

하지만 그런 많은 회사들에선 오히려 과거에 얽매여서 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너의 고집 때문일 수도 있고, 사일로(Silo:팀 간의 장벽을 의미) 때문일 수도, 또는 회사의 관행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과거 방식의 비밀노트를 얻지 못할 거라면 새로운 방식에서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마케팅의 룰브레이커. 

저는 영화나 책에서 인사이트를 종종 얻는 편인데요. 공통점은 마케팅과는 관련 없는 분야라는 점입니다. 그중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대개 데이터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추천하곤 하지만, 그보다 저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완전히 접근을 하는 이단아들의 이야기로 봅니다. 

다들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이해를 못 하고 있어요. (중략)

팀 운영자들은 선수를 사는 일만 신경 쓰죠. 

중요한 건 선수가 아닌 승리를 사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마케팅을 살펴볼까요? 마케팅 분야에선 그로스해킹이 등장하면서 심한 경우 이제 마케팅의 시대가 끝나고 그로스해킹의 시대가 됐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로스해킹을 마케팅의 동급으로 놓기도 했죠. 마케팅은 이런 거고, 그로스해킹은 이런 거다.. 하는 비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게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지금은 또 그로스해킹과 퍼포먼스 마케팅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 그로스해킹은 전성기 일본 기업들의 경영전략인 '카이젠'과 비슷합니다. 점진적인 효율의 개선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거죠. 대부분의 요즘 마케터들이 하고 있는 콘텐츠 제작, 커머스, 온라인 광고 집행 등도 거의 이 방식을 적용합니다. A/B 테스트를 통한 끊임없는 개선...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카이젠도 어느 순간 몰락했습니다. 왜일까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룰브레이커, 또는 디스럽터라고 불릴 만한 기업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지금 주변을 둘러보세요. 다들 광고 효율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받지 못하죠. 경쟁사는 많아지고 타게팅은 점점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승리를 사야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선수를 사려고 하고 있진 않나요? 

중요한 건 공학이 아닌 관계. 

여러분은 우리 소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시나요? 그리고 대체 왜 우리 제품을 사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마케팅 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많이 노출되니까, 비슷한 제품 대비 가장 싸니까, 이번 배너엔 모델 크기를 좀 더 키워서... 같은 것일 수 있지만, 진짜 그게 다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팔까?'가 아니라 '왜 살까?'

지금의 소비자는, 아니 원래 소비자는 관계에 의해 구매를 합니다. 예전의 영업왕들은 대개 소비자들과 먼저 관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전통적 마케팅에서는 소비자 한 명 한 명과 직접 관계를 다 맺을 수 없으니, 그 관계를 '인지(Awareness)'로 대체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한 번이라도 들어본 브랜드를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SNS라는 좋은 무기가 있습니다. 이메일도 있고, 메신저도 있죠. 단지 우리 제품이 가장 싸다거나, 지금 아니면 이 가격에 못 산다는 정보만 주고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무기입니다. 사실 SNS는 '관계'를 위한 도구인데, 브랜드들은 정보만 주려고 해요. 우리 소비자가 정말 정보를 얻길 원할까요?  

SNS에서 소비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공통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와 우리가 함께 하는 '무엇'이 필요하죠.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생각하고, 룰루레몬은 함께 땀을 흘리자고 하고, 오롤리데이는 작은 행복을 찾자고 합니다. 

좋은 브랜드는 이런 가치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정보'가 아닌 '영감'을 줍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매년 새해다짐 프로모션을 하는데요. 새해가 되면 운동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JUST DO IT이라는 가치 + 새해 다짐이라는 영감 

사실 이 프로모션에 대단한 건 없습니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 것도 아니고, 새해니깐 운동해야지? 하는 마음에 '새해다짐 컬렉션'을 구성해서 약간의 쿠폰으로 부추길 뿐입니다. 이 제품의 어떤 기능이 좋다는 얘기는 사족일 뿐이죠. 이미 소비자는 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앞서 이야기한 머니볼이라는 영화의 배경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팀입니다. 이 팀은 메이저리그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구단에 속하죠. 그나마 있던 좋은 선수들도 다른 구단에 뺏기고 말아요. 오클랜드의 단장인 빌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습니다. 기존의 오래된 룰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거죠.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적은 연봉(메이저리그 28위)으로 선수가 아닌 승리를 사기 위한 팀을 만듭니다. 그 결과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무려 20연승을 달성하죠. 103년 만의 기록입니다. 

영화에서 전환점이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장벽에 부딪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구단주가 빌리에게 묻죠. 뭐가 두려운 거야? 

저는 좋은 마케터가 되려면 먼저 소비자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라면 참여하지 않을 이벤트를 기획하고, 나라면 읽지 않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없거든요. 우리 브랜드와 소비자가 교감을 이룰 수 있는 가치는 뭘까요? 아직 모르겠다면 먼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본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프로

travlr@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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