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모델의 토큰 가격이 현재의 공급 부족 국면을 벗어난 뒤에는 이동통신 데이터나 반도체 제조처럼 저마진 상품 인프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테크 애널리스트 베네딕트 에반스는 7월 9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AI 토큰 가격 결정 구조를 진단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현재 AI 업계가 공급 부족 상태에 있다는 점과 이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점 외에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짚었다.

에반스에 따르면 공급 측면에서는 1,510조원(1조 달러) 이상의 데이터센터 설비투자가 예정돼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델오로그룹은 올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설비투자가 1조 달러를 웃돌 것으로 최근 전망해 이 같은 진단을 뒷받침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6월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남권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800조원(약 5,200억 달러) 규모를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반도체 투자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올해 상반기 수요 급증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단일 용도에 집중돼 있었다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는 수억 명이 쓰는 소비자용 서비스에서 같은 수준의 수요가 발생하면 현재 인프라로는 어떤 가격에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에반스는 업계에 알려진 추론 매출총이익률이 40~50%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는 서버 감가상각만 반영한 수치이며, 몇 달에 한 번씩 신규 모델을 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은 현재 매출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추론은 변동비, 훈련은 고정비 성격이어서 매출이 충분히 커지면 이론적으로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지만 향후 훈련비용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하향식(top-down) 분석 틀로 네 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얼마나 많은 사용 사례가 가장 비싸고 성능 좋은 프런티어 모델을 필요로 하는지, 프런티어 모델의 성능이 앞으로도 계속 크게 개선되는지, 프런티어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유지되는지 아니면 소수로 재편되는지, 고부가 사용 사례에서 창출되는 가치 중 모델 자체가 가져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에반스는 역사적 유사 사례로 광케이블, 이동통신 데이터, 반도체 제조를 들었다. 광케이블 구축이 수요보다 앞선 고정비 투자였던 반면 AI 인프라는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변동비 성격이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고 봤다. 오히려 이동통신 데이터가 더 유용한 비교 대상이라며, 지난 20년간 사용량이 수십 배로 늘며 연간 매출 1,510조원(1조 달러), 설비투자 302조원(2,000억 달러) 규모의 거대 산업이 됐지만 통신사 주가는 정체됐고 가치는 상위 서비스 사업자들이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 역시 비용과 난도가 계속 높아지며 대만 TSMC의 사실상 독점 체제로 재편됐지만, TSMC의 2025년 순이익은 공식 실적 기준 약 83조원(552억 달러)으로 같은 기간 애플 순이익 169조원(1,120억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덧붙였다.
에반스는 이런 역사적 사례가 예측 도구가 될 수는 없다면서도 매우 비싸고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라도 다양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장 흐름이 이어진다면 프런티어 모델은 결국 상품화된 인프라로 수렴하고 가치는 그 위에 쌓이는 소프트웨어·서비스가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마크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들이 최근 AI 성능 순위표에 다시 이름을 올린 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 정부가 각각 오픈소스 모델 규제나 수출통제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 점은 변수로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은 7일 중국 상무부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Z.ai 등과 만나 오픈소스와 비공개형을 가리지 않고 최상위 AI 모델의 해외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앤트로픽과 오픈AI 등이 정부에 AI 규제를 요청하는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규제 포획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에반스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