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의 상원 좌초 일주일 만에 의회 대신 기존 규제기관을 앞세워 제도 정비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패트릭 위트 백악관 디지털자산 정책 고문과 루크 페티트 미국 재무부 금융기관 담당 차관보는 22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코인데스크 정책·규제 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두 인사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현행법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가상자산 규제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자산 시장 명확성법(클래리티법)'의 연내 처리를 마냥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 상원은 지난 15일 클래리티법의 본회의 토론 개시를 묻는 절차표결을 열었지만, 필요 정족수인 60표에 크게 못 미쳐 법안을 다음 단계로 넘기지 못했다. 클래리티법은 가상자산 감독 권한을 SEC와 CFTC에 나눠 맡기는 연방 차원의 규제 틀이다. 하원은 2025년 7월 이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공화당은 표결 직전 민주당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을 내놨지만, 공직자의 가상자산 이해충돌을 막는 윤리 조항을 둘러싼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
행사에서 두 인사는 연내 처리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페티트 차관보는 법안이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정책의 초점이 이미 행정부로 옮겨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진단했다. 위트 고문은 11월 중간선거 결과가 연말 레임덕 회기의 법안 향방을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선거 결과에 따라 협상에 나설 의원들의 동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행정부 주도 규제의 첫 결과물은 이미 나왔다. SEC는 상원 표결 이틀 뒤인 17일 토큰화 주식의 온체인 거래를 허용하는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 명령을 발표했다.
핵심은 토큰화증권거래소(TSV)를 증권거래법상 '거래소' 정의에서 한시적·조건부로 제외한 것이다. 이에 따라 TSV는 허가형 자동화마켓메이커와 유동성 풀을 활용해 미국 상장 주식의 토큰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면제 기간은 5년으로 2031년 9월 17일 만료된다. 토큰은 실제 주식과 같은 배당·의결권을 보장해야 하고, 거래 종목 수와 거래량에도 상한이 걸린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법이 허용한 권한 안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하면서, 한시적 면제 뒤에는 지속 가능한 정식 규칙 제정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트 고문은 SEC 감독 아래 자산 토큰화가 본격화하면 시장도 함께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
재무부는 지난해 제정된 스테이블코인 법인 '지니어스법'의 후속 규정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페티트 차관보는 법에 정해진 시행 기한을 무난히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장은 입법 실패에 잠시 흔들렸다. 표결 직후 비트코인은 7만6,000달러 아래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내 반등 흐름으로 돌아섰다.
코인마켓캡 기준 22일 오전 9시(한국시간)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5.82% 오른 약 1억1,890만원(8만6,439달러)에 거래됐다. 같은 시각 이더리움은 약 382만원(2,774달러), 엑스알피(XRP)는 약 2,110원(1.53달러), 솔라나(Solana)는 약 16만3,500원(118.81달러)을 기록했다.
비트코인은 이번 주 초 1월 말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22일 밤(미 동부시각) 8만5,000달러대로 소폭 밀렸지만, 최근 7일 상승률은 13%를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포지션이 대거 강제청산되면서 상승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행정부 주도 방식의 한계도 분명하다. 위트 고문 스스로 새 법률 없이 추진하는 규제기관의 조치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인정했다. SEC가 혁신 면제를 한시 조치로 못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의 우려도 곧바로 나왔다. 월가 증권업계 단체인 미국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는 면제 발표 당일, 같은 주식의 토큰이 규제가 느슨한 시장에서 병행 거래되면 투자자 혼란과 가격·유동성 분산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입법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공화당이 재심의 동의를 남겨둬 재표결 길은 열려 있지만,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미국 가상자산 제도의 향방은 두 갈래 흐름에 달리게 됐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입법이 다시 추진될지, 그리고 규제기관이 한시 조치를 정식 규칙으로 얼마나 빨리 굳혀갈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