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 과학을 말한다

월드컵에서 사용되는 공인구는 FIFA(국제축구연맹)의 정식 승인을 거쳐 '인정구'로 사용하게 된다. 1회 월드컵 대회였던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당시 국가마다 사용하는 공이 달랐는데,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서로 자기네 공을 쓰겠다고 싸우다가 결국 전반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했다. 이 일을 계기로 월드컵에서는 '인정구'라고 하여 국가 재량으로 월드컵에서 쓰이는 공인구가 나왔다. 이후 1970년부터는 아예 FIFA의 주관으로 자체적으로 공인구를 제작하게 되었으며 공인구의 제작은 아디다스가 지금까지 전담하고 있다.

2000년대부터 기술의 발전과 첨단 소재의 사용으로 모든 킥력을 공에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공이 제작된다.

최초 첨단 과학이 접목된 공인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인구인 '피버노바'로 기존의 축구공과 다르게 독특한 탄성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선수들은 적응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고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던 터키와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는 등의 다양한 이변이 많이 일어났던 대회로 기억된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공인구 '팀가이스트'는 완전한 구형을 만들기 위해 적은 조각으로 제작되었으며, 202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와 '브라주카'는 더욱더 조각 수를 줄여 제작되었다.

특히,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인 '텔스타 18'은 월드컵에서 공인구가 사용된 50주년을 기념하여 텔스타 18이 공인구로 채택되었으며 표창 모양의 조각 6개가 구 형태로 만들어졌고 최초의 NFC 칩이 내장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 18. 공인구에 최초의 NFC 칩이 내장되었다. (사진=아디다스)

당시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골키퍼 '페페 레이나'는 "거리 판단을 하기 어려운 공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중거리 슛으로만 최소 35골 이상 나올 것이 틀림없다"고 했을 정도로 공의 움직임이 불규칙했다고 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Al Rihla)'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와 모델 '손홍민' (사진=아디다스)

'알 리흘라'는 아랍어로 '여정'이라는 뜻이며, 12개의 연꼴과 8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동적인 문양과 색깔은 카타르의 상징인 배, 문화, 건축물, 그리고 국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제작사인 아디다스는 오랜 기간 데이터 분석과 선수들이 참여한 연구를 거쳐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도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알 리흘라'의 3대 특징은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여서 만든 굴지의 스피드 ▲스파이크와 마찰이 만들어 내는 커브 ▲오프사이드 판정 지원 센서 내장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안쪽 중앙에 달린 '관성측정센서(IMU-Inertial Measurement Unit)'를 눈여겨볼 만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 안쪽 중앙에 달린 '관성측정센서(IMU-Inertial Measurement Unit)' (사진=아디다스)

관성측정 장치는 가속도계와 회전 속도계, 자력계 등을 조합하고 사용해 신체의 특정한 힘, 각도 비율 등에 따라 신체를 둘러싼 자기장을 측정하고 보고하는 전자 센서 장치다. 보통 무인 한 공기, 유도무기, 발사체 및 인공위성 등의 항법 및 제어에 핵심적인 역할로 쓰인다. 최고의 IT기술이 이번 월드컵 공인구에 장착된 셈이다.

핵심은 1초에 500회 볼의 데이터를 비디오 오퍼레이션 룸에 송신하는 것으로 선수의 킥 포인트가 정확하게 검출된다. 또한 스타디움 상부에 설치한 12대의 고성능 카메라가 볼 이나 선수의 손발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추적해 데이터를 조합한 후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오프사이드인 경우에는 영상 담당 심판원에게 자동으로 통지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술(SAOT·Semi-automated offside technology)’을 도입했다. (사진=FIFA)

지난 22일 영원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의 패배를 안긴 것도 4골 중 3골의 오프사이드를 잡아낸 인공지능 기반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시스템(SAOT)' 판정이었다. 전반에만 7개의 오프사이드를 범한 아르헨티나는 1-0 리드에도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전반을 마쳤고, 후반 들어 사우디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면서 결국 경기를 내주게 되었는데 이날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오프사이드는 총 10번이었다. 4:0도 가능했던 경기가 1:2의 충격적인 결과로 아르헨티나의 패배로 돌아갔다. 이날 경기 후 SNS에는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의 경기 'MOM'(Man Of the Match)이 '신기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비단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국가나 선수가 주·부심에게 크게 항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정을 온순히 받아들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억울하다는 심정만 내비칠 뿐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난이 오프사이드 판정이 많은 2024년 카타르 월드컵.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스포츠 세계에 새삼 놀라면서 앞으로 적용될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의 인공지능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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