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신 매매한다…주식투자도 '에이전트' 시대

개인 투자자가 AI 에이전트에 매매를 위임하는 '에이전틱 투자'가 글로벌 금융권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율 트레이딩 서비스가 일반 투자자를 향해 문을 열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도입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코스피지수는 5월 26일 종가 기준 8047.51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넘어섰고,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개인 투자자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4월 29일 기준 1억 499만 개로 국민 1인당 약 2개 수준에 이르렀으며, 올해 들어서만 670만 개가 새로 늘었다.

문제는 시장이 커지고 빨라질수록 본업을 가진 개인 투자자가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1000만 명을 훌쩍 넘는 신규 투자자가 모두 시세창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매 규칙을 사전에 알고리즘으로 정형화하고, 이를 다시 AI 에이전트에 위임하는 흐름이 글로벌 금융권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이다.

로빈후드 에이전틱 트레이딩 (출처=로빈후드 홈페이지 캡쳐)

미국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는 5월 27일 'AI 에이전틱 트레이딩(Agentic Trading)' 베타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용자가 챗GPT나 클로드 등 외부 AI 모델을 에이전트 전용 계좌에 연결하면, 해당 AI가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고 매매 전략을 수립해 주문을 집행하는 구조다. AI에 할당되는 자금은 전용 지갑에 사전 충전된 한도로 제한되며, 일부 거래는 실행 전 이용자 승인을 거치도록 설계됐다. 거래 알림과 이상거래 감지 기능도 기본 탑재된다.

현재는 주식에 한정돼 있으나 옵션, 암호화폐, 선물, 예측시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같은 날 로빈후드는 AI 에이전트가 직접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3% 캐시백 신용카드도 함께 출시했다. 자율금융이 기관 단위를 거치지 않고 개인 투자자에게 곧장 보급된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토스증권은 5월 21일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오픈 API' 사전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REST 방식을 채택해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스마트폰·웹·리눅스 서버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동매매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토스증권 관계자는 "최근 투자자들이 다양한 정보와 AI 플랫폼을 활용하는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며 "토스증권이 선보이는 오픈 API도 같은 맥락에서 AI 플랫폼을 활용한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토스증권 오픈API 사전신청 (출처=토스증권 홈페이지)

증권업계의 차세대 API 경쟁은 토스증권에 앞서 이미 본격화됐다. 한국투자증권은 해외주식 REST API 서비스를 먼저 내놓으며 시장을 선점했고, 자사 'KIS 디벨로퍼스(KIS Developers)' 개발자센터를 통해 챗GPT와 클로드 등 외부 AI 환경과 직접 연동 가능한 깃허브 샘플 코드와 전용 AI 어시스턴트까지 제공하고 있다. 키움증권 역시 다양한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REST API를 출시하며 거래 범위를 한국거래소(KRX) 금시장까지 확대했다. 개인 투자자가 자체 퀀트 전략을 직접 자동화하고, 외부 AI와 결합해 매매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토양이 점차 두꺼워지고 있는 셈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한층 앞서 있다. 거래소가 자동매매 기능을 직접 통합하기 시작한 흐름은 새롭지 않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는 가격대를 미리 정해두면 자동으로 사고파는 매매 봇을 공식 제공하고 있고, 글로벌 거래소 HTX의 2025년 연말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해 자동매매 거래량은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빗썸이 2021년 3월 외부 솔루션을 연동한 '오토트레이딩'을 출시한 이후, 코인원이 'AI 그리드' 자동매매를 거래소 차원에서 운영 중이다. 업비트는 자체 통합 봇 대신 Open API로 개인이 자동매매를 구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AI 에이전트 기반 자율 거래다. 미국 코인베이스는 2024년 10월 사용자가 지갑과 연동된 AI 에이전트를 생성해 자동 거래, 스왑, 스테이킹을 맡길 수 있는 '베이스드 에이전트'를 선보였다. 단순 규칙 기반 봇에서 AI 모델이 판단하고 실행하는 단계로 넘어간 사례다. 보다 극단적인 시도도 등장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맨프레드(Manfred)'로 명명된 AI 에이전트는 지난 1일 미국 국세청에서 고용주식별번호(EIN)를 발급받아 법인을 설립했고, 자체 명의로 은행 계좌와 암호화폐 지갑을 개설했다. 해당 자율법인은 30종 이상의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AI가 인간 명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법적 실체를 확보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장밋빛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시행되며 고영향 AI 사업자에 위험관리 체계 구축 의무가 부과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신용·담보평가, 자금세탁방지(AML), 이상거래탐지(FDS) 등 고객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 AI 업무에 대해 위험관리·설명 의무, 이의제기 절차, 문서 보관 체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미국에서도 자율 에이전트가 야기한 손실의 책임소재, 자금세탁 및 시세조종 악용 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앤트로픽이 4월 4일 클로드 일부 구독 서비스를 중단함에 따라, 코인 시장의 자율 에이전트 운영자들이 대체 모델 채택이나 추가 비용 부담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AI 에이전트의 한계도 분명하다.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는 구조 탓에 전례 없는 시장 충격에 취약하며, 알고리즘 오류로 의도와 다른 주문이 집행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AI에 위임할 자금 한도의 사전 설정, 이상거래 알림 및 사용자 승인 절차의 상시 가동, 거래 로그와 전략 문서화는 개인 투자자가 갖춰야 할 기본 요건으로 꼽힌다. '잠자는 동안 수익을 창출하는 AI'라는 기대 이전에, 자신의 매매 규칙을 코드와 에이전트로 구체화하고 검증해 가는 단계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저작권자 © Tech42 - Tech Journalism by AI 테크4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와디즈, 후원·팬덤 펀딩 문턱 낮춘다…수수료 최대 90% 지원

개인·청소년·대학생·창작자 대상 ‘펀딩으로 내 편 찾기’ 캠페인 전개 후원·팬덤 개인 메이커 수수료 90%, 비수도권 로컬 메이커 50% 지원 창작·공익·로컬 브랜드...

토스인사이트 “은행권, 단일 전망보다 시나리오별 균형 관리 필요”

금리·성장률·물가 등 8개 변수로 2027년까지 은행 경영지표 전망 낙관·비관 시나리오 모두 수익성·건전성 영향 엇갈려 코스피 상승 시 정기예금 유입 속도...

오픈서베이 데이터스페이스, 데이터 기반 ‘합성 소비자 대화’ 기능 도입

오픈서베이가 자사 컨슈머 인텔리전스 플랫폼 데이터스페이스(Dataspace)에 ‘합성 소비자와 대화’ 기능을 추가했다. 기업 실무자가 실제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된 가상의 소비자 페르소나와 대화하며 타깃 세그먼트, 제품 반응, 소비 트렌드 등을 빠르게 탐색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스펙보다 AX 문제해결력”… 5158명 몰린 인재 서바이벌, 18일 본선 열린다

국내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AX 인재 발굴형 해커톤 ‘AX 인재전쟁’에 지원자가 5000명 이상 몰렸다. 조코딩AX파트너스가 주최하고 오픈AI(OpenAI) 협업으로 진행되는 이번 대회는 기존 채용 전형에서 강조되던 학력, 경력, 나이 등 형식적 조건보다 AI를 활용한 실무 문제 해결 능력을 앞세운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