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반 웨어러블과 스마트글래스, 확장현실(XR) 기기 등이 발전하면서 무선 통신 기술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기기 간 주고받는 데이터가 늘어나는 동시에 빠른 응답 속도와 낮은 전력 소비까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대응해 블루투스 기술도 데이터 전송 성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기존 블루투스 저전력(Bluetooth Low Energy, LE) 기술보다 최대 지원 비트율을 약 4배 높인 새로운 통신 기술이다. 이를 통해 고음질 무선 오디오뿐 아니라 주변 데이터를 수집하고 외부 기기에서 처리하는 AI 디바이스, 산업용 무선 시스템 등으로 블루투스의 활용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루투스 기술 표준을 관리하는 비영리 국제기구 블루투스 SIG(Special Interest Group)는 지난 4일(현지시간) 블루투스 고속 데이터 처리 기술인 'Bluetooth High Data Throughput(HDT)'의 공식 채택을 발표했다.
HDT는 최근 채택된 블루투스 코어 7.0(Bluetooth Core 7.0)에 포함된 선택적 기능으로, 새로운 물리계층(PHY)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PHY는 통신 안정성을 강화하는 변조 방식을 적용해 블루투스 LE 기기가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최대 지원 비트율은 7.5Mbps로, 기존 LE 2M PHY의 2Mbps보다 약 3.75배 높다.
다만 이 수치는 물리계층에서 지원하는 최대 비트율로, 모든 기기에서 실제 애플리케이션 전송 속도가 동일하게 구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적 변화는 속도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블루투스 SIG는 이번 기술을 통해 데이터 처리량과 주파수 효율, 에너지 효율, 통신 안정성 등 네 가지 영역을 함께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기존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면서 무선 송신 장치가 활성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저전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전력 소비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주파수 효율 개선으로 제한된 무선 자원에서 데이터 교환 능력을 확대하고, 다양한 무선 통신 환경에서 연결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네빌 마이어 블루투스 SIG 최고경영자(CEO)는 "블루투스 기술은 연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며 "HDT는 블루투스의 성능을 한 단계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와 상업, 산업 시장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확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기술이 향후 디바이스 개발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김준석 삼성전자 S.LSI CP 개발 총괄 부사장은 "HDT의 의미는 단순한 속도 향상을 넘어선다"며 "데이터 처리량과 용량, 전력 효율, 안정성을 함께 개선함으로써 개발자와 제조사가 더욱 높은 성능의 제품과 새로운 무선 연결 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블루투스 SIG가 HDT의 첫 번째 대표 활용 분야로 제시한 것은 프리미엄 무선 오디오다.
블루투스 SIG에 따르면 HDT를 활용하는 표준화된 프리미엄 무선 오디오 기술은 2027년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무손실(Lossless) 오디오와 고해상도 오디오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전송 용량과 효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음질 무선 청취 경험을 구현하려면 음향 정보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 전송 능력이 필요하다. HDT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블루투스의 데이터 처리 성능을 강화한 기술이다.
활용 가능성은 일반적인 음악 재생을 넘어선다. 다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와 공간 오디오처럼 더욱 복잡한 음향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HDT가 블루투스의 표준 기술로 채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조사들이 고품질 무선 오디오를 구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공통 기술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발표된 것은 새로운 표준 기술의 채택과 향후 활용 계획이다. HDT가 블루투스 코어 7.0의 선택적 기능인 만큼 개별 제품의 지원 여부와 실제 상용화 시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오디오와 함께 주목받는 분야는 AI가 탑재된 웨어러블 기기다.
스마트글래스나 스마트워치는 기기에서 생성한 데이터를 다른 장치로 전달하거나 외부에서 처리한 결과를 다시 받아오는 방식으로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빠르고 안정적인 무선 데이터 교환이 중요하다.
HDT는 이러한 기기 간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전송 성능을 강화해 AI 기반 디바이스의 활용 가능성을 넓힐 것으로 기대된다.
블루투스 SIG는 엣지 환경에서 생성·처리·교환되는 데이터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HDT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 변화에 적응하는 지능형 AI 기기의 발전을 지원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르딕 세미컨덕터의 외위빈 스트룀 근거리 무선 사업부 총괄 부사장은 구체적인 활용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HDT를 활용하면 스마트워치에 수 시간 동안 축적된 운동 데이터를 몇 초 만에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며 "스마트글래스가 데이터를 외부 기기로 보내 처리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AI 기능을 구현하거나, 스마트홈 기기가 사용자가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펌웨어를 업데이트하는 방식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장현실과 공간 컴퓨팅 분야에서도 기기 간 상호작용을 더욱 빠르고 정교하게 구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기기가 연결되는 환경에서 데이터 전송 지연을 줄이고 복잡한 상호작용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분야에서는 자동화 장비와 모니터링 시스템의 무선 통신 성능을 높이는 기술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데이터 처리량과 통신 안정성이 동시에 필요한 상업·산업 환경에서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헬스케어와 피트니스 웨어러블, 스마트홈 제품, 주변기기에서도 데이터 동기화와 파일 전송, 펌웨어 업데이트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결국 이번 HDT 채택은 블루투스 기술의 발전 방향이 단순한 기기 연결에서 고용량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교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디바이스와 공간 컴퓨팅 기술이 발전할수록 데이터 전송 성능과 전력 효율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만큼, 향후 제조사들이 HDT를 실제 제품에 얼마나 폭넓게 적용할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