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호주에서 시작된 청소년 SNS 금지 정책이 영국과 캐나다를 거쳐 전 세계로 확산하는 흐름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 15일 런던 다우닝가 총리실에서 직접 발표를 통해 이 같은 정책을 공식화했다. 스타머 총리는 테크 기업들에게 스스로 자정할 기회를 줬지만 실패했다며, 이제 아이들을 보호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금지 대상에는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엑스(X), 스냅챗 등 주요 플랫폼이 포함되며, 왓츠앱 같은 메신저 앱과 유튜브 키즈, 구글 클래스룸 등 교육용 서비스는 제외됐다. 영국 정부는 연내 법안을 통과시키고 2027년 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규제 범위는 단순한 SNS 접속 제한을 넘어선다. 게임 앱 내 낯선 사람과의 실시간 채팅, 라이브 스트리밍, 유사연애 챗봇 사용까지 포괄하며, 영국 정부는 이를 호주의 모델보다 더 광범위한 규제를 담은 '호주 플러스'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야당인 영국개혁당은 가상사설망(VPN)을 통한 우회 접속 가능성을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캐나다 정부도 비슷한 행보에 나섰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10일 16세 미만의 SNS 계정 개설을 제한하는 '안전한 소셜미디어법'(법안 C-34)을 의회에 제출했다. 법안의 핵심은 플랫폼 기업이 아동 보호를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했음을 입증해야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입증하지 못한 기업의 서비스에는 16세 미만 이용자에 대한 나이 제한이 적용된다. 밀러 장관은 온라인 유해 콘텐츠로 인해 아동과 청소년이 성착취, 사이버 괴롭힘, 자해와 정신건강 문제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 법안은 SNS뿐 아니라 AI 챗봇까지 규제 대상으로 포함한 점이 눈에 띈다. AI 챗봇의 경우 청소년 이용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지만, 기업은 유해 콘텐츠 전달 위험을 최소화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신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법을 위반한 기업에는 매출의 3% 또는 1000만 캐나다달러(약 109억원) 중 더 큰 금액이 과징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 캐나다 정부는 법안 통과까지 약 1년, 집행을 담당할 디지털안전위원회 설립까지 추가로 18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규제는 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프랑스는 오는 9월부터 15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며, 그리스도 2027년부터 15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4월 16세 미만의 SNS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올해 안에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유년기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며 기술 기업에 이용자 연령 확인 책임을 지우겠다고 밝혔다. 덴마크와 스페인, 폴란드 등도 관련 입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서는 연방 차원의 통일된 규제 대신 주(州) 단위 입법이 활발하다. 뉴욕주는 부모 동의 없이 18세 미만 이용자에게 중독성 피드를 노출시킬 수 없도록 하는 알고리즘 규제법을 시행했으며, 캘리포니아주도 16세 미만의 SNS 계정 개설을 원천 차단하는 규제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텍사스주 등 일부 주의 청소년 SNS 규제법은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를 이유로 법원에서 시행이 정지된 사례도 있어, 사법적 충돌도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2026년 3월 28일부터 16세 미만 이용자의 고위험 디지털 플랫폼 계정 생성을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하며 아시아 최초 사례로 꼽혔다.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X), 로블록스 등이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 사무국은 이번 조치가 아동의 소통·정보 접근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도 6월부터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규제 확산의 배경에는 청소년 SNS 사용과 정신건강 악화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연구 결과가 자리하고 있다. 호주 머독 어린이연구소(MCRI) 난디 비자야쿠마르 박사 연구팀은 지난 12일 호주 의학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멜버른 지역 청소년 약 1200명을 9세부터 19세까지 10년간 추적한 '아동-성인 전환 연구(CATS)'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하루 2시간 이상 SNS를 사용한 청소년은 1시간 미만 이용 청소년보다 이듬해 우울 증상이 심화하고 행복도가 저하될 위험이 더 높았으며, 특히 12~13세 여학생에게서 그 영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SNS의 전면 금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청소년 초기 연령층을 중심으로 한 예방적 개입과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SNS와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은 앞서 청소년 대다수가 SNS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것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결론지을 근거가 부족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에는 AI 챗봇과의 대화가 청소년 자살이나 약물 피해로 이어진 사건들을 계기로, 피해 가족들이 빅테크 기업의 안전장치 마련을 의회에 촉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청소년 SNS 이용 제한과 관련한 법안 6건을 검토하고 있으며, 질병관리청과 교육부는 이달 초부터 전국 청소년 약 6만명을 대상으로 인터넷·SNS 중독 실태를 포함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청소년들이 우회 접속 등으로 규제를 피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표현의 자유나 교육 목적의 SNS 활용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