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AI 시대의 러다이트는 누구인가?

브라이언 머천트 작가 “러다이트는 기술 반대자가 아니라, 배제된 진보에 맞선 노동자였다”
레베카 하인즈·박보현 과장, 조직 생산성 격차와 노동행정 AI 혁신 사례 제시
권현지 교수 “AI 전환의 핵심은 기술 수용 여부가 아니라 노동자 참여 거버넌스”
테크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가 ‘산업혁명과 러다이트 운동: AI 시대에의 재조명’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머천트 작가는 아이폰을 다룬 베스트셀러 ‘The One Device’의 저자이며, 최근 저서 ‘Blood in the Machine: The Origins of the Rebellion Against Big Tech’에서 빅테크에 대한 저항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 인물이다. 현재는 AI 나우 연구소(AI Now Institute)의 저널리스트 인 레지던스(Journalist in Residence)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테크42)

인공지능(AI)이 질문에 답하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 단계로 진입하면서, 기술과 제도의 간극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공지능정책 이니셔티브(SNU AI Policy Initiative, SAPI)가 주최한 서울 AI 정책 컨퍼런스(SAIPCON 2026)는 바로 이 간극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행사는 ‘AI 거버넌스의 프런티어 이슈: AI 에이전트 시대의 개막’을 주제로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양일간 열렸다.

SAIPCON 2026은 교육, 금융, 노동, 국가전략, 거버넌스 모델, 아동, 경쟁, 산업정책, 저널리즘, 헬스케어, 에너지, 데이터 보안, 인권, 국가안보 등 총 15개 세션을 통해 AI가 제도와 사회 구조에 던지는 쟁점을 다뤘다. 특히 올해는 서울대학교 인공지능신뢰성 연구센터(Center for Trustworthy AI, CTAI),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기술·혁신·경쟁 센터(Center for Technology, Innovation and Competition)와 함께하며 AI 거버넌스 논의의 국제적 확장성을 더했다.

테크42는 이 중 2일차 오전 진행된 ‘AI와 노동’ 주제를 들여다봤다. 이날은 테크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가 ‘산업혁명과 러다이트 운동: AI 시대에의 재조명’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머천트 작가는 아이폰을 다룬 베스트셀러 ‘The One Device’의 저자이며, 최근 저서 ‘Blood in the Machine: The Origins of the Rebellion Against Big Tech’에서 빅테크에 대한 저항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 인물이다. 현재는 AI 나우 연구소(AI Now Institute)의 저널리스트 인 레지던스(Journalist in Residence)로 활동하고 있다.

이어 같은 날 오전 열린 ‘AI와 노동(AI & Labor)’ 패널토론은 ‘노동현장에서 조우한 인간과 AI: 새로운 일터를 위한 거버넌스(Humans and AI at Work: Governance for a New Workplace)’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용석 노터데임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고, 레베카 하인즈(Rebecca HINDS) 글린(Glean) Work AI 연구소장, 박보현 고용노동부 노동행정인공지능혁신과 과장, 권현지 서울대학교 교수가 각각 조직 생산성, 공공행정 혁신, 노동시장 거버넌스를 주제로 의견을 냈다. AI가 노동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익숙한 질문을 넘어, 누가 기술의 방향을 정하고 누가 그 비용과 이익을 감당할 것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이날 논의의 중심에 섰다.

“러다이트는 기술을 미워한 것이 아니다”…머천트 작가가 다시 꺼낸 산업혁명의 질문

온라인을 통해 무대에 등장한 머천트 작가는 발표의 출발점으로 ‘러다이트(Luddite)’라는 단어가 오늘날 AI 논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시했다.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AI 기업 규제와 견제 필요성을 말하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반기술’ 또는 ‘반진보’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러다이트’는 다시금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사진=테크42)

온라인을 통해 무대에 등장한 머천트 작가는 발표의 출발점으로 ‘러다이트(Luddite)’라는 단어가 오늘날 AI 논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시했다.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AI 기업 규제와 견제 필요성을 말하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반기술’ 또는 ‘반진보’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러다이트’는 다시금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머천트 작가는 “러다이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AI 시대의 권력관계를 가리는 장치”라고 말했다. 러다이트를 기술 자체에 저항한 무지한 집단으로만 기억하는 순간, 기술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는지라는 핵심 질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날 러다이트라는 말은 AI 비판자, 데이터센터 반대자, AI 기업 규제를 요구하는 사람을 향한 모욕처럼 쓰입니다. 반기술적이고, 순진하고, 뒤처졌고, 반진보적이라는 뜻입니다. 챗GPT와 구글도 러다이트를 신기술에 반대하거나 불신하는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이처럼 대형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 역시 학습한 입력에서 답을 끌어오는데, 지난 200년 동안의 많은 글이 러다이트를 그렇게 규정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천트 작가가 다시 불러낸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는 통념과 달랐다. 이들은 산업혁명 초기 제니 방적기(spinning jenny), 와이드 프레임(wide frame), 기그밀(gig mill), 동력직기(power loom) 등 자동화 장비가 확산되던 시기 영국의 직물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직물 노동자들은 가정이나 소규모 작업장에서 가족, 동료와 함께 일하며 일정한 자율성을 누렸다. 하지만 공장주들은 자동화 기계를 이용해 숙련 노동을 값싼 비숙련 노동으로 대체하고, 임금을 낮추며, 기존 노동 규범과 품질 기준을 우회했다.

“진짜 러다이트는 기술에 반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기술이 사용되는 방식에 반대했습니다. 기계를 이용해 임금을 낮추고, 노동법을 회피하고,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며 이윤을 얻는 산업가들에게 반대한 것입니다. 많은 러다이트는 스스로 기술자였고, 어떤 기술이 자신과 다른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쓰일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습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과 공동체를 재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머천트 작가가 강조한 역사적 맥락은 러다이트가 처음부터 기계를 부순 집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먼저 의회에 임금 하한, 현물지급 금지, 기존 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고, 자동화 기계가 생산한 직물에 세금을 부과해 노동자 복지와 재훈련에 쓰자는 제안도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이 불법이던 당시 노동자들의 평화적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산업가와 의회가 기존 규제를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호소를 외면했을 때, 일부 노동자들은 ‘네드 러드(Ned Ludd)’라는 상징적 인물의 이름 아래 조직화해 가장 악질적인 공장주의 기계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 과정 역시 머천트 작가는 러다이트가 모든 기계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겨냥한 것은 공동체와 노동조건을 해치는 방식으로 쓰인 기계였다. 반대로 일자리와 숙련, 지역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데 쓰이지 않는 기계는 내버려뒀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선택성이야말로 러다이트를 단순한 반기술주의가 아니라 기술 거버넌스의 초기 문제제기로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봤다.

머천트 작가는 이 역사적 질문을 오늘의 AI 논쟁으로 연결했다. AI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소프트웨어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고, 대학 졸업생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예술가, 작가, 번역가가 사라지는 경력 기회를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지역 반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예술가와 작가들의 집단소송, AI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정서는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사진=테크42)

“러다이트가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일터와 공동체에서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보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계와 그 소유자가 약속한 진보에서 배제되는 것에 반대한 것입니다. 임금이 가족을 먹일 수 없을 만큼 낮아지고, 공장 노동의 모욕이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착취와 사기가 만연하고, 목소리를 낼 모든 통로가 닫혔을 때에야 그들은 망치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대량 자동화 기술을 둘러싸고 불만과 분노가 커지는 순간에 와 있습니다.”

머천트 작가는 이 역사적 질문을 오늘의 AI 논쟁으로 연결했다. AI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소프트웨어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고, 대학 졸업생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예술가, 작가, 번역가가 사라지는 경력 기회를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지역 반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예술가와 작가들의 집단소송, AI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정서는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대량 자동화 기술의 방향을 소수 기업과 자본이 결정하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와 시민에게 실질적인 발언권을 보장할 것인가’. AI 시대를 맞아 다시 제기되는 이 질문에 대해 머천트 작가는 “위기를 피하려면 노동자와 이용자, 시민이 기술의 개발과 배치 과정에서 실제 권한과 행위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베카 하인즈 소장 “개인은 빨라졌지만 조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어진 ‘AI와 노동’ 패널토론에서는 기업 현장에서 AI가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조건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레베카 하인즈 글린 Work AI 연구소장은 최근 발표한 ‘Work AI Index’를 토대로, AI 도입의 성과가 개인 차원에 머무르고 조직 성과로 충분히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를 짚었다. (사진=테크42)

이어진 ‘AI와 노동’ 패널토론에서는 기업 현장에서 AI가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조건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레베카 하인즈 글린 Work AI 연구소장은 최근 발표한 ‘Work AI Index’를 토대로, AI 도입의 성과가 개인 차원에 머무르고 조직 성과로 충분히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를 짚었다. 많은 지식노동자가 이미 AI를 쓰고 있고 개인 차원의 시간 절약 효과를 체감하지만, 그 효과가 곧바로 조직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일터의 AI에서 가장 큰 역설은 개인의 생산성 향상과 조직 차원의 성과 사이에 큰 단절이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의 디지털 노동자 6000명을 조사한 결과 87%가 이미 업무에서 AI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75%는 AI가 개인 생산성을 높였다고 답했고, 평균적으로 주당 약 11시간을 절약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같은 직원들 중 조직 차원의 생산성과 성과가 실제로 크게 개선됐다고 본 비율은 13%에 그쳤습니다. 여기에 따르는 중요한 질문은 이 격차가 왜 이렇게 큰지, 개인과 팀, 조직 차원에서 무엇이 있어야 이를 좁힐 수 있는지입니다.”

하인즈 소장이 제시한 첫 번째 해법은 하향식 지시만으로 AI 도입을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효과가 큰 조직은 경영진의 선언이나 사용 강제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의 조정 비용을 가장 잘 아는 구성원을 중심으로 AI 활용을 확산시킨다. 특히 하인즈 소장은 부서 횡단형 구성원(cross-functional team member)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들은 자신만을 위한 자동화가 아니라 여러 팀이 얽힌 복잡한 업무 흐름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워크플로(workflow)와 AI 에이전트(AI agent)를 설계하기 때문에 조직 내 확장성과 적응성이 더 높다는 설명이다.

하인즈 소장은 미국, 영국, 호주의 디지털 노동자 6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중 87%가 이미 업무에서 AI를 쓰고 있다. 이들 가운데 75%는 AI가 개인 생산성을 높였다고 답했고, 평균적으로 주당 약 11시간을 절약한다고 봤다. (사진=테크42)

두 번째 원칙은 ‘자동화할 수 있는 일’과 ‘자동화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인즈 소장은 “많은 노동자가 AI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업무 일부를 자동화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인간이 계속 맡기를 바라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일터의 모든 문제가 제거돼야 할 비효율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업무의 문제는 노동자가 판단력과 책임감, 소유감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AI 도입은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라 노동자가 일에서 느끼는 의미와 숙련 형성의 구조까지 고려해야 한다.

세 번째 쟁점은 ‘봇시팅(botsitting)’과 ‘AI 토글 택스(AI toggle tax·도구 전환 비용)’다. 하인즈 소장은 노동자들이 AI를 실제 업무에 쓰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모델에 맥락을 설명하고, 결과를 수정하고, 여러 도구 사이를 오가는 데 소비한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는 AI 관련 시간의 37%를 이런 봇시팅에 쓰고 있었다. 또 핵심 정보가 AI 도구에 연결되지 않아 사람이 직접 맥락을 주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해 하인즈 소장은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AI를 쓰기까지 몇 번의 화면 전환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조직 생산성으로 이어지려면 모델 성능뿐 아니라 업무 맥락, 데이터 접근성, 도구 통합, 노동자의 의미 있는 참여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보현 과장 “정책을 만드는 정부부터 AI를 써봐야 한다”

박보현 고용노동부 노동행정인공지능혁신과 과장은 정부가 AI 시대에 대응하는 정책 방향과 함께, 고용노동부 내부의 AI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박 과장은 고용노동부의 AI 대응을 국민 대상 역량 전환 정책과 부처 내부 행정 혁신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했다. (사진=테크42)

박보현 고용노동부 노동행정인공지능혁신과 과장은 정부가 AI 시대에 대응하는 정책 방향과 함께, 고용노동부 내부의 AI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박 과장은 고용노동부의 AI 대응을 국민 대상 역량 전환 정책과 부처 내부 행정 혁신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AI 시대에 대응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민들이 AI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 업무 자체를 AI로 혁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5년간 100만 명을 대상으로 AI 관련 직업훈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라는 안전망이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자기 업무에 대해 AI 혁신을 해보지 않았다면 AI 대응 정책을 잘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에, 저희 조직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박 과장이 가장 먼저 소개한 사례는 산업재해 예방이다. 박 과장은 전국 산업안전감독관이 약 1400명인 반면, 관리 대상 사업장은 약 300만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모든 사업장을 직접 감독할 수 없는 만큼,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더 정확히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과정에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모델을 적용했고, 클로드 코드(Claude Code), 코덱스(Codex) 같은 코딩 AI 도구도 활용했다.

박 과장에 따르면 해당 머신러닝 모델은 기존 엑셀 기반 선별 방식보다 산재 고위험 사업장 선별 성능을 50% 이상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박 과장은 AI 기반 감독이 현장에 정착하려면 사업장이 왜 고위험으로 분류됐는지 감독관과 사업주가 납득할 수 있는 투명성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 행정 혁신 사례도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수사자료와 개인정보를 다루는 감독관이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제약을 고려해 내부망에 전용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고성능 오픈소스(open source)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진술조서 간 일관성과 모순점을 분석하고, 수사 결과 보고서 작성 업무를 보조하는 데 쓰인다.

박 과장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수사자료와 개인정보를 다루는 감독관이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제약을 고려해 내부망에 전용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고성능 오픈소스(open source)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진술조서 간 일관성과 모순점을 분석하고, 수사 결과 보고서 작성 업무를 보조하는 데 쓰인다. (사진=테크42)

대국민 서비스 영역에서는 한국공인노무사회와 협력해 공인노무사 173명이 검증에 참여한 AI 노동법 상담 서비스가 소개됐다. 해당 서비스는 당근 앱의 ‘당근알바’에도 탑재돼 주말과 야간, 외국인 노동자 등 기존 상담 채널 접근이 어려운 이용자에게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재 위험요소를 사진으로 판별하는 서비스도 공개됐다. 현장 사진을 입력하면 회전 톱날, 보호장치 미비 등 위험요소를 식별하고 안전조치를 안내하는 방식이다. 박 과장은 생성형 AI가 이미 방대한 세계 지식을 학습한 만큼, 전통적인 비전 AI(vision AI)처럼 대규모 별도 학습데이터를 구축하지 않아도 산업안전 지식을 현장에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봤다.

고용서비스 영역에서는 고용24 플랫폼의 AI 일자리 추천, AI 직업상담, 기업용 구인공고 작성 지원 사례가 언급됐다. 박 과장은 “정부 서비스 개발이 기존 절차만 따를 경우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공무원도 AI 에이전트와 코딩 AI를 활용해 직접 시제품을 만들고 개발자와 더 명확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권현지 교수 “AI 전환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가 핵심”

권현지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AI가 확산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가 AI 교육과 활용에 대한 기대가 높고, 기술 수용성도 높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기업과 산업 차원의 도입 속도에 비해 개인 노동자의 활용 역량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봤다. (사진=테크42)

권현지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AI가 확산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가 AI 교육과 활용에 대한 기대가 높고, 기술 수용성도 높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기업과 산업 차원의 도입 속도에 비해 개인 노동자의 활용 역량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봤다. 이 격차는 단순한 기술 적응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 기업 규모, 직무, 성별, 소득 수준과 결합해 노동시장 내부의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

권 교수는 한국의 높은 기술 수용성이 양면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AI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은 일방적 반대가 아니라 공존의 길을 설계할 여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의 발언권 없이 기업이 AI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현대차그룹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도입 논란을 사례로 들었다. 노동조합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반응한 이후 AI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노사정 논의 필요성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AI 활용 방식이 노조나 근로자 대표에게 협의되거나 고지된 비율이 13% 수준에 그쳤고, 이는 다른 노조가 있는 기업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권 교수의 지적이다.

권 교수가 강조한 또 다른 문제는 ‘AI 디바이드(AI divide)’다. 대기업, 남성, 고소득, IT 직군은 기업 구독 지원과 사내 교육, 내재화된 AI 시스템을 통해 조직적으로 AI에 적응하고 있다. 반면 소기업, 여성, 저소득, 서비스 직군은 지원 없이 무료 범용 AI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권 교수는 지난 1년간 AI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 기준 68.2%, 소기업에서는 81.7%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AI 사용 접근성의 격차가 결국 역량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 변화 역시 양면적이었다. 응답자의 74%는 AI 도입 이후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고 답했고, 결과 품질 향상과 의사결정 개선, 어려운 과제에 대한 자신감 증가도 나타났다. 그러나 조직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 업무량 증가도 동시에 확인됐다. 권 교수는 AI가 단순히 일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초안 작성, 요약, 리서치처럼 신입사원이 훈련받던 과업이 AI로 대체되면 온보딩(onboarding) 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AI 충격은 기존 불평등 구조와 결합할 때 취약한 집단에게 기회가 아니라 위험으로 체감됩니다. 결국 AI를 좋다, 나쁘다 또는 일자리를 만든다, 없앤다는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기술도 어떤 집단, 어떤 조직, 어떤 제도 속에서 도입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모순을 부담하는지를 조정하는 거버넌스에 있습니다. 그런 거버넌스를 중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 교수는 AI를 둘러싼 노동자 참여가 단체교섭과 사회적 대화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봤다. (사진=테크42)

그러면서 권 교수는 AI를 둘러싼 노동자 참여가 단체교섭과 사회적 대화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유럽연합(EU)의 AI 관련 규범 논의처럼 AI를 노동조건과 사회적 협상의 대상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업별 교섭 구조가 강하고, 기술은 경영권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커 AI 의제를 산업 전반에서 다루기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권 교수는 “AI 설계 과정에서도 노동이 비용이나 ‘휴먼 에러(human error)’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장 노동자의 경험이 설계 초기부터 반영될 때 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UI·UX) 개선, 노동강도 완화, 데이터 품질 향상,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간 중심 AI(human-centered AI)와 참여적 설계(participatory design)가 개발자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라 제도화돼야 할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날 ‘AI 시대와 마주한 노동’과 관련된 논의는 ‘AI는 노동을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를 넘어 ‘AI 전환을 누가 설계하고 누가 통제하며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왼쪽부터) 브라이언 머천트 작가, 박보현 고용노동부 과장, 권현지 서울대학교 교수, 레베카 하인즈 글린 Work AI 연구소장. (이미지=AI로 생성)

이날 ‘AI 시대와 마주한 노동’과 관련된 논의는 ‘AI는 노동을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를 넘어 ‘AI 전환을 누가 설계하고 누가 통제하며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머천트 작가가 19세기 러다이트의 역사에서 끌어낸 문제의식은 패널토론에서도 반복됐다. 기술은 중립적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일터에 들어오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될지, 더 촘촘한 통제와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시스템이 될지는 거버넌스 설계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노동정책은 기술 수용 여부를 묻는 데서 멈출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문 앞에 선 노동자와 시민이 실제로 그 문 안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제도일 것이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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