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나를 열불나게 하는 상대에게 화 내? 말아?

맛나버거 윤사장이 화를 낸 이유

패스트푸드 전문점 맛나버거는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야구팀 A구단과 광고제휴를 맺었습니다.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A구단은 각종 인쇄물과 경기장 벽, 안내방송에 맛나버거의 상품광고를 하고, 맛나버거는 컵과 봉투에 A구단 로고를 사용하기’로 계약했죠. 

하지만 계약한 한 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맛나버거의 윤 사장은 A구단의 경기장을 찾아갔다가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팜플렛 말고는 경기장에 맛나버거의 광고물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시즌이 끝난 후, 윤 사장은 벼르고 벼르던 A구단의 홍보담당자와 만났습니다. A구단의 홍보담당자는 그런 윤 사장의 속도 모르고 ‘내년 시즌에도 우리와 광고계약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윤 사장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뻔뻔하군요! 경기장에 맛나버거 광고물이 거의 없던데, 어떻게 사람이 계약을 해놓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A구단 홍보담당자는 사과하기는커녕 그런 윤 사장의 반응을 되려 어이없어 합니다. 결국 협상장의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두 회사는 광고제휴를 연장하지 못했는데요. 윤 사장은 대체 뭘 잘못한 걸까요?

앞 시나리오에서 윤 사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러분은 눈치채셨나요? 바로 상대방에게 무작정 화를 낸 점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상대방도 감정이 격해졌고, 관계가 껄끄러워졌던 거죠. 이건 협상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두 회사의 관계마저 불편하게 만들곤 마는데요. 


협상테이블에서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해 무조건 참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와튼스쿨의 협상 권위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Stuart Diamond)교수는 이럴 때 이슈에는 강하게, 인간관계는 부드럽게 대응하라고 합니다. 

사례를 들어볼까요?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우주 관련 장비를 만드는 우주로켓 제조업체인 유즈마쉬(Yuzhmash)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JP모건의 투자를 받아 1억 750만 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었죠. 이를 위해 필요한 보증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꺼이 대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이 JP모건의 투자등급 기준보다 낮았기 때문에 결국 유즈마쉬는 채권 발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5년 후, 2003년. 드디어 우크라이나의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등급 기준에 맞게 올라섰습니다. 그래서 유즈마쉬는 다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정부에 보증을 재확인 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어쩌죠? 우크라이나 정부측에서 보증 조건이 불리하다며 보증을 거절한 겁니다. 5년 전에 받은 보증서에 ‘취소불능’이란 말까지 있는데 말이죠.  

증거가 있는데 말을 바꾸냐며 유즈마쉬 협상단은 화를 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냈을 수도 있지만 유즈마쉬 협상단에 참여했던 다이아몬드 교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이 신뢰를 중시하고 원칙을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방금 그 말씀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곤 5년 전에 받은 지급보증서의 ‘취소 불능’이라는 문구를 가리키며 “분명히 이 자료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그럼 이 말은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하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그건 아니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다이아몬드 교수는 보증서 마지막 장에 있는 재무부 장관의 직인과 서명을 가리키며 한번 더 물었습니다. “이렇게 보증을 해주고 이제 와서 조건이 불리해 보증이 어렵다고 하는 건, 해외 채권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정부는 언제 약속을 파기할 지 모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이죠. 

이 말을 들은 정부 관리는 자기를 신뢰한다는 말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재보증을 해주었고 유즈마쉬는 자금조달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협상이 끝난 후,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관계가 나빠질까 걱정이 됐습니다. 협상 내내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프로협상가답게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바로 협상 후에 예정돼 있던 출장에 우크라이나 재무부의 고위공무원을 초청한 거죠. 그 출장은 런던, 비엔나에서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에 우크라이나 재무부의 고위공무원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투자설명회’를 개최할 기회를 준겁니다. 이러한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다이아몬드 교수와 오랫동안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정부가 보증을 해주지 못하겠다고 말을 바꿀 때 다이아몬드 교수가 화를 냈다면, 어땠을까요? 유즈마쉬의 자금 조달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사이도 나빠졌을 겁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교수는 화를 내는 대신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되 사람 자체에 대해선 부드럽게 대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슈에는 강하게, 인간관계는 부드럽게

협상에서는 이것을 ‘이슈에는 강하게, 인간관계는 부드럽게’라고 말합니다.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비난하지 않고, 상대방이 합의사항을 번복한 사실 등에 대한 이슈에서만 강하게 반발하는 거죠. 이처럼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이슈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면, 서로 감정 싸움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관계를 소중히 하는 만큼, 이슈 역시 건설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맛나버거 윤사장의 사례로 돌아가 볼까요?

윤 사장이 다짜고짜 화를 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우선 “계약서에는 ‘경기장 벽에 광고를 올린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제가 직접 가보니 벽에는 광고가 전혀 없더군요. 계약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라고 이슈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고요. 

“당신은 협상하는 내내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저희 맛나버거 역시 A야구단과 내년 광고제휴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명확히 해야 우리 장기적인 파트너십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만약 이렇게 미래의 발전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면, 윤 사장과 A야구단의 협상은 원하는 대로 잘 풀릴 수밖에 없었겠죠?

혹시 여러분도 상대방의 말도 안 되는 요구나 행동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나요? 그럴 땐 무작정 화를 내는 대신 다이아몬드 교수처럼 이슈에는 강하게 어필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이야기해보세요. 상대방의 잘못은 짚어내되 관계는 좋게 가져갈 수 있는 유능한 협상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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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M세계경영연구원

insightlab@ig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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