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스타트업 피난처’ SVB의 파산과 충격파

실리콘밸리 산타 클라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긴급 진화 조치에 나서긴 했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실리콘밸리은행(SVB) 부실로 인한 파산의 충격파는 향후 수년 간 전 세계 IT 업계에 부정적 여파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CNBC는 14일 SVB 파산(10일 )이후 미정부의 긴급 복구조치(12일)가 이뤄진 가운데 현지 투자자(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접촉해 이같은 전망을 전했다.

SVB는 지난 40년간 전 세계의 많은 스타트업과 벤처 캐피털 펀드의 중추였다. 현지의 한 전문가는 SVB가 ‘실리콘밸리 은행 생태계의 대부’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만큼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미국정부 금리인상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IT 업계, 특히 IT 스타트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오던 ‘온정적인 최후의 피난처’였던 SVB가 무너졌다. 그렇기에 그런 어려운 역할을 똑같이 대신 떠맡아줄 금융기관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명한 이 은행의 새 최고경영자(CEO) 팀 마요플로스가 고객들에게 미국 정부의 예금 전액 보증 방침을 알리고는 ‘다시 돌아와 예금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터진 둑을 막기가 쉽지 않듯이 SVB 사태도 단시일 내에 정상화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인 암울한 거시경제에 이번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 IT업계의 대량 해고같은 구조조정이 최소 3년은 더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SVB 파산 사태의 전말과 미국 정부의 수습 노력 등 SVB 상황의 향배를 종합적으로 그려봤다. SNBC의 14일 보도 내용들과 SVB파이낸셜그룹의 지난 8일 발표 내용을 참고했다.

SVB 뱅크런을 부른 도화선

실리콘 밸리 SVB본사 입구. (사진=위키피디아)

“SVB가 본질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실리콘밸리 IT업계에서 은행 생태계의 대부(Godfather)였던 만큼, 우리는 이 역사적 붕괴의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앞으로 IT업계에 무수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는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IT분석가는 14일 투자자 노트에서 SVB의 붕괴 사태에 대해 이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예금인출 사태의 시작에서 파산까지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지난주 SVB는 3월 8일 대차대조표를 강화하기 위해 22억 5000만 달러(약 2조 9610억원)를 조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날 SVB는 210억 달러(약 27조 6570억 원) 어치의 증권을 손실을 보고 매각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직후 벤처 캐피털(VC)들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 회사들에 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라고 말했다. 다른 클라이언트들도 SVB의 예금을 찾기 힘들어지기 전에 인출하고자 이에 가세했다. 이른바 뱅크런이었다. 이렇게 스타트업과 벤처 펀드 고객이 SVB를 떠나면서 무려 400억 달러(약 52조6800억원)이 넘는 예금이 SVB를 빠져나갔다. SVB는 긴급 인출 자금 확보를 위해 주로 채권을 중심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이를 매각해야만 했다.

미국 규제 당국은 10일 SVB를 폐쇄하고 예금인출을 통제했다. 미 금융규제 당국은 상황이 심각해진 낌새를 느끼자 일요일인 12일 “SVB의 예금고객들이 더 이상의 사태 확산 조치로 그들의 예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은 “SVB 파산 사태는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펀딩)을 어렵게 하는 것에서부터 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것까지 여러 가지 면에서 IT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피난처 SVB 파산이 IT생태계를 거세게 흔드는 이유

애리조나 탬피의 SVB 사무소. (사진=위키피디아)

SVB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심지어 중국과 같은 곳에서 IT산업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려 40년이나 된 이 금융기관은 IT업계에 전통적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 대출 기관에게는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펀딩회사들에게도 이를 제공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SVB는 또한 스타트업들에게 신용한도 금융서비스 등을 제공해 왔다.

경기가 좋을 때 SVB는 번창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이는 한때 고공행진을 하던 IT부문에 타격을 주었다. 미국과 유럽 등지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SVB의 붕괴는 이처럼 이미 스타트업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맞은 힘든 시기에 발생했다.

중국계 벤처캐피털 펀드 MSA캐피털의 벤 하버그 경영 파트너는 CNBC에 “이 SVB 전체가 우리에게 최후의 피난처였고 이번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구글, 아마존, 메타 같은 세계적 IT 거인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수만 명의 직원들을 해고하는 동안 다른 IT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SVB는 IT 스타트업들이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거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용 한도 또는 기타 도구를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매트 히긴스 RSE 벤처스 최고경영자(CEO)는 14일 CNBC의 ‘스트리트 사인스 아시아’에 출연해 “SVB는 이 부문에 매우 온정적이었고, (매출보다 지출이 많은 스타트업들에 대한)급여 서비스와 함께 비유동성 신용에도 대출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신용 한도 서비스도 제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자본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들은 매출-지출 균형을 맞출 때까지 버틸 기간(런웨이)를 늘리고, 우리 모두가 예상하는 불황을 견디며 자금 소진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그러한 (온정적 은행자금)줄에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그것이 하룻밤 새 증발했고 이를 대체할 다른 대출자(금융기관)는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파장은···매출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 전환·향후 3년간 더많은 구조조정 등

SVB 붕괴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스타트업들이 매출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지출을 더 잘 통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담 싱골다 타불라 최고경영자(CEO)는 21일 CNBC ‘라스트콜’에 “기업들은 사업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혹스턴 벤처스 공동창업자인 후세인 칸지는 “일부는 보류하고 있지만 향후 3년 동안 기업에서 더 많은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어려운 결정을 미루는 행동’들을 많이 보고 있다. 힘든 일을 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한 미루지 말라. 단지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미래에 상황이 더 쉬워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분석가는 “더 많은 파산이 있을 수 있다”며 “도움의 손길이 더 약한 초기 단계의 IT스타트업들이 강제 매각되거나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12일 투자자에게 보낸 투자자 메모에서 “이번 주 SVB 파산의 영향은 향후 수년간 IT환경과 실리콘 밸리에 큰 파급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정부의 ‘SVB 살리기’ 초긴급조치

일요일인 12일 미연방정부 금융규제당국 수장 3인의 위기진화 긴급 조치 합동 발표에 이어 미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의 이름을 ‘실리콘 밸리 브리지 뱅크’로 바꾸고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사진=FDIC)

일요일인 지난 12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제롬 파월 FRB 의장, 마틴 그루엔버그 FDIC 의장은 공동성명에서 “SVB에 있는 모든 예금자들이 완전히 보호될 것이며 13일 월요일부터 FDIC에 보증보험을 들지 않은 예금을 포함한 그들의 모든 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미국 금융규제당국인 미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난 10일자로 압수된 실리콘밸리 은행(SVB)에 관선 CEO를 보내 SVB살리기에 나섰다.

FDIC는 SVB의 명칭을 ‘실리콘 밸리 브리지뱅크(Silicon Valley Bridge Bank)’로 바꾸고 팀 메이요풀로스를 새 CEO로 임명됐다.

메이요풀로스 CEO는 14일 이메일 메시지를 빠져나간 SVB 고객들에게 보내 미금융규제당국에 압류된 SVB가 “영업을 위해 문을 열었다. 고객 예금을 받고 보유할 준비가 돼 있다”며 벤처 캐피털(VC) 회사와 다른 IT 고객들에게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일주일 내에 포트폴리오 회사나 일반 기업들이 자금을 (다른 은행으로) 이전했다면 안전한 예금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일부 자금을 다시 (우리은행으로)이전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썼다.

메이요풀로스는 SVB의 웹사이트에도 게시된 고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은행의 고객 기반에 대해 “예금자들은 그들의 돈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다”며 “신규 유입과 기존 예금 모두 FDIC에 의해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FDIC는 고객 1인당 25만 달러(3억3000만원) 상당의 예금만 보장하도록 의무화돼 있지만 메이요풀로스 CEO는 게시물을 통해 보호장치가 “모든 예금자를 완전히 보호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연방 규제 당국의 언급에 따라 ‘FDIC 보호에 대한 제한(한도)’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 기관의 미래를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실리콘 밸리 브리지 은행’에 예금을 맡기고 지난 며칠 동안 남은 예금을 다시 이전함으로써 우리의 예금 기반을 재건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썼다.

SVB의 파산은 2008년 워싱턴 뮤추얼의 파산에 이어 미국 은행으로서는 두 번째로 큰 것이다. 이에 FDIC를 포함한 미연방금융규제당국은 이 사태가 다른 은행으로 확산될 위기 속에 예금자들이 손실을 입지 않도록 보장하면서 일요일에 긴급 개입했다.

과연 미국 금융당국의 초긴급 ‘SVB 살리기’ 긴급 개입조치가 실리콘밸리의 놀란 VC들과 스타트업들의 계좌 복귀와 IT생태계의 안정으로 이뤄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재구 기자

jklee@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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